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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36강) 시편 35:1-28 나는 네 구원이라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5. 29. 05:50

 

 

 

 

 

 

 

 

 

(36강) 시편 35:1-28  나는 네 구원이라

 

 

은석교회 신윤식 목사

 

 

 

 

 

 

<본문>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방패와 손 방패를 잡으시고 일어나 나를 도우소서 창을 빼사 나를 쫓는 자의 길을 막으시고 또 내 영혼에게 나는 네 구원이라 이르소서 내 생명을 찾는 자로 부끄러워 수치를 당케 하시며 나를 상해하려 하는 자로 물러가 낭패케 하소서 저희로 바람 앞에 겨와 같게 하시고 여호와의 사자로 몰아내소서 저희 길을 어둡고 미끄럽게 하시고 여호와의 사자로 저희를 따르게 하소서 저희가 무고히 나를 잡으려고 그 그물을 웅덩이에 숨기며 무고히 내 생명을 해하려고 함정을 팠사오니 멸망으로 졸지에 저에게 임하게 하시며 그 숨긴 그물에 스스로 잡히게 하시며 멸망 중에 떨어지게 하소서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 구원을 기뻐하리로다 내 모든 뼈가 이르기를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요 그는 가난한 자를 그보다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노략하는 자에게서 건지시는 이라 하리로다 불의한 증인이 일어나서 내가 알지 못하는 일로 내게 힐문하며 내게 선을 악으로 갚아 나의 영혼을 외롭게 하나 나는 저희가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내가 나의 친구와 형제에게 행함 같이 저희에게 행하였으며 내가 굽히고 슬퍼하기를 모친을 곡함 같이 하였도다 오직 내가 환난을 당하매 저희가 기뻐하여 서로 모임이여 비류가 나의 알지 못하는 중에 모여 나를 치며 찢기를 마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연회에서 망령되이 조롱하는 자 같이 나를 향하여 그 이를 갈도다 주여 어느 때까지 관망하시리이까 내 영혼을 저 멸망자에게서 구원하시며 내 유일한 것을 사자들에게서 건지소서 내가 대회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많은 백성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무리하게 나의 원수된 자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시며 무고히 나를 미워하는 자로 눈짓하지 못하게 하소서 대저 저희는 화평을 말하지 아니하고 평안히 땅에 거하는 자를 거짓말로 모해하며 또 저희가 나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고 하하 우리가 목도하였다 하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이를 보셨사오니 잠잠하지 마옵소서 주여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 나의 주여 떨치고 깨셔서 나를 공판하시며 나의 송사를 다스리소서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공의대로 나를 판단하사 저희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소서 저희로 그 마음에 이르기를 아하 소원 성취하였다 하지 못하게 하시며 우리가 저를 삼켰다 하지 못하게 하소서 나의 해를 기뻐하는 자들로 부끄러워 낭패하게 하시며 나를 향하여 자긍하는 자로 수치와 욕을 당케 하소서 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로 기꺼이 부르고 즐겁게 하시며 그 종의 형통을 기뻐하시는 여호와는 광대하시다 하는 말을 저희로 항상 하게하소서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시편 35:1-28)


 

