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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6강) 시편 25:1-22 여호와여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5. 29. 05:56

 

 

 

 

 

 

 

 

 

(26강) 시편 25:1-22  여호와여

 

 

은석교회 신윤식 목사

 

 

 

 

 

 

 

<본문>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주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을 기억하옵소서 여호와여 내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 하옵소서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 도로 죄인을 교훈하시리로다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중대하오니 주의 이름을 인하여 사하소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리로다 저의 영혼은 평안히 거하고 그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앙망함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롭사오니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곤난에서 끌어 내소서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내 원수를 보소서 저희가 많고 나를 심히 미워함이니이다 내 영혼을 지켜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오니 수치를 당치 말게 하소서 내가 주를 바라오니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소서 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을 그 모든 환난에서 구속하소서 (시편 25:1-22)


 

<설교>


목사는 소위 신앙이 좋은 사람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목사 스스로도 목사 아닌 신자보다는 신앙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가 신앙이 좋은 사람인 것으로 생각하게 됨으로써 한 가지 폐단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의 영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다른 신자의 구원에만 신경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을 바라볼 줄 모르고 타인만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사에게는 거의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폐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사는 매주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예수를 열심히 믿으라고 소리칩니다. 목사가 타인을 바라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믿음의 길을 제대로 가지 않는 신자를 보면 화도 나고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좀 잘하라고 목청을 높이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바라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목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살아가지 않고 단지 교회의 담임목사로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를 교회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교회를 오랜 다녀서 성경의 내용에 해박하고, 나는 죄인이고 나를 위해 예수님이 피 흘려 죽으셨다는 내용에도 환할 때 그것으로 자신이 예수님을 신앙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가 실시하는 교회의 프로그램을 잘 따라감으로써 신앙의 길을 잘 가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저는 신자가 경계해야 할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그러한 자기 착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신자가 자기 착각에 빠져 산다면 자신을 향한 애통함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한 애통함이 없을 때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한 기쁨과 감사 역시 없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기 착각을 경계하는 것은 중요한 일 일수밖에 없습니다.

 

 

 


신자가 자신을 향한 애통이 없다는 것은 곧 영적인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이도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한 기쁨의 찬송이 가능할까요?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구원으로 기뻐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신에 대해 철저하게 애통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본문 25편도 그렇습니다. 25편은 1절의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영혼의 문제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25편은 원수로 인해 환난에 처한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인데, 그 기도의 내용이 환난에서 건져 달라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지켜 달라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기도와 다른 점인 것입니다.

 

 

 


대개 환난에 처한 자의 기도는 환난에서 건져 달라는 것으로 일관합니다. 환난에서 자신의 영적인 문제를 고려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참으로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만큼 육신에 매달려 사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환난 가운데서 영혼의 문제를 끄집어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이 환난보다 더 중요한 무엇인가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25편을 보면 다윗은 분명 원수로 인해 큰 환난에 빠져 있습니다. 2절에서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라고 말하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또한 16-19절의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롭사오니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곤난에서 끌어 내소서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내 원수를 보소서 저희가 많고 나를 심히 미워함이니이다”는 내용 또한 다윗이 원수로 인해 환난을 받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이처럼 원수로 인해 환난을 받고 있는 다윗이 11절에서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중대하오니 주의 이름을 인하여 사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환난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왜 자신의 죄가 크다는 것을 말하면서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4,5절에서는 주의 진리, 교훈, 도를 가르쳐 달라는 기도를 하는데 그렇다면 25편은 다윗이 환난에서 자신을 구원해 달라는 기도입니까? 아니면 그 영혼을 죄에서 구원해 달라는 기도입니까? 분명히 다윗의 기도를 보면 답을 후자입니다. 환난 속에서 자신의 영혼이 건짐 받기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원수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보다 더 중요한 영혼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25편에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우리는 대개의 경우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항상 육신의 문제에 매달려 살아갈 뿐입니다. 육신의 문제보다 더 크고 중요한 것이 영혼의 문제라는 것을 잊고 사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영혼의 문제, 즉 영적인 문제는 어떤 형편과 상황에서도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의지하고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지 못하고 세상의 일로 인해 불안해하고 염려한다면 그것이 곧 죄가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러한 죄를 원수로 인해 환난을 겪으면서 깨달은 것입니다.

 

 

 


다윗도 연약한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환난에서 불안해 할 수 있고 염려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큰 죄로 바라본 것입니다. 그래서 환난으로 인해 육신이 죽는 것보다 죄로 가득한 영혼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곧 영원한 죽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하심을 구하는 것보다 절실한 기도는 없었던 것입니다.

 

 

 


6,7절을 보면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을 기억하옵소서 여호와여 내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 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죄와 허물로 가득한 자신을 기억하지 말고 주의 인자와 긍휼로 기억해 달라고 합니다. 주의 인자와 긍휼로 기억된다면 죄로 인해서 심판받을 자가 아니라 용서 받은 자로 기억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환난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것조차 사단에게 미혹된 것으로 바라보는 신자에게 절실한 것은 하나님의 긍휼일 수밖에 없습니다. 죄에 빠진 자에게는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 필요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사단은 항상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긍휼과 자비로부터 멀어지게 하면서 자기만을 바라보게 합니다. 이것이 내 문제에 집착하고 매달리게 하는 사단의 미혹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를 부르는 다윗의 그 심정이 어떠한지를 조금이라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역시 자신의 영혼의 상태가 어떠한가를 늘 살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로 살아가는 가를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환난과 어려움이 있을 때 육신의 괴로움과 고통만을 생각하면서 속히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만을 바라기보다는 환난과 어려움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부터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면서 불안해하지 않고 낙망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처럼 자신을 들여 보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낙심하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가 참으로 크다는 것을 알기에 애통해하면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환난에서 건짐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의 인자와 긍휼로 기억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입니다.

 

 

 


육신의 문제에 집착하고 매달리면서 마음이 흔들리는 자신을, 자신의 힘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면 그리고 그런 상태로 계속 나아갈 때 결국 멸망일 수밖에 안다면 항상 주님이 내게 말씀하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내 영혼을 지켜 달라는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가장 큰 대적은 육신에 괴로움을 안겨주고 고통에 빠뜨리는 세상의 물질들이 아니라 끊임없이 쉬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주의 은총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사단의 계략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육신의 문제에 집착을 한다면 사단의 계략에서 헤어날 수 없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항상 여러분의 영적인 상태, 영혼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의지하면서 살아가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돈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사랑이 나를 살게 하고 있음을 자각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힘쓰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신자에게 육신의 문제는 단지 육신의 괴로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문제로 인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으로부터도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항상 자신을 경계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천국을 소망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시기를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출처 : 심플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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