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테크/기차세상

[스크랩] 금강산 촬영기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5. 13. 13:34

 

 

금강산, 만나면 이어집니다.

 

림철진 : (내 명찰을 바라보며) 하선생님은 본명이십네까?
하기쁨 : 네 본명이에요. 호호
림철진 : 이름‘도’ 예쁘십네다.
하기쁨 : 아하하 고맙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림철진 : (명함을 보여주며) 림철진입네다. 고론데...
하기쁨 : ?
림철진 : 남쪽 간첩 이름 중에 제 이름하고 비슷한 이름 있습네까? 무슨 영화에 나온다고 하던데..
하기쁨 : ‘간첩 리철진’이요? 코미디 영화에요.
림철진 : 그 사람이 ‘실미도’에도 나옵니까? 잘생겼습네까?
하기쁨 : 아니요. 실미도는 다른 영화고, 그 배우 잘생겼어요.
림철진 : 하하

 

 

KBS 1TV 아침 뉴스 프로그램 ⌜뉴스광장⌟ 중 매주 목요일, 열차를 이용한 여행정보를 소개하는 코너 ‘웰빙광장’이 20회를 맞았다. 철길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다녔던 우리는 이번 촬영지를 금강산으로 잡았다. 물론 아직 열차로 금강산까지 갈 수는 없지만 이번 정상회담의 철도 관련 성과를 계기로 금강산, 나아가 백두산까지 열차 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가능한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 이번 방송의 주제였다. 

 

스무 번의 촬영을 하는 동안, 절경을 만나는 것보다 재밌는 일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다. 지사와 역에 근무하시는 사우 분, 지자체와 축제 관계자나 지역 주민, 여행객 등 방송이 계기가 되지 않았으면 뵙기 힘들었을 분들을 만나는 것은 업무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유익한 경험이다. 특히 금강산 촬영에서 그 유익함이 배가 됐음은 물론이다. 우리가 올랐던 (비교적 등반이 수월하다는) 구룡연 코스에는 상팔담, 구룡폭포, 옥류동 계곡 등 그림 같다는 말조차 무색할 정도의 절경이 가득했지만, 그보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여행 도중에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나눈 이야기였다.

 

육로관광으로 차를 타고 비무장지대를 지난다는 기대감만큼 현대아산 휴게소, 남측 출입국사무소, 북측 출입국사무소에서 모두 내려 몸과 짐 검사를 받는 과정의 피로감은 크다. 하지만 만날 때는 ‘반갑습니다’ 헤어질 때는 ‘다시 만나요’ 노래를 틀어놓는 북측 CIQ에 도착해 만난 경직된 인민군들을 지켜보며 피로도 잊었다. 북측으로 들어서면 10m 간격으로 우리를 지켜보는 인민군들이 서있다. 그들은 나이도 어리고 경계하는 눈빛에, 카메라를 이리저리 살피며 “이건 무슨 렌즈입네까?”라고 묻기도 한다. 그들의 경직되고 어눌한 모습에 묘한 기분을 느낀 것은 나뿐이 아닌지 인민군의 걸음걸이를 따라하다가 돌아오지 못한 남측 관광객도 있다고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맞은 등산의 시작점. 목란다리에서 첫걸음을 떼면서부터 금강산 곳곳에서 바위에 새겨진 김일성 주석의 글귀를 볼 수 있다. 구룡연 코스 등산을 시작한 지 수 십분 후면 김일성 주석이 ‘이 문을 지나야 진정으로 금강산을 만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는 금강문을 지나게 된다. 커다란 바위 두 개 사이로 두세명이 지날 만큼의 공간이 남는 곳인데 우리가 찾았던 날은 신계사 낙성식으로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이래 가장 많은 남측 관광객이 찾은 날이라 그런지 금강문 앞뒤가 꽉 막혀 한참을 기다리다 지나가기도 했다.

