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테크/기차세상

[스크랩] 그녀를 닮은 인생이면 좋겠다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5. 13. 13:32

 

 

 

 * 이 글은 KBS 1TV <뉴스광장>의 열차 여행정보 코너 ‘웰빙광장’의 제작과 출연을 담당하는 코레일 홍보실 하기쁨 직원이 촬영과 방송 후 에피소드를 담은 글입니다. *


명사와 함께하는 여행’을 촬영하면, 열차 여행의 장점을 부각하기에 유리한 방송을 만들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큰 배움을 얻는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라는 수식어를 이름 앞에 붙인 분과 하루를 온전히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이래저래 감사한 일이다.

 

KTX 개통 5주년을 기념해 사진작가 조선희 씨와 함께 KTX를 타고 가 대구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사진 여행’을 촬영했다. 그리고 3월 26일(목) 아침, KBS 1TV <뉴스광장>의 열차 여행정보 코너인 ‘웰빙광장’ 방송 후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렇게 즐거워도 될까 싶었던 촬영 현장. 여태 아흔 한 번의 촬영 중 손꼽히게 마음에 쏙 드는, 내용이나 일정 면에서 완벽을 기했던 하루. 감히 스스로 평가하건데 멋진 방송을 얻었고, 그보다 더 값진 인생의 배움을 얻었다. 그녀와 함께 나눈 촬영날의 숨겨진 뒷이야기를 소개한다.

 

 

 

- 조선희 : 사진 찍는 건 좋아해?
- 하기쁨 : 저 사실은 찍히는 거 더 좋아해요
- 조선희 : 이쁘지도 않은데 왜그런데? (웃음)

 

우리의 촬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녀의 저서 ‘네 멋대로 찍어라’를 앞에 두고.

 

- 조선희 : 이 책 봤어? 보고 느낀 점은?
- 하기쁨 : 전 사진 잘 찍는 데는 어떤 정해진 법칙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건 이래야 하고 저건 저래야 하고...
               그런 법칙이 있다는 선입관을 가지고 책을 봤는데 그게 아니여서 감사했죠.”
- 조선희 :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심사가 있었어.
               네이버에서 공모전에 응모한 사람들 사진 제출한 것을 보고
               평가해달라고 하더라고. 오 잘 찍었네? 싶은 사진이 있어서 놀라고 있는데
               다음에 비슷한 사진이 또 나오고, 또 나오고 계속 나오는 거야.
               다 똑같은 사진 찍으려면 뭐하러 찍어?

 

 

 

- 하기쁨 : 올리브 티비에서 제작한 여행기 영상에서 “죽을 때까지 사진 찍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전 그 말씀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 조선희 : 그치. 난 죽을 때까지 사진 찍고 싶어. 
               그러려면 편안한 분위기가 조성이 돼야 하는데... 
               외국에서는 호칭이 "You" 잖아. 
               서로 격의 없이 터놓고 지내는 분위기가 가능해서

               그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현장에 있을 수 있지. 
               그런데 우리는... 자기만 해도 나한테 벌써 선생님이라고 부르잖아. 
               거리감 확 생기는 거지(웃음). 편하게 마지막 순간까지 현장에서 있고 싶어.

 

   

 

- 조선희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봤어? 보면서 어땠어?
- 하기쁨 : 인생과 나이듦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고 할까요.
- 조선희 : 난...인생이 정말 짧구나. 정말 즐길만 하면 가야 하겠구나.
               그래서 사는 동안 최대한 즐겁게 살아야겠구나.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말야.
- 하기쁨 : 지금 선생님 나이가 딱 벤자민과 사랑하는 여자가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내던 그 나이에요.
- 조선희 : 그렇구나.

 

그녀와 나는 띠동갑, 둘 다 돼지띠다.

 

 

 

- 하기쁨 : 열차는 자주 타세요?
- 조선희 : 요즘은 대구에 강의가 있어서(경일대 사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꼭 타지. 난 어릴 때부터 열차 타는 거 정말 좋아했어.
               예전에 비둘기호 타봤어? 막 닭을 들고 타고 그랬다니까.
               사람 구경하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
- 하기쁨 : 전 비둘기호는 얘기만 들어봤어요. KTX에선 그런 매력은 좀 덜하죠?
- 조선희 : 그런게 좀 서운하긴 하지. 온갖 종류의 사람을 구경하기는 힘들다는 거.
               그리고 너무 빨라~ 구경좀 하려고 하면 도착해버리니까(웃음)
               그래도 그 덕에 하루 만에 이렇게 여행도 하고, 바쁜 일도 다 보고
               돌아올 수 있으니까 정말 장점이지.

 

 

 

이런 곳에 영상박물관이?’ 싶은 대구 화전동 골목 건물의 2층에 위치하고 있다. 규모도 크지 않고, 눈에 띄는 모양으로 서있지도 않지만 들어가면 입이 떡 벌어지는 곳이다. 천여 점의 카메라가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최초의 필름카메라, 최초의 즉석카메라, 영사기 등등.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종류의 카메라들에 조선희 작가는 연신 “이거 안파세요? 팔진 않으시죠?” “나도 비슷한 거 있기는 한데 갖고 싶다.” “난 나무가 좋아. 이렇게 나무로 된 옛날 것들...느낌이 정말 좋잖아.” 감탄을 연발한다. 

