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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독서의 소중함 일깨운 고은 시인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4. 14. 09:47
"이 세상에는 아주 많은 책이 있습니다.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 나뭇잎새, 그 가지에서 떨어져 바람에 굴러다니는 낙엽, 나뭇잎새 끝에 매달린 아주 작은 이슬방울도 문자로 기록되면 책입니다. 인천 앞바다에 가면 수많은 파도들이 밀려오지요. 그 파도들 하나 하나가 책입니다. 그러면 너와 나도 책입니다. 서로에게 읽히지 않으면 살 수가 없지요. 우리는 수많은 책들 속에서 살고 있어요."


원로시인 고은 씨(세계한민족작가연합회장ㆍ74)가 12일 오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위원장 민병욱) 독서아카데미 개원식에서 '고은 시인이 들려주는 나의 책 이야기'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을 했다.


1시간 남짓 진행된 강의에서 그는 시인 특유의 감수성으로 책의 소중함과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책에서 시인의 길을 발견하고 인생의 의미를 깨달은 그는 요즘 사람들이 책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책은 아주 많은데 아주 멉니다. 왜냐 책은 불편하기 때문이지요. 컴퓨터나 TV 화면은 모든 것을 간단명료하게 보여주는데 책은 머리를 써야 합니다. 그러나 책을 읽지 않으면 우리는 점점 단세포가 돼요. 인간은 진화해서 여러 세포로 이뤄진 존재가 됐는데 지금은 오히려 단세포로 가고 있어요. 감정이나 머릿속이 점점 퇴화되고 있습니다."


시인은 '책이 없는, 책이 아주 멀리 있는' 시대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가 등잔불 밑에서 큰 소리로 읽어주는 '장화홍련전'이 처음 만난 책이다.


"당시에는 책이 씨받이처럼 떠돌아다녔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돌려 읽는 바람에 책이 너덜너덜해져 없어질 지경이었죠. 책이 귀하던 시절이라 잎사귀와 낙엽, 저녁노을, 봄에 왔다 가을에 가는 제비가 제 책이었습니다."


일본어를 국어로 가르치던 1943년 시인은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일본인 여교사가 담임 선생님이었고, 시인의 이름은 고은이 아니라 사무라이 이름으로 바뀌었다.


1945년 해방 후 그는 임시 국어 교과서에 실린 이육사의 시 '광야'를 읽었다. 드넓은 벌판을 뜻하는 광야라는 단어에 그의 마음까지 확 펴지는 것 같아 전율했다. 천고(千古)의 거대한 시간 속에 자신이 존재하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 순간 그는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라는 시 구절에 미쳤지요. 이육사 시인은 16번이나 감옥에 드나들었던 애국자였어요. 끝내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했지만 시를 남겨놨죠. 참 좋은 시였습니다."


1948년 시인은 화가를 꿈꾸기도 했다. 외삼촌이 건네준 고흐에 관한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는 "고흐에 깊이 빠져 나도 고흐처럼 귀를 자르고 싶기도 했다"며 "전라도에서 1등상까지 받는 바람에 더 확신이 생겼다"고 껄껄 웃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휩쓸고 간 폐허 속에서 책과 잠깐 이별했던 그는 1960년대 책과 다시 만나 열애에 빠졌다고 했다.


"뜨거운 옛사랑과 다시 만난 기분이었죠. 그때는 돈이 없어 책방에서 책을 읽었어요. 주인이 눈치를 주면 다른 책방으로 가서 다음 페이지부터 읽었어요. 외상으로 책을 사기도 했습니다. 어쩌다 원고료가 생기면 책 외상값을 갚고 새로운 외상 책을 사서 읽었어요."


책을 못 구해 답답했던 시절을 보낸 시인은 요즘처럼 돈과 책이 많은 시대에 왜 책을 멀리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책은 마음의 병을 고쳐주는 약"이라는 초강수를 두며 독서를 권했다.


매일경제 [전지현 기자]

출처 : 본연의 행복나누기
글쓴이 : 본연 이해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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