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혼자 조용히 볼 수 있었던 것은 참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오로지 영화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도 그렇지만 이런 류의 영화는 정말 고요하게 사색하며 홀로 관람
해야 할 것 같거든요. 영화가 던져주는 메세지가 아주 광대하다고 느껴졌고, 그런 점에서 오롯이 혼
자일 필요가 꼭 있다고, 그래야 제대로 영화감상이 가능하다고 확신합니다.
우선 이 영화는 18 세기 말 어느 프랑스 마을에서도 분주하고 위생과는 거리가 먼 시장통에서 생선을
다듬던 어느 여인이 홀로 생선도마 밑에서 아기를 출산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화면이 아주 생생해
서 처음부터 눈이 부실 정도였는데, 생선과 온갖 오물찌꺼기들, 그리고 죽은 동물들의 내장과 비위생
적인 거리의 모습과 한 인간의 탄생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에서 흠� 생과 사의 묘한 하모니를 깨달으
며 영화 속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되더군요.
탯줄을 혼자 자르고 아이를 방치한 채 하던 일을 계속 하던 여인은(그 모습은 우리네 여인들이 못 살
고 힘들었던 시절, 밭에서 출산 후 곧바로 일을 계속 하던 모습을 떠올리게 했지요) 한 신사의 인사에
응답을 못할만큼 인사불성이었고, 급기야는 아이를 죽음으로 내팽겨쳤다는 의심 속에 교수형에 처해
집니다. 그렇게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불행의 씨앗처럼 보였는데,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할까요?
아님 처음의 불행이 결국 더 큰 불행을 불러왔다고 해야할까요? 그에겐 남들이 갖지 못한 기가 막힌
탈렌트가 있었죠. 바로 냄새에 관한 한 그의 코를 따라올 자가 없는 겁니다. 가히 ‘타고난 냄새의 귀
신’이었던 거죠.
고아원을 거쳐 더 이상 공짜로 고아원밥을 먹을 수 없을 때 그 아이(이름이 그르누이)는 하역장 막노
동꾼이 되어 마침내 독립을 하게 됩니다. 사실 이것도 돈을 받고 팔린 셈이라 독립했다고 말하긴 그
렇지만 이제부터 그 나름대로의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긴 한 셈이지요. 온갖 어려움 속에
서도 묵묵히 일만 열심히 하던 그에게 마침내 천재적인 그의 재능을 빛낼 기회가 찾아옵니다. 보스를
따라 처음 가보게된 파리에서 그는 향수를 만드는 사람이란 직업이 있다는 걸 알게되고, 또 우연치
않게 배달을 하게 된 곳이 바로 당시 퇴물취급을 받던 향수제조업자 발디니의 집이었던 겁니다.
첫 상면에서 자신의 천재성을 그에게 선보인 후 그르누이는 그의 조수가 되어 일대 최고의 향수 제조
자가 됩니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이미 그는 최고의 향수 제조자였지만 그에겐 더 큰 꿈이 있었죠.
바로 자신이 맡은 향기를 보존하는 방법을 배우고 더불어 지상 최고의 향수를 만들겠다는 야무진 꿈
이요. 그래서 그는 발디니에게 새로운 향수 제조법 100 가지를 알려주고, 당시 향수의 메카로 알려진
‘그라스’로 떠납니다.(사담으로 ‘그라스’는 몇 년 전 남편과 함께 방문했던 프랑스의 소도시인데 그때
그곳에서 향수를 몇 개 사온 기억이 있습니다. 몇 백년 전통을 지닌 향수의 본 고장이지요)
그라스에 도착하는 날, 그는 특유의 예민한 코로 은은한 향을 맡게 되는데 그게 바로 다름아닌 귀족의
딸 로라의 체취였습니다. 그는 처음 느껴보는 여인의 향기에 깊이 도취되었고, 그 이후 자신도 억제
하지 못하는 열정으로 한 여인을 따라갑니다. 뒤에서 그녀의 향을 맡다 발각된 그는 무심결에 그녀의
입을 틀어막게되는데 시간이 좀 지난 후 결국 그녀의 죽음을 발견하지요. 죽어있는 여인의 몸 구석구
석을 냄새 맡으며 체취를 자기 것으로 만든 그는 그 이후로 여인들의 향기에 빠져들게 됩니다. 다시
말해 사람에게서 짜낸 최고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그는 처녀만을 골라 살인을 일삼게 되는 것이죠.