 

 

 

- 조선희 : 똑딱이 카메라하고 내가 쓰는 카메라 하고 둘 다 가져오기는 했는데 어떤 걸로 찍을까요?
               나 같은 사람도 이런 똑딱이 카메라 쓴다는 거 보여줘야 하는데.
- 하기쁨 : 그럼 여기선 똑딱이 카메라로 찍으시고, 다음 장소에서 쓰시는 걸로 찍으시죠.

 

조선희씨는 똑딱이 카메라(디카 류의 작은 카메라)를 애용한다. 책에서도 말했듯 무거운 카메라는 이동하기에 불편해 걸음을 줄이게 하기에, 여행갈 때 작은 카메라를 애용하게 된다고.

 

봄꽃이 만개해 아름다운 경상 감영공원의 하늘과 꽃, 나무를 보자 마구 셔터를 누르신다. “이건 벚꽃, 이건 목련이네.” 살구꽃잎이 흐드러지게 피고 져 바닥을 메운 공원 바닥에 앉아 또 대화를 나눠본다. “바빠서 꽃 피는 것도 모르고 살았네. 이렇게  안나와봤으면 꽃 피는지, 지는지도 모르고 사는데 정말 좋다. 우리 이걸로 셀카 찍을까?” 포즈 취하기가 어색해서 계속 손가락이 V자를 그리자 한 마디 던지신다. “브이 좀 하지마!” 

 

 

 

- 하기쁨 : 이 골목이 경상도 말로 길다를 “질다”라고 하기 때문에 진골목이래요.
- 조선희 : 아 그래서 진골목이야? 재밌네.

 

진골목 식당에서는 육국수를 판다. 육국수는 육개장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는 것인데 더운 고장 대구에서 이열치열로 매운 음식을 먹었고, 배고픈 시절 국수를 불려 먹던 풍습이 합쳐져 대구의 별미로 전해오고 있다.

 

육개장을 퍼 올리는 아주머니를 향해 연신 사진을 찍는 조선희 작가. 이렇게 시장과 거리의 사람들을 향해 인간적인 모습,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담아내는 게 그녀의 특징이다.

방송을 위해 받은 그녀의 이 날 사진을 보니, 육개장을 뜨던 아주머니의 손등을 사진에 담았다. 핏줄이 도드라지고, 주름이 인상적인 사진. 육개장을 뜨는 할머니의 표정이나 전신이 사진에 담기겠거니 생각했던 나는 거기서 몇십 년을 일하며 살아온 할머니의 손등, 도드라진 핏줄과 주름진 모양이 애틋한, 우리 어머니들을 대변하는 사진으로 재탄생 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너무 좋다! 한 번 더 들어봐! 아 이쁘다~ 멋있다! 좋다! 한 번 더 여기 봐!”
보쌈 고기와 돼지 간을 앞에 두고 시장 아주머니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발휘되는 그녀만의 친화력이 시장 전체의 분위기를 휘어잡는 듯하다. 그런 말과 분위기 앞에서 모델들은 긴장을 풀고 환하게 웃고, 경계심을 던져버린다. 좋은 인물 사진을 찍는데 필수적인 친화력. 조선희 작가의 제일가는 매력이었다.

 

시장 한구석에서 야채를 파는 할머니는 몇십년 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시단다. “아 이쁘다 할머니, 난 할머니랑 자라서 그런지 할머니들이 너무 좋아. 여기 봐봐요. 아 좋아 좋아” 왜 그녀의 스튜디오 이름이 ‘조아조아’인지 알겠다.
 
이런 골목 시장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라고 한다. 투박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것, 촌스러운 것을 그녀는 좋아한다. “여기 봐 여기 이거 맛있네, 너무 좋다. 괜히 밥 먹고 왔다. 이거 사먹어야겠다. 나는 호두 정말 좋아해.” 온통 칭찬 일색이니 상대방은 더 가깝게 다가온다. 나에게는 “얘는 이런 거 안 좋아하게 생겨가지고 이런 거 되게 잘 먹는다.” 하신다.

 

 

 

그녀 같은 사람이고 싶다. 에너지가 넘치고, 사람을 좋아하고,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 한 가지에 미칠 수 있고, 그것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사람. 투박한 것의 매력을 알고 털털한 성격으로 상대방을 무장 해제 시킬 수 있는 사람. 방송에도 베테랑, 인터뷰에도 베테랑이어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수월하게 해준 사진작가 조선희씨는 그런 사람이었다. 

 

------------------------------------------------------------------------------------------

 

* 촬영일 3/22, 방송일 3/26

 

* 방송 다시보기 
http://news.kbs.co.kr/article/culture/200903/20090326/1746422.html 

 

출처 : 코레일 블로그 "만나세요, 코레일"
글쓴이 : 코레일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