 

숨이 가빠질 무렵, 옥류동 계곡과 선녀탕을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여행객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 안내원들과 나의 대화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남측 안내원(현대아산 직원)들은 왼쪽 가슴에 명찰을 달고 있는데 반해, 북측 안내원들은 왼쪽 가슴에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뱃지(라고 하면 싫어하고 휘장)가 달려있고 명찰은 오른쪽 가슴에 달고 있다. 하지만 명찰은 대부분 감추고 있는데, 산을 오르내리는 동안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거는 건 항상 그들이 먼저였다. 금강산 여행은 처음이라고 말하자 “정말 이런 비경에 놀라셨겠습니다. 너무나 좋으시지요?”라며 어린아이가 좋은 장난감을 자랑하듯 뿌듯해했다.

 

특히 구룡폭포의 세차게 떨어지는 폭포수에 눈길을 빼앗겼을 때 만난 북측의 한 안내원은 궁금한 것도 많고, 하고싶은 말도 많다며 남측 사람들이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12월 대선에서 정권이 바뀌면 정상회담 합의 사항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닌지,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에 왔을 때 남측 사람들 반응이 어땠는지를 물었다 또 “우리는 남쪽보다 훨씬 더 통일을 원하고 있습네다. 우리는 백프로 통일을 원합네다.”라고 강력히 의사 표현을 하면서 의심과 희망이 교차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도 했다. 
 
구룡 폭포에서 힘을 더 내면 드디어 발 아래로 8개의 연못이 보이는 상팔담이다. 선녀와 나무꾼의 선녀가 목욕하던 이야기의 배경이 되기도 한 곳인데 워낙 가파르기에 도중에 포기하는 여행객이 많을 만큼 힘든 코스다. 특히 10kg에 달하는 ENG 카메라를 들고 등산하는 것은 웬만큼 숙달된 감독님이 아니면 불가능한데, 우리 촬영팀도 직접 상팔담을 보기 전까지는 그곳까지 올라가기로 한 것을 후회하며 산을 탔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서 화려한 듯 정갈한 이 산에 다시 반하게 됐다. 게르마늄이 섞여 맑다 못해 초록빛까지 내는 계곡물은 너무 깨끗해 먹을 것이 없어 물고기도 살지 못한다고 한다. 정상에 이른 자신을 선녀가 된 기분으로 만들어주니 산에 대한 여행객의 마음가짐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남측 여행객들은 쓰레기를 거의 버리지 않았고 인터뷰이들은 한결같이 이 산이 꼭 잘 보존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녀와서 걸린 지독한 독감도 감사한 여행이었지만 세 가지 뒤끝이 남아있다. 첫째는 여행을 한 지 이틀만에 내가 신나서 뛰어다녔던 흔들다리가 무너졌다는 데 느낀 아찔함이요, 둘째는 빠듯한 일정으로 북한 음식을 맛보지 못하고 돌아온 아쉬움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다음에 다시 만나요.” 하고 헤어졌던, 한결같이 똑같은 쌍꺼풀 수술을 했는데도 아름다운 북측 여성들에 대한 묘한 친근감이다.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좋은 구경을 하고, 만나기 쉽지 않은 사람들까지 만날 수 있으니 나는 복 받은 사람임이 분명하다.

 

 

* 촬영 일정

 

동해역 → 현대아산 버스 탑승, 현대아산 휴게소 → 남측 CIQ → 북측 CIQ →온정리 온정각 → 목란관, 구룡연 코스 시작 (만물상 코스와 구룡연 코스 두 가지가 있는데 구룡연 코스가 비교적 등반이 쉬우며 만물상 코스는 풍경과 등반코스가 더 남성적임) → 양지대 → 삼록수 → 금강문 → 오류동계곡 → 비봉폭포 → 구룡폭포 → 상팔담 (보통은 구룡폭포에서 등산을 마무리하며 상팔담까지 오르는 길에는 가파른 절벽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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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일 07/10/18, 촬영일 07/10/11~12)

출처 : 코레일 블로그 "만나세요, 코레일"
글쓴이 : 코레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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