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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버림받은 마음(소외감)의 아픔과 축복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5. 10.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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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림받은 마음(소외감)의 아픔과 축복

 


  누가복음 15장 4절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눅 15:4)


  최근에 누군가에 의해서 버림받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버림받음 곧 소외감은 실제로 경험해야 실감이 나는 법입니다. 내적치유를 공부하면서 흔히 생각합니다. “우리가 과거에 죄인이었으니까 버림받은 것이고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우리를 택하셨고 지금은 하나님과 함께 있다.” 이런 생각은 버림받음에 대해 실감이 나질 않게 합니다.


  버림받은 마음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 목회자들의 경우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대개의 목사님들은 과거에는 버림받은 마음으로 아프게 살았을지 모르지만 신학을 하고 목회자의 길을 가면서 “버림받음이란 세상의 죄인들 속에나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자신에게는 별 상관없다”라고 느끼기가 쉽습니다. 가끔 목사님들이 자기 속에 버림받은 마음을 보지만 자기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힘듭니다. 평신도보다도 더 인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버림받음의 반대는 선택받음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님들은 선택받은 자들이라고 자신을 생각합니다. 여러분, 평신도들도 모두가 선택받은 자들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럼에도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자신들이 더 선택받은 자들이라고 생각하며 삽니다. 물론 성경적인 근거가 있는 생각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지 않고는 목회자의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목회자들의 생애 가운데에는 부르심과 특별한 선택이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목회자들에게는 버림받음이 멀게 느껴집니다. 어떤 평신도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는 안 들어 주실지 모르지만 목사님의 기도는 들어 주실 거야” 이는 목사 스스로도 버림받음을 멀게 느끼지만 성도들도 목사님의 버림받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유에서 나온 선입견입니다. 목사님들은 하나님과 더 가까이 있는 것 같기에 장자로서의 삶을 사는 것 같기에 소외감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가 쉽습니다.


  사실 목사님들은 신학을 할 때부터 교회 안에서 전도사님으로 대접을 받습니다. 즉 교회 안에서 늘 중심이 되어있습니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개척교회를 시작하여 교인들이 조금만 늘어도 버림받지를 않습니다. 혹 한 사람이 나를 버린다고 해도 나머지 99명이 나를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목사님, 목사님”하면서 자신을 따르니까 버림받지 않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버림받은 마음을 느낄 기회가 없습니다.


  목사님이 어느 가정에 심방 간다고 하면 심방을 받는 성도는 방을 치우고 청소를 하면서 야단이 납니다. 아마 목회자 뒤에 하나님의 권위가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이도 훨씬 많으신 분들이 젊은 목회자에게“목사님. 목사님”하면서 섬깁니다. 가장 좋은 것을 준비하여 대접합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은 목사의 이야기를 항상 들으려고 합니다. 이처럼 목회자는 항상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버림받음과는 자꾸만 멀어집니다. 항상 특별한 사람으로 취급받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목회자 개인에게 좋기도 하지만 때로는 불행한 모습입니다.


  목사님들은 분명히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택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성경은 버림받은 데에서 택함이 온다고 가르칩니다. 내가 택함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자에게 택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버림받았다라고 믿는 자에게 택함이 있습니다.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가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장자와 차자를 보십시오. 성경은 장자가 버림받고 차자가 택함을 입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방인이나 고아를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계속 보여줍니다. 버림받은 상태에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하거나 탕자라고 고백할 때에 여호와께서는 그 사람을 택하십니다.


  왜 우리가 택함을 입었습니까? 내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내가 주님 앞에 버림받은 자이기에 택하신 것입니다. 즉, 버림받으니까 택함이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더 택함을 받은 것은 더 버림받았기 때문입니다. 왜 레위지파가 택함을 입었습니까?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레위라는 인간이 가장 문제가 많았습니다. 유난히 골치 덩어리였습니다. 레위가 더 죄인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것으로 옷을 입히신 것입니다. 더 문제가 많았기에 더 택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 교회에 앉아 있는 것도 참 문제가 많았기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버림받았던 과거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을 택하여 가나안에 가시게 하기 전 먼저 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애굽에서 400년 동안 버림받게 하신 것입니다. 비참한 모습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왜 그리하셨을까요? 택함을 입은 다음에 “종 되었던 때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가나안에서 풍성한 생활을 할 때에 애굽의 종 되었던 때를 기억하게 하시려고 400년 동안 버림받게 하신 것입니다. 신명기 말씀들입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신 5: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내실 때에 네가 목도한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 그와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두려워하는 모든 민족에게 행하실 것이요  (신 7:1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신 8:2)


