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점점 잊혀져 가고 희미해져 가는 ‘광주 오월’의 현장이 역사 저편 먼 곳이 아니라 우리가 숨쉬고 생활하는 바로
‘지금 여기’에 맞닿아 있음을 새삼 일깨우는 책이 나왔다. 지난 2000년 들불열사와 광주정신 계승을 위해 설립된 윤상원민주사회연구소
‘광주민중항쟁연구반’이 펴낸 《오월꽃 피고 지는 자리-광주민중항쟁 전적지 답사 길잡이 》(전라도닷컴 간)가 그것.
항쟁 현장으로
독자들을 이끄는 이 책은 정재호(48) 이상호(45) 이강복(39)씨 등의 저자들이 수차례 현장을 훑고 더트며 써낸 책으로 역사 기념 및 계승과
관련해 현장 답사를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이들은 5월에 이루어지는 수많은 답사나 방문이 5·18 묘지에 한정되는 것을 경계한다.
묘지는 추모 공간 이상을 넘을 수 없다는 한계를 띠고 있기 때문에 투쟁과 나눔의 현장 곳곳으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도청(항쟁 지도부), 금남로(시가전), 도청광장(민주광장), YWCA(선전선동작업), 녹두서점(민주세력의사랑방),
광주MBC방송국(왜곡언론 방화), 공용터미널(저항과 학살), 양동시장(나눔공동체), 광주공원(시민군 결성 및 전투교육장),
조선대학교(민주화운동), 광주역(시가전), 망월동 묘역(광주민중항쟁 관련 및 계승열사 묘역), 5·18묘역(신묘역, 광주민중항쟁 당시 관련자
묘역), 전남대(민주화운동), 광주교도소(대치선), 무등경기장(차량시위 시발지), 광천동(들불야학), 상무대(5·18 민주세력 수용소),
농성동(대치접전), 윤상원열사 생가, 주남마을 학살, 학운동 지역방위대, 효천마을 학살과 전투, 송암·진월동 학살 등 이들이 책 속에서
‘답사지’로 제시한 곳들은 광주 5·18이 어느 특정지역이 아니라 광주 곳곳에서 펼쳐졌음을 새삼 실감케 한다. 각 답사지별로 당시 투쟁과 학살
상황을 시간대별로 상세하게 기록해 현장감있는 접근을 꾀하고 있다.
또 이들은 학살과 인권유린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민주 쟁취를
위한 투쟁과 나눔의 현장에 초점을 맞춰 광주항쟁을 반민주세력들의 야만사와 고통의 역사에 그치지 않고 민족민주세력의 대장정과 투쟁의 역사로
매김하고 있다.
저자 정재호씨는 “그동한 광주오월을 두고 전국화·세계화를 외쳐왔지만 실제로 광주 안에서도 내적 공동화(空洞化)
문제가 심각하다”며 “이 책은 24년의 세월이 낳은 세대적 간극속에서 새로운 세대에게 5·18을 알려주는 의미도 있다”고 말한다. 또
“현재 광주민중항쟁의 역사기념 및 계승노력은 현재화 노력을 소홀히 한 채 박제화, 기념물화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뿐만 아니라 역사현장을
보존 관리하려는 노력은 부재한 채 무엇인가 새로운 건물, 거대한 기념물만을 고집하고 있는 듯하다”고 지적한다.
전적지 지도를 그린 화가 이상호씨 역시 “전적지들을 몇 번이고 가보며 가장 아쉽고 마음 아팠던 것은 우리가 이 현장
하나 제대로 지키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조형물의 건립보다 사라지고 방치 훼손돼 가는 현장들의 보존과 관리에 대해 시민적 공감대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한다. 이 책속에 들어있는 전적지 지도는 “무엇보다 무등산과 광주천 등 우리 산천이 그대로 느껴지는 지도를 그리고
싶었다”는 작가 자신의 바바람대로 옛 그림지도 방식으로 그려져 실물 특징이 살아 있다. 지도 속에 표기된 지명 및 내용은 한글서체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송강가사체’를 사용했다.
지도외에도 각 답사지 버스노선과 지하철 노선 등을 담아내 안내자 없이도 답사가 가능하도록
했으며 문학 연극 영화 음악 방송 등 광주민중항쟁 관련 연구자료와 성과물을 부록으로 덧붙여 누구나 오월관련 자료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한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