<설교>


9절을 보면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 구원을 기뻐하리로다”고 말합니다. 이 말처럼 신자가 여호와를 즐거워하려면 무엇보다도 즐거워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즐거움이란 어떤 일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즐거워 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없이는 여호와를 즐거워 할 수 없는 것입니다.그런데 대개 무엇으로 여호와를 즐거워하려고 하는가 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받은 것으로 즐거움을 삼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여호와를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받은 것에 대한 즐거움일 뿐입니다. 즉 9절에서 말하는 즐거움과는 다른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즐거움은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동일하게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동일한 삶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원하는 것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여호와를 즐거워 할 수 있는 근거는 여호와께 있습니다. 여호와가 행하신 일이 신자에게 즐거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은 바로 구원입니다. 여호와의 일은 신자에게는 구원이 됩니다. 여호와의 행하신 모든 일이 신자에게는 구원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32:11절을 보면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 할찌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찌어다”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을 보면 여호와를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는 사람은 마음이 정직한 자인 의인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의인들은 32:1절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입니다. 이 의인들이 여호와를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은, 허물을 사하시고 죄를 가리우신 여호와의 인자와 자비하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자비하심이 곧 구원이 됨을 알았기 때문에 인자와 자비하심으로 일하시는 여호와를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여호와를 즐거워하려면 여호와의 행하신 일을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행하신 모든 일들이 우리에게는 구원이 된다는 것을 안다면 신자는 설사 자신이 실패의 자리에 놓인다고 해도 변함없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보게 될 것이고, 여호와로 인해 여호와를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편으로 구원을 말하면서 구원을 쉽게 대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되고 구원이 되는 모든 일들이 간단하게, 쉽게 되어진 것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것임을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구원에 대해 왜 하나님의 능력이 동원되어야만 했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구원을 방해하는 악한 세력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의 구원을 방해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구속의 뜻과 계획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악한 세력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심으로써 택한 백성의 구원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이뤄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어떤 힘으로도 악한 세력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1절을 보면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라고 말합니다. 다윗에게는 대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자신의 대적을 하나님께 부탁하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자신과 싸우는 대적을 하나님이 싸워 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의 적을 하나님께 부탁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우리가 본문의 내용을 인용해서 개인적으로 미워하는 관계에 있거나 자신을 해롭게 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싸워 달라고 기도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대해 너무 무지한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메시야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다는 언약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을 대적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언약을 훼방하는 것이 됩니다. 다윗이 죽는다면 하나님의 언약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과 신실하심과 전지전능하심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대적을 개인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언약의 자리에서 여호와의 대적으로 바라보고 여호와께 대적과의 싸움을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하나님이 대적과 더불어 싸우시고 승리하심으로 인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성취된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승리로 인해 주어진 은총의 사건입니다. 우리의 구원이야 말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의 증거물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한 몸에 입은 자로 존재하는 것이 됩니다. 신자란 이처럼 하나님의 승리와 전지전능하심과 능력과 인자와 자비하심의 증거물로 세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자의 가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뛰어난 존귀한 자가 됨으로써 신자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구원으로 인해 감사하고 기뻐하며 여호와를 즐거워하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신자는 신자 됨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와의 싸움은 이미 창세기에 예고되어 있습니다. 창 3:15절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지금까지 세상은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과의 싸움의 구도로 흘러온 것입니다. 이 싸움이 세상에 최초로 드러난 것이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입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한 아벨이 가인에게 죽음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무산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은 이미 셋을 예비하시고 아벨의 자리에 셋을 세우셔서 언약을 이루어 가십니다.

 

 

 


유다의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서 언약이 중단될 위기에서는 다말을 등장시켜서 다말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언약을 이어가십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세상의 힘을 무서워해서 사라를 누이로 속이는 사건 역시 하나님의 언약이 무너질 위기였으나 하나님이 개입하심으로써 다시 언약을 이어가십니다. 이 모든 것이 악한 세력의 훼방이었습니다. 이러한 악한 대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심으로써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있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보지 못하는 또 하나의 현실은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비록 평온할지 몰라도 사실 세상은 하나님과 악한 세력과의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고백을 가진 자로 나와 있는 것도 하나님의 전쟁에서의 승리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구원을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7절을 보면 “저희가 무고히 나를 잡으려고 그 그물을 웅덩이에 숨기며 무고히 내 생명을 해하려고 함정을 팠사오니”라고 말합니다. 다윗의 대적이 다윗을 해하려고 그물을 숨기고 함정을 판 것처럼, 그리스도께 연합되어 있는 신자 역시 대적으로부터 이러한 훼방을 받으며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개인을 넘어뜨려서 지옥 가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과 은혜를 훼방하고자 하는 것이 그 목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죄를 경험합니다. 이 모두가 악한 세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증거이고 악한 세력 또한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여 넘어뜨림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기 위해 힘쓰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가 우리를 멸망으로 끌고 가지를 못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죄를 옹호하고 죄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를 알수록 애통하게 되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이 대적과 더불어 싸우시고 승리하고 계시는 증거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키심이고 보호하심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죄와 더불어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악한 세력을 여러분의 힘으로 대항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이 싸우시고 승리하심으로써 우리가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하늘에 소망을 두게 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늘을 소망하면서 하늘의 의의 나라에 거하기를 원하는 것이야 말로 악한 세력에 붙들린 자의 악한 심령이 아니라 의의 힘에 붙들린 거룩한 심령입니다.

 

 

 

 

이러한 심령을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승리로 인한 전리품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호와의 승리가 우리를 의의 나라에 붙들어 놓기 때문에 여호와가 우리의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에서 “창을 빼사 나를 쫓는 자의 길을 막으시고 또 내 영혼에게 나는 네 구원이라 이르소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8절에서 “멸망으로 졸지에 저에게 임하게 하시며 그 숨긴 그물에 스스로 잡히게 하시며 멸망 중에 떨어지게 하소서”라고 말하는 것처럼 대적은 결국 멸망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고 신자는 여호와의 승리로 인해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호와의 일로 인해 신자는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면서 보이지 않는 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있다면 그것은 여호와의 승리로 인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신앙의 근거는 여러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있습니다. 그래서 신자는 여호와를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출처 : 심플 라이프
글쓴이 : 심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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