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자렛 Nazare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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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자렛 전경. 예수, 마리아 & 요셉의 성가정이 살던 고향 땅이다. 중앙 왼쪽에 새로 지은 성모영보성당(the New Basillica of the Annunciation)이 보인다. 지금은 큰 도시가 되었지만 2000년전에는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이 마을에서 예수께서는 유년시절을 보내셨다. 사진에 보이는 언덕 부분은 (구)나자렛인데 이곳 주민은 회교와 그리스도교(가톨릭과 정교)를 믿는 사람들이다. 언덕 위 오른편 (신)나자렛은 사진에 보이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이곳에 산다. |
나자렛이란 마을 이름은 복음서에서 역사상 처음 언급 되었다. 그 작은 마을은 분명 고대즈불룬 영토 안에 위치하고 있었다.(이사야 9,1을 인용한 마태오 4, 13∼16) 구약성서에는 갈릴래아 지방의 많은 도시가 언급되고, 신약성서와 동시대에 쓰여진 다른 책들에도 그 지역의 마을과 도시 이름이 백 가지도 넘게 나오지만 나자렛은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고고학적 근거에 의하면 철기시대, 즉 기원전 천년경에, 후에 나자렛이라 불리우게 된 그곳에 작은 농경마을이 자리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헬레니즘시대 말기에서부터 로마시대까지 유다인들이 사용했던 묘석을 보면 작은 유다 마을이 A.D 1세기에 나자렛에 분명히 존재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마을은 요세푸스의 역사서나 탈무드에 등장한 유다의 도시와 마을 이름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 사실을 통해 1세기의 나자렛이 하도 작고 보잘 것 없어서 갈릴래아 지방의 마을 이름 속에 포함시킬 가치도 없게 느껴졌음을 알수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요한 복음(1, 45∼46)에 나온 것처럼 나타나엘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 "나자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
■ 성모영보 기념 성전 : 수태고지성당이라고도 불리운다.
이 성당이 성모 마리아가 살던 집터로 알려져 있다. |
수태고지기념성당 정면 1969년 건축가 G. Muzio 에 의해 건립되었다. 십자군 시대의 성당과 규모를 같게 지었다. |
대천사 가브리엘이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하고 인사하면서 구세주의 잉태를 예고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
옛날 우물 모습. 가브리엘 대천사성당 지하에 지금도 보존되어 있다. 나자렛에 남아있는 하나뿐인 옛날 우물이다. 이 성당 지하에 지금도 보존되어 있다. 성모님께서 당시 사용하시던 우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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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렛의 대표적인 순례지는 성모영보 기념성전이다. 마리아는 아기예수를 잉태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주의 천사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오늘의 기념성전이 위치한 곳이 바로 마리아가 주의 천사의 방문을 받은 곳이라고 말한다.
성모영보를 기념하는 오늘의 대성전은 소위 마리아의 집터였다는 곳에 1960년부터 짓기 시작하여 1969년 완성된 것이다. 이 성전을 짓기 전에 벨라르미노 바카티 신부는 1954년부터 1965년까지 거의 11년 동안이나 고고학적인 발굴을 했었다. 수많은 동굴, 물 저장 장소, 곡식 저장소, 기름틀, 포도즙을 짜내는 틀뿐만 아니라 비잔틴 시대의 성전 터도 찾아냈다. 성전 안에 잘 보수되어 있는 소위 성모영보 동굴은 헤로데 시대에 속하는 가정집인데 마리아가 이곳에서 살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성지가 잘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대대로 이 성지를 보호 관리하면서 살았기 때문 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특히 이들은 마리아와 혈육관계가 있는 친척들이었을 것이라고 까지 말한다. 3세기경에 해당하는 시나고그 건물의 일부도 발견되었는데, 기둥에는 희랍어로 "마리아 찬미 받으소서(XE MAPIA)."라고 새겨져 있었다. 따라서 마리아에게 봉헌된 경당이었을 것이라고 확신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 확신을 더욱 굳히게 한 것은 바로 그 위에 비잔틴 시대의 성전이 세워졌기 때문이었다. 이 성전을 427년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성전의 바닥에는 십자가가 새겨진 모자이크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427년에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금한 바 였기 때문이다.
670년 이곳으로 성지 순례 왔던 아르쿨프 주교는 다음과 같이 보도한다. " 이 성전이 세워진 곳은 마리아가 거처했던 곳으로서 주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아기 예수의 탄생을 전달한 곳이다."(P.Geyer, Itinera Hierosolymitana, 274) 이런 전통을 이어 받아 동굴 안에 위치한 중앙 제대에는 라틴어로 "이곳에서 말씀이 육이 되셨다.(Verbum Caro Hic Factumest)."라고 씌여져 있다. 이 제대를 가리켜 성모영보 제대라고 칭한다.
