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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5강) 시편 24:1-10 거룩한 곳에 설 자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5. 29. 05:56

 

 

 

 

 

 

 

 

 

(25강) 시편 24:1-10  거룩한 곳에 설 자

 

 

은석교회 신윤식 목사

 

 

 

 

 

 

 

<본문>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셀라)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찌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찌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찌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찌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뉘시뇨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셀라) (시편 24:1-10)

 


<설교>

신자가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노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잘 알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일까요? 그것을 말해주는 것이 24편의 내용입니다. 24편은 다윗이 오벧에돔의 집에 있던 언약궤를 성소로 옮기면서 지은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다윗이 언약궤를 성소로 옮기면서, 즉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이 시를 지었다는 것은 시편 23:6절에서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고 말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듯합니다. 왜냐하면 언약궤에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있고, 그 언약궤를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옮기는 것은 곧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함께 하는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고자 하는 소원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이 언약궤를 앞세우고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부르는 이 노래를 통해서 무엇이 하나님께 진정한 찬양이 되고 예배가 되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것입니다. 먼저 1,2절을 보면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창조주시라는 것을 노래하는 것인데, 단순히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노래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교회를 다니는 사람치곤 모를 사람이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인정하고 알아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여러분 집 마당에 정원을 하나 만드는 차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계획하신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세상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의 형편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하늘에서는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 전쟁에서 패한 타락한 천사가 하나님에 의해 세상으로 쫓겨 났는데 그것이 사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땅에는 이미 사단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많은 사람이 가지는 의문입니다.

 

 

 


왜 하나님은 사단을 그대로 방치한 채 세상을 창조하셨느냐는 것입니다. 사단을 미리 제거하고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셨다면 인간이 죄를 범하고 사망에 처하게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 아니냐는 생각입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항변할 수 있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들이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선악을 알게 된 인간들이 가지게 된 악한 생각입니다.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은 것은 악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왜 인간에게 불리하게 일을 하셨는가?’라는 불만이 싹트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사단을 제거하고 모든 창조를 하셨다면, 인간이 죄를 범하는 일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계속 에덴동산에서 편안하게 살았을 것이라는 가정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지 않습니까? 에덴동산 같은 천국에서 편안하게 사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편안한 삶을 위해 창조 사역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습니다. 그것은 엡 1:3-6절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이것을 보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택하시고 세상에 나게 하시고 부르신 그 모든 뜻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거저 주신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서 영광의 찬미를 받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사단을 제거하고 세상을 창조하셨다면 그런 은혜의 영광의 찬미가 가능하겠습니까? 죄의 자리에 떨어지지 않았기에 그리스도가 세상에 올 이유가 없고 따라서 그리스도로 인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자비 또한 알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영광의 찬미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으로 인해서 죄에 떨어진 인간들 가운데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을 부르셔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저 주신 은혜를 맛보아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노래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광의 찬미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속 사역입니다.

 

 

 


은혜의 영광의 찬미는 하늘의 천사들도 부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천사들도 죄의 자리에 떨어진 경험이 없고, 따라서 아들로 인한 인자와 사랑을 맛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자리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감사하는 신자의 찬미는 천사의 찬미보다 더 귀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의 중심은 하나님의 영광이지 우리의 구원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기 구원을 중심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길로 흘러가게 되고 하나님의 일하심 또한 도무지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말에는 단지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그 영광이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3,4절에서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고 노래하는 것도 그런 의미입니다.

 

 

 


다윗이 언약궤를 앞세우고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이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다윗과 같은 그런 노래를 부르면서 성전에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않는 자로다”라고 노래하면서 말입니다. 이 말은 결국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는 나는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하고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고 거짓 맹세치 않는 자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다윗은 그렇게 노래할 처지가 못 되지 않습니까?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인 다윗이 어떻게 그런 노래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다윗은 당당하게 그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죄를 짓지 않았거나 우리보다 낫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윗 역시 여호와의 산에 올라갈 수 없는 사람이고, 거룩한 곳에 설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그 노래를 부르면서 성전에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언약궤 때문입니다. 즉 다윗은 앞세우고 있는 언약궤로 인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바라보며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 노래야 말로 시 23:6절의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는 노래와 일치되지 않겠습니까?

 

 

 


언약궤에는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가 있습니다. 죄 없는 희생 제물의 피가 언약궤 위에 뿌려 짐으로써 이스라엘의 죄가 용서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하나님께 모든 사람의 허물을 덮으시고 용서하심으로써 죄 없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으시고 용서하심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모든 자를 죄 없다, 깨끗하다고 선언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는 아무도 나갈 수가 없습니다. 의의 하나님을 죄인 된 존재가 만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는 의 앞에서는 소멸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소멸될 존재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가 완전한 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안에서 의로운 자로 여김 받으면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의 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베풀어진 구원의 역사입니다.

 

 

 


이 구원의 역사를 아는 신자가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셀라)”(5,6절)는 노래를 부를 수가 있습니다. 신자가 여호와를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은, 오직 의는 하나님께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의를 얻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복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로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노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이러한 구원의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면 그것은 죄의 자리에 있던 인간의 실체를 간과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거룩한 곳에 설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생각지 않는 것입니다. 아니 아예 하나님께 나아가고 거룩한 곳에 선다는 것을 별 가치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항상 엉뚱한 것만 마음에 품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언약궤를 앞세우고 성전에 올라가면서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찌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찌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고 노래합니다. 자신을 영광의 왕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궤가 성전에 들어가는 것을 영광의 왕이신 하나님이 자기 처소로 들어가시는 것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처소인 성전으로 들어가시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기 위해 피 흘려 죽으실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성취된 것입니다. 신자가 이것을 찬양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찬양이 하나님의 일하심과 구원의 역사를 알지 못한 사람에게서는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찬양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자기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신자라면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할 뿐입니다.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의 노래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로 인해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이 나를 사단의 손에서 건지시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하심에 감사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광의 노래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곳에 설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를 믿는 자 밖에 없습니다. 신자는 어떻게 자신이 거룩한 곳에 서는 자가 되었는가를 생각하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인자와 자비하심을 감사하고 노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처럼 은혜의 영광을 찬미할 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마음 깊이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 심플 라이프
글쓴이 : 심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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