그르누이는 몽매한 사람이었을까요? 아님 열정과 집념이 너무 지나쳤던 불행한 천재였을까요? 전 이
두가지 다가 바로 그르누이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보지 못하고, 사랑이라는
걸 알지 못하는 그는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개념조차 갖지 못했던, 몽매했고 불행한 사람임과 동시에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관한 한 최고가 되고팠던 극대한 열정과 집념을 가진 천재가 맞다고요. 이미
그를 제어할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었죠. 그는 오로지 하나를 향해 앞으로만 달려가는 철
저한 꾼이었습니다. 그에겐 걸리적거리는 것도, 그를 방해하는 그 무엇도 존재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마침내 그의 살인행위가 만천하에 공개되고, 극한 형에 처해질 처지에 놓였을 때 그는 자신이 그동안
심혈(차라리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희생된 처녀들의 넋이라고 말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지
만요)을 기울여 만들어낸 지상최고의 향수를 가슴에 품고 형장에 섭니다. 이미 그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살짝 귀뒤에 뿌린 그 향수를 맡은 사람들은 동요와 놀라움을 보여주는 한 편, 이성을 잃고 집단적인
최면의식을 행하게 됩니다. 이 향수를 맡은 사람은 즉각 다 사랑의 포로가 되는 셈인데 웬지 이 장면
에서 전 너무 작위적인 느낌으로 조금 감흥을 덜 수 밖에 없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네요. 이 전까
진 그저 다 너무 좋았기만 했었는데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대체로 아주 훌륭한 시적인 영상미가 돋보이고, 거기에 워낙 유명한 소설을 원
작으로 한 철학적 사유가 풍부하기에 근래 보았던 영화 중 몇 손가락 안에 들만큼 맘에 드는 영화임에
는 분명하지만 바로 문제의 이 장면만큼은 잊고 싶을 정도입니다. 물론 그가 만든 향수, 다시 말해 그
가 물불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모든 건 물론, 귀한 생명까지 희생시키며 탄생시킨 지상최고의 작품이 얼
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기 위한 한 방편일 수 있다는 걸 인정한다 하더라도 조금 과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그에 비해 차라리 그가 남아 있는 향수를 가지고 자신이 존재하게 된 원래의 장소, 자기의 고향인 시
장터로 돌아와 머리 위에 향수를 붓고 모든 이들이 그에게 달려들어 그의 존재가 향수와 더불어 산화
하는 마지막 장면은 훨씬 감동으로 남게 되었지요. 그 자신 여러 귀중한 생명을 자신의 최고작품을
위해 희생시킨 댓가로 그 정도는 그야말로 아주 새발의 피인 셈이긴 하지만, 역시 상당히 시적인 결
말이라고 여겨집니다. 이 마지막 장면으로 앞서의 반감했던 감흥이 제 자리를 찾았고 전 이 영화를
다시 아주 많이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궁금한 것은 제가 안타깝게도 아직 원작인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읽어보지 못해서 이
장면들이 단지 영화에서만 존재하는 것인지, 아님 원작에도 역시 그렇게 묘사되어 있는 것인지 하는
점입니다. 주위에 책을 읽어보신 분이 계시면 여쭤보고 싶은데 그것도 용이하지 않으니 천상 영화를
보고 그 다음 원작을 읽게 되는 또 다른 경우가 되어야 할 것 같네요. 기회가 되면 꼭 책을 읽게 되길,
그것도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그럴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영화의 묘한 듯, 매력적인 여운을 계속 빠
져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사족으로 이 영화로 해서 다시 한 번 퇴폐적인 듯, 그러면서도 질퍽하고 생생한 프랑스 문학과 그들
의 문화, 사회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쩜 요즘 읽고 있는 책 ‘고야’와도 전혀 무관하지 않아
더욱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영화의 내용은 슬펐지만 뛰어난 스토리와 감성적인 화면, 시적 영상미
를 회상하며 한참동안 이 영화를 가슴 한 자락에 간직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정말 감동적이면서도 센
세이셔널한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아주 처연하게 아름다운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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