성모영보 기념 대성전에서 북쪽으로 1백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성가정 성당 또는 성요셉 성당이라고 불리는 기념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 요셉의 작업장이 있었으며 성가정이 살았다고 여겨 그런 명칭을 부여한 것이다. 물론 이 자리에는 비잔틴 시대부터 이미 어떤 성당이 존재 했었다. 한때는 프란치스꼬 수도회 전용 성당으로 사용되기도 했었다. 오늘날의 기념 성전은 1914년에 다시 세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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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베들레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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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8km쯤 떨어진 언덕 위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베들레헴이란 명칭은 그 옛날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야곱의 아내 라헬의 죽음과 관련된다. "라헬은 에브랏으로 가는 길에 묻혔다. 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다."(창세기 35, 16-20). 예루살렘에서 오는 자동차 도로가 왼편에서 들어와서 중앙에 보이는 길로 들어간다. 언덕 위에 성탄 기념성당과 성 가타리나 성당들이 있다. |
■ 예수성탄 성당
서기 324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 성녀가 베들레헴에 순례와서 예수 탄생지로 전해오는 동굴을 참배하고 그 위에 성당을 짓게 하였다. 339년 5월 31일에 성당을 축성했는데 첫 번째 성탄 성당을 콘스탄티누스 성당이라 한다. 이 성당은 6세기초에 불타버렸지만 다행히 콘스탄티누스 성당 바닥을 장식한 모자이크 일부가 지금의 성탄 성당 중간 지점에 보존되어 있다. 지금의 성탄 성당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531년에 완공한 것인데, 그후 지붕과 바닥과 내부 장식정도만 바뀌었을 뿐 나머지는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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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성탄 기념 성당 광장(베틀레헴) ◆ 왼쪽 첫 번째 사진설명 : ★ 오른 쪽으로부터 첫 번째 종탑 : 아르메니아 정교회 성당 ★ 오른 쪽으로부터 두 번째 종탑 : 그리스 정교회 성당 ★ 왼쪽 끝에 보이는 종탑 : 프란치스꼬수도회 성당 ◆ 가운데 사진은 이 광장에서의 크리스마스 이브 행사 광경. 매년 성탄 때가 되면 이 광장에서 예수성탄을 축하하는 각종 행사가 열린다. 나는 1984년 성탄 자정미사를 이 성당에서 참례한 적이 있다. 그 당시는 이스라엘이 인접한 중동국가들과 갈등관계가 긴박한 상황이라 무장군인이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는 가운데 성탄자정미사를 드렸다. 그러나 그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하고 해마다 성탄절이 가까워 오면 그 때의 감격을 되새기곤 한다. ◆ 오른 쪽 사진은 성탄시기 때 베틀레헴의 시장 터. 경축의 분위기가 넘쳐나고 있다. |
이 성당은 밖에서 볼 때 마치 요새와도 같으며, 성당의 입구는 페르시아 침입자들이 말을 타고 교회에 들어와 약탈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좁고 낮게 되어있다.
`기원후 614년 페르시아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입하였을 때 대부분 교회가 파괴되었으나, 이 성당은 그 당시 교회 정면에 있던 그림 덕분에 파괴되지 않았다. 아기 예수께 경배하러 왔던 세 명의 동방 박사가 페르시아 복장으로 묘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페르시아인들이 이 교회를 남겨두었다고 전해진다. 이성당의 나무문은 1227년 아르메니아왕 헤트론(HaytunⅡ)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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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성탄대성당에 꾸며진 말구유에 모셔진 아기예수. 한국에서는 작은 모형만 보다가 성탄자정미사 때 사제가 실물 크기의 아기 예수를 안고 오는 모습을 보고 잠시 실제상황인 듯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
양치는 목자. 예수님의 탄생 때에도 이들이 제일 먼저 천사의 예고를 듣고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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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아기가 탄생한 바로 그 지점에는 "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 동정녀 마리아에게 탄생하셨다."(Hic de Maria Virgine Jesus Christus Natus est.) 라고 라틴어로 써 놓았다. |
정면 제대 아래가 예수께서 출생하신 장소이다. |
예수 아기의 출생장소를 가운데 구멍만 남겨놓고 별모양의 은으로 덮었다 |
예수님이 탄생하신 마구간 |
■ 성 가타리나 성당.