  구약에 보면,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유월절을 기억하라”, “때를 기억하라”, “고아와 과부를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있는 버림받음, 죄를 기억하라는 연유에서 하신 말씀들입니다. 다른 말로, 겸손하라는 말씀입니다. 종 되었던 때를 잊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택함을 받은 종이지만 무익한 종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본인 때문에 택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목적 때문에 택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선민의식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버림받았던 때를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바벨론에 노예로 끌려가게 하셨습니다. 그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버림받은 자들임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사실을 깨닫자마자 여호와께서는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역사하시고 말씀하십니다.


  저를 위시해서 많은 목사님들이 은혜를 받고 능력을 받은 다음에 쉽게 버림받은 종이라는 기억을 잊어버리는 위기를 맞이합니다. 구약에서 제사장으로 택함을 입은 레위인들이 가장 문제가 많았던 사람들이었음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레위인들을 제사장으로 택하셨습니까? 버림받은 종이라는 사실을 다른 지파보다는 덜 잊어버릴까봐 그리하셨던 것입니다. 문제가 덜한 사람보다는 문제가 많은 사람이 그래도 덜 잊어버릴까봐 택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픈 과거를 기억하고 싶지 않은 본능이 있습니다. 문제가 많은 사람일수록 더 많은 문제가 있었기에 빨리 과거를 잊어버리고 싶은 욕구가 강합니다. 지긋지긋하니까요. 빨리 거룩한 모습으로 살고 싶으니까요. 더 강해야 하고, 더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더 인정받고 싶은 것이 문제가 더 많았던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심리현상입니다. 하나님은 더 기억하라고 택해 주셨는데 우리의 마음은 반대로 빨리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이것은 특히 주의 종으로 택함을 입은 김계현 목사의 축복이기도 하지만 위기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 속에는 이방인으로서 버림받음이 있는데 우리를 택하심이 너무 강하고 커서 버림받음과의 거리가 자꾸만 멀어져 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크고 그 분의 능력이 너무 크게 임하여서 버림받음이 자꾸만 싫어집니다. 결국 버림받음의 마음이 더욱 깊이깊이 마음속으로 갇히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사랑과 인정, 은총과 은혜, 능력과 권위 속에 살다보면 자신이 버림받은 사람인 줄도 모르고 살게 마련입니다. 그러다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옛날 이스라엘을 다시 버리셨듯이, 그들로 버림받은 생활을 다시 하게 하셨듯이, 우리도 버리시고 버림받은 생활을 다시 하게 하실 지도 모릅니다. 주의 종들, 특히 하나님의 사랑을 크게 입은 자들, 집사님들, 너무 강한 택함을 경험한 자들. 참으로 큰 은혜입니다. 그러나 내적치유의 시간을 통하여 자신의 택함을 벗읍시다. 자기 속에서 버림받은 이방인의 모습을 찾읍시다. 그래야 더 아름다운 택함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입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 1:15)


  바울은 이 비밀을 알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항상 버림 받아야할 존재임을 인식했습니다. 그는 자신 속에서 항상 버림받음을 드러내며 주님 앞에 섰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그를 항상 택하셨습니다.


  종 되었던 때를 기억하면 더욱 택해주시는 은총을 주십니다. “내가 택함을 늘 입는 것은 택함 받을만한 조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버림받은 자이기에 은혜를 주신 것이다”라고 생각합시다. 자신이 버림받은 자가 될 때 에야만 더 큰 은총과 택함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의 구하는 바를 안 주시겠습니까? 십자가 앞에서 내가 가슴을 찢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내가 무력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가난해집시다. 그 분 앞에서 애통하십시다.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우리도 “나의 능력은 오직 십자가뿐”이라고 말합시다. “내가 죄인 중에 괴수로서 버림받아야 마땅한 자”라고 깨달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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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창골산봉서방http://cafe.daum.net/cgsbong
글쓴이 : 둥근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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