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여, 떠나라
- ‘내일로 티켓, 전국일주 배낭여행-영월’ 편 방송후기 -
왜 철도를 애용하고 사랑하는 분들은 대체로 착하고 순수하고 꾸밈이 없는 걸까요?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과학적인 증거를 댈 수는 없겠지만, 제가 만나본 이들은 대부분 그러했기에 저는 그 이유가 무척 궁금합니다. 네이버 카페 ‘철도여행동호회’ 분들과의 양평 여행, 그리고 열차를 사랑하는 사람들 ‘바이트레인’ 분들과의 이번 ‘내일로 티켓, 영월 여행’ 후 ‘왜 철도를 사랑하는 분들은 다들 사람 좋고 순수한지’에 대해 연구라도 하고싶은 심정입니다. 아마도 철도의 매력이 그것이기에 거기에 끌리는 사람들 또한 그런 성향이 아닐까 싶네요.
만 18세에서 24세. 이 나이대에 속하는 청년들이라면 주목하시길 바랍니다. 6월 14일부터 8월 31일까지, KTX를 제외한 모든 열차를 7일간 무.제.한. 이용하는 티켓의 가격이 54,700원입니다. 무제한이니 마음이 당기지 않으신지요? 열차를 타고 숨겨진 대한민국 땅들을 한 번 밟아봐야 하진 않을지. 지금이 아니면 누리기 힘들 특권을 누려봐야 하지는 않을지요.
이번 촬영에 모신 분들은 이 좋은 기회에 철도로 전국을 누비고 다니고자 하는 젊은이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철도를 사랑하고 관심도 많아서, 또 공부도 많이 해서 ‘철도 전문가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나가는 열차의 소리만 듣고도 어떤 열차인지 종류를 알고, 전국의 철도 노선도를 꿰뚫고 있으며, 각 철도역들에 대해 말할 이슈들이 최소 한 가지 이상은 있는 분들. 거기다 작년에는 5만원도 안되는 ‘내일로 티켓’을 이용해 50만원 어치의 열차를 탄 회원까지 있었으니 이 분들과 여행하며 철도에 대한 지식은 물론 그 열정을 배우고 싶어 혼났더랬습니다.
전국일주 코스 중 첫 날, 우리 촬영지는 영월과 정선 지역입니다. 청량리역을 출발해 영월역, 예미역을 통해 대학생들이 배낭을 메고 가볼만한 여행지들을 돌아봅니다. 함께여서인지 몰라도 이 지역에서 선정된 세 가지 ‘얘기꺼리’들이 모두 재밌고, 의미도 있습니다. 방송이 처음인 분들과의 촬영이니 순탄할 리는 없겠지만 같은 장면, 같은 인터뷰를 찍고 또 찍으며 우리는 서로서로 친해집니다.
1. ‘청령포’. 영월에서도 배를 타고 들어가는 외딴곳. 왜 이곳으로 단종을 유배시켰는지 알만합니다. 지금도 찾기 힘든 이 곳, 당시 더욱 오지였을 여기에 유배되어 어린 나이의 단종은 매일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요. 단종이 남긴 시에서 그는 시냇물에 부딪히는 돌멩이 소리도 시끄럽고, 밤이면 맹수가 내려오지는 않을까 무서움에 빗장을 건다고 합니다. 소나무로 가득한 푸른 섬 청령포에는 왠지 모를 슬픈 기운이 흐르지만, 이슬이 맺히는 깊은 산골 속, 경치가 참말 대단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2. ‘당나귀 체험’. 직접 당나귀를 타봅니다. 놀이기구는 안무서워도 동물은 무섭다며, 듬직하게 나귀를 모는 남학생들 6명 사이에서 혼자 겁을 냈지만, 살아있는 동물 위에서 풍경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엉덩이를 때리며 “가자!” 하면 앞으로 가고 고삐의 왼쪽을 당기면 왼쪽으로, 오른쪽을 당기면 오른쪽으로 가고, 함께 당기면 섭니다. 초보들이 등에 타면 당나귀들도 그걸 알고 말을 잘 안듣는다는데, 이 아이들이 제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길 아닌 길로 가고, 먹는데 정신 팔려 꼼짝도 안하고. 하지만 당나귀 아저씨의 유쾌한 진행과 순조로운 협조가 기염을 토했는지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당나귀 촬영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3. 예미역에서 가는 ‘정선 아리랑 학교 추억의 박물관’.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학생이던 시절의 물건들이 개조된 폐교에서 고스란히 기다립니다. 지금은 ‘추억의 삐라전’이 열려, 남과 북이 서로를 과장해 자랑하고 허위 사실(?)을 유포하던 때의 ‘삐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 당대 최고의 미인들이 표지를 장식한 선데이 서울, 지금은 바뀐 맞춤법으로 쓰인 교과서들, 손때 묻은 책상과 의자, ‘김일성 사망’ 등의 기사가 쓰인 예전 신문들까지. 교통편이 좋지 않다는 한 가지 흠만 빼면 추억의 박물관은 정말 추억을 곱씹기 좋은 곳입니다.
열차로 가는 데 3시간, 오는데 3시간, 결코 짧은 시간과 거리는 아닌데도 오며 가며 이들은 기차 이야기로 꽃을 피웁니다. 촬영팀은 올라오는 열차를 타면 지쳐 잠들기 일쑤인데, 이들은 젊음의 힘 덕인지 서로에 대한 친근감의 힘 덕인지 쉴 새도 없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습니다. 저도 대학생 때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이것저것 시도도 해보았기에 후회 없는 청춘 시절을 보냈다고 자부하지만, 저렇게 한 가지에 미쳐서 한 시절을 보내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부러워하는 마음,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꼭 이들만큼 열차를 잘 알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고 좋아만 해도, 아니면 호기심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일상에서 벗어나 ‘나’를 발견하고픈 마음, 철도 위에서 청춘을 불태울 마음만 있다면 이 글을 읽는 젊은 블로거 여러분들도 떠나보심이 어떨지요. 그저 그 마음만이면 충분하다고 확신합니다.
* 방송일 08/06/26 촬영일 08/06/21
* 촬영일정
청량리역→ 영월역→ 청령포(작은 배를 타고 들어가고 나옴. 단종의 생활 모습이 보이는 단종어가, 단종의 유배 모습을 보고 울음을 들었다는 두 갈래 소나무 관음송, 높은 곳에 올라 한양을 바라봤다는 노산대, 고향을 그리워한 망향대 등) → 당나귀 체험장(50여 차례의 방송에 출연할 만큼 인기 만점) → 예미역 → 추억의 박물관(정선 아리랑학교, 택시 이외에 박물관까지 가는 교통편이 없음, 8월까지 추억의 삐라전이 열림)
* 방송 다시보기
http://news.kbs.co.kr/article/culture/200806/20080626/158537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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