성탄 자정미사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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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당은 1881년 프란치스꼬회 수도자들이 세웠다. 여기서 예루살렘 주재 라틴계 가톨릭 총대주교가 해마다 12월 24일 성탄 자정미사를 집전한다. 이 미사가 온 세계에 텔레비젼으로 방영된다. 이스라엘에는 약 2만명 정도의 가톨릭 신자가 있다고 한다. 나는 1984년 성탄 자정미사에 참례한 적이 있다. 이 때 성당 맨 앞자리에는 예루살렘 시장, 경찰서장 등 지역의 고관들이 축하객으로 초대받아 앉아 있었다. 그들은 부부동반이었고 영성체를 하지 않아 나중에 옆의 사람에게 물어 보고서야 알았다. 미사의 성가는 우리도 잘 아는 그레고리안 성가를 라틴어로 불렀다. 나도 젊었을 때 성가대에서 배운 실력으로 힘차게 따라 불렀다. 대영광송과 같은 노래는 성가대와 신자들이 계ㆍ응을 정확하게 나누어 불렀다. 전례의 정신을 잘 살리는 미사였다. |
가타리나 성당에서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면 예수 탄생 동굴과 구유동굴 비슷한 동굴들이 많이 있다. 그중 하나가 예로니무스 성인께서 서재로 쓰시던 곳이다. 예로니무스(347-420)는 자기 친구 다마수스 교황의 뒤를 이어 후임교황이 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성공하지 못하자 상심한 나머지 로마를 떠나 386년부터 이곳에 정착하여, 무려 34년간 은거하면서 한편으로 집필하고 한편으로 수도했다.
집필 활동중 가장 돋보이는 일은 신·구약성서를 히브리어 및 그리이스어 원전에서 라틴어로 완역한 것인데, 이 번역이 교회의 공인을 받아 이제까지 통용되고 있는 불가타 역본이다. 이것이 오늘날 가톨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성서이다.
3 . 에인 카렘(아인 카림) (Ain Karim : Ein Kar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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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나무들과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언덕들 사이에 자리한 그림 같은 아인 카림 마을은 예루살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고 세례자 요한이 태어난 곳이다. 또한 성모 마리아가 요한의 모친이자 사촌인 엘리사벳을 방문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경에는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만났던 곳과 세례자 요한이 태어난 곳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단지 "길을 떠나 유다 산골 고을로 서둘러 갔다"고만 되어 있다. 이 마을에 살던 즈가리아가 성전의 제사장이었기 때문에 예루살렘과 가까웠을 것이다. 몇몇 지역이 거론되어 왔었는데 고고학 자료와 전해 내려오는 기록에 의해 아인 카림이 바로 그 곳임이 확증되었다. |
'포도밭의 샘'이라는 의미를 지닌 에인 카렘(히브리어), 또는 아인카림(아랍어)은 예루살렘의 구시가지로부터 서쪽으로 대략 8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다.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이곳은 청동기 시대(기원전 2150-1900)부터 인적이 있었던 곳으로 예수의 시대에도 사람들이 마을을 형성하여 살고 있었다고 한다. 문헌상으로 볼 때, 예언자 예레미야(기원전 650-580)가 '벳 케렘'(예레미아 6, 1. 공동번역 : '벳하께림')이라고 처음 언급한 곳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곳을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한 곳(루가 1, 39∼40)이며, 세례자 요한이 탄생한 곳(루가 1, 57∼58)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성지로 여기고 있는 에인 케렘, 또는 아인카림이 역사적으로 확고한 신빙성을 지닌 곳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루가 복음사가가 보도한 그 불분명한 지역을 에인 케렘, 또는 아인카림으로 확정하게 된 것은 대략 8백년대로 잡고 있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전설로 전해진 구전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비잔틴 시대에 세워진 경당이 있었는데 그 경당은 헤로데의 명령(마태오 2, 16)에 의하여 학살당한 어린 사내아이들의 뼈들이 묻힌 곳에 그리스도인들이 세웠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소위 기적의 바위라는 것이 있었다. 그 바위는 어린 요한과 엘리사벳의 죽음을 모면시킨 바위라는 것이다. 이 바위는 오늘날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기념성전 안에 옮겨져 있는데, 라틴어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이 바위 안에 엘리사벳은 요한을 숨겼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 세례 요한의 탄생 기념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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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기념하는 현 성전은 17세기 경에 세워져 1885년에 보수 및 개축된 것이다. 프란치스꼬 수도회 소속 고고학자 살레르 신부는 1945년에 이곳 성전 주위를 발굴하여 비잔틴 시대와 십자군 시대의 성전터를 찾아냈다. 그리하여 구전으로만 막연하게 전해져 오던 세례자 요한의 기념 성전터를 재입증한 셈이 되었다. 이 기념 성전 안에는 세례자 요한이 탄생한 곳이라고 전해지는 동굴이 하나 있다. 베들레헴에 있는 예수 탄생의 동굴과 아주 흡사한 모습으로 꾸며져 있다.(에인 카렘의 중앙에 보이는 성당이 바로 세례자 요한의 탄생 기념 성당이다) |
■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기념 성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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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모방문기념성당(The Church of the Visitation) 마니피깟교회(The Church of the Magnificat)라고도 불리운다. 예루살렘에서 7㎞ 가량 떨어져 있는 Ain Karim 이라는 조그마한 마을에 있다. 이곳은 세례자 요한의 고향으로 엘리사벳과 쟈카리아가 살던 곳이다. 마리아는 천사로부터 수태고지를 듣고 "제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성령이 당신에게 내려오실 터이니, 곧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당신을 감싸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분은 거룩하다고 불릴 것이니,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당신 친척 엘리사벳을 보시오. 석녀라던 그가 늘그막에 아들을 잉태했는데 이 달이 여섯째 달입니다. 사실 하느님께는 무슨 일이든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루가 1.3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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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엘리사벳의 수태 사실을 알게된 마리아는 서둘러 길을 떠나 엘리사벳을 방문하였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를 듣는 순간 그녀의 태내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그리고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큰 소리로 외쳐 말하였다. "당신은 여자들 가운데서 축복받았으며 당신 태중의 아기 또한 축복받았습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내게로 오시다니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이 인사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자 아기가 내 태내에서 신명이 나 뛰놀았습니다. 복되어라, 믿으신 분!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들이 이루어지리니." 그러자 마리아는 이렇게 읊었다.(루가 1.39-45)
★ 마리아의 노래 ★ "내 영혼이 주님을 기리고 / 내 영혼이 내 구원자 하느님을 반겨 신명났거니, / 정녕 당신 여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도다. / 보라, 이제부터 만세가 나를 복되다 하리니, / 권능 떨치는 분이 큰 일을 내게 하셨도다. /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여라. / 그분의 자비는 세세 대대로 / 당신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미치리로다. / 그분이 당신 팔로 힘을 행사하시어 / 그 심사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도다. / 권세 부리는 자들은 권좌에서 내치시고 / 비천한 이들은 들어올리셨으며 / 굶주린 이들은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고 / 부요한 자들은 빈손으로 떠나 보내셨도다. / 그분이 자비를 기억하시어 / 정녕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도다. /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 그 자비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미치리로다.(루가 1.46-55) 이 성전도 세례자 요한의 기념성전처럼 비잔틴 시대와 십자군 시대의 성전터에 자리잡은 것이다. 현재의 기념 성전은 1938년부터 짓기 시작해서 1955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 성전 앞 마당 담벽에는 마리아가 하느님을 찬양해 노래불렀다는 '마니피캇'의 내용이 세계 각국어로 씌여진 40여개나 되는 판이 부착되어 있다. 그 가운데는 한솔 이 효상(아킬로)선생께서 친필로 쓴 한국어판도 있다.
성전 입구 정면에는 마리아가 자기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 여행하는 모습이 모자이크로 잘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지하 성당에는 가브리엘 대천사가 즈가리야에게 요한의 탄생을 알리는 내용(루가 1,8∼20), 그리고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상봉(루가 1, 41∼45), 헤로데 군사들이 베들레헴에서 어린 아이들을 학살하는 모습(마태오 2, 16)이 프레스코 그림으로 잘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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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요셉대성당 성요셉은 예수를 기른 양아버지로 의인이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했는데 그들이 동거하기 전에 몸가진 사실이 드러났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롭고 또한 마리아의 일을 폭로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몰래 그를 소박하기로 작정하였다. 요셉이 이런 속셈을 하고 있을 무렵 마침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그에게 말했다. "다윗의 자손 요셉! 마리아를 당신 아내로 데려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사실 그 몸에 수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마태오 1.18-20). 구세주의 탄생에 얼킨 일들을 묵상하는 동안 하느님을 찬미하는 소리가 절로 터져나온다. |
4. 가나
예수께서 물을 술로 변하게 하신 첫 기적을 행하신 혼인잔치가 있었던 가나촌의 오늘 날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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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기적 기념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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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카프르 칸나는 나자렛과 티베리아를 잇는 지방 도로변에 있는데 나자렛으로부터 대략 8킬로미터 떨이진 곳이다. 16세기경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이곳이 요한 복음사가가 말하는 가나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1641년에 프란치스꼬 수도회에서는 이 곳에 시선을 돌리게 되었는데, 1566년에 이미 세워진 희랍 정교회 소속 경당으로 인해서 였다고 한다. 1879년에 혼인잔치가 열린 곳이라고 전해진 부지를 매입할 수가 있었고, 1883년에는 기념성당을 건립했는데 이 기념성당은 오늘 날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지하성당에 내려가 보면 제단 옆에 상당히 큰 물 항아리가 하나 놓여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든 예수의 기적을 기념코자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리고 물 항아리가 놓여진 곳에 라틴어로 "여기에 여섯 개의 물항아리가 놓여 있었다.(Hic erant sexhydriae positae)"라고 새겨 놓기까지 해 이곳을 찾아오는 순례자들의 눈길과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