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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2강) 시편 12:1-8 안전지대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5. 29. 06:01

 

 

 

 

 

 

 

(12강) 시편 12:1-8  안전지대

 

 

은석교회 신윤식 목사

 

 

 

 

 

 

 

 

 

<본문>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도소이다 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의 혀로 이길찌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번 단련한 은 같도다 여호와여 저희를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영토록 보존하시리이다 비루함이 인생 중에 높아지는 때에 악인이 처처에 횡행하는도다(시편 12:1-8)

 



<설교>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절대로 정상적이 아닙니다. 만약 여러분의 눈에 세상이 정상적으로 보이고 아무런 문제가 없이 여겨진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처에 살인과 강도, 사기가 성행한다고 해서 정상이 아니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은 세상이 정상적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히 나타나는 흔적들이지 그것을 가지고 정상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살인, 강도 등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을 정상으로 여겨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정상적인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 아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세상이 과연 그렇습니까? 온 세상이 하나님이 아닌 자기 영화를 위해 살아가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부른다고 해도 모두가 자기 영화를 위해 부르지 않습니까? 이런 세상에 대해 탄식이 없다면 우리 역시 정상적이지 않은 세상이 가는 길에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다윗은 정상적이지 않은 세상으로 인해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절을 보면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도소이다”고 말합니다. 경건한 자가 끊어지고 충실한 자가 없어진다면 그것은 세상이 경건하고 충실한 자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8절에서 “비루함이 인생 중에 높아지는 때에 악인이 처처에 횡행하는도다”고 말씀하는 것처럼 세상 현실이 경건한 자보다는 악인이 횡행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세워졌습니다. 그들이 거하는 가나안 땅 자체가 은혜의 땅입니다. 그 은혜의 땅에서 이스라엘은 “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2절)는 말처럼 이웃에게 악을 행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야 할 정상적인 이웃 관계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서로가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살아가도록 권고해야 하는 관계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경건하고 충실한 신자로서의 삶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 경건하고 충실한 자는 점차 끊어지고 이웃에게 거짓을 말하고 두 마음으로 아첨하는 사람들로 횡행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말에 있어서 다스림 받는 것이 없었습니다. 마치 “우리의 혀로 이길찌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4절)고 말씀하는 것처럼 자기의 욕망을 따라 자기를 자랑하며 이웃에게 거짓과 아첨의 말을 내 뱉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3절에서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라고 언급하는 것처럼 그들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끊어질 자들에 불과할 뿐입니다.  

 

 

 


즉 다윗이 보고 있는 세상의 형편은 악인이 횡행하면서 경건하고 충실한 자가 끊어지고 이웃에 대해서는 거짓과 아첨의 말을 하는 세상이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 아첨하는 입술과 혀를 끊어버리시는 하나님이 개입해 주시기를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경건하고 충실한 자가 억압을 받아야 하는가? 라고 한탄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어버리시는 하나님의 일이 속히 이 세상에 시행되기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5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처럼 여호와는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일어서시는 분입니다. 즉 여호와께서 가련하고 궁핍한 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탄식을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지금의 세상 현실은 악인이 횡행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의 운명은 절대로 영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어서실 때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 진노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이며 이 세계가 곧 5절에서 말하는 안전지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6,7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번 단련한 은 같도다 여호와여 저희를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영토록 보존하시리이다”고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흙 도가니에서 일곱 번 단련한 은처럼 순결합니다. 이처럼 순결한 말씀이기에 절대로 헛됨이나 거짓이 없이 말씀한 그대로 성취될 것입니다. 세상의 현재를 모조리 엎으시고 새로운 말씀의 세계를 세우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현실은 말씀의 세계이지 결코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아닌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다윗이 악인에 대해 호소하는 것은 악인들을 속히 심판해 달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를 바라보고 그 세계가 속히 임하기를 소원하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누구든 본문처럼 다윗이 악인에 대해 하나님께 호소하고 원수에 대해 말하는 내용들은 그대로 자신에게 끌어 붙이면 안됩니다. 다윗이 원수에 대한 심판을 말한다고 해서 나 또한 개인적 감정이 있는 누군가에 대해 하나님께 심판을 구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성경을 전혀 알지 못한 사람의 무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탄식의 시편은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의 시편으로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악인은 절대로 영원할 수 없고 신실한 백성들만 썩지 않고 영원한 기업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여러분을 지켜주는 것은 돈도 아니고 여러분 자신도 아닙니다. 여러분 스스로의 힘으로도 자신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말씀만이 우리에게 보증이 되고 안전지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말씀의 관계에서 가난하나 가난한 자가 아니고, 약하나 약한 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약속된 썩지 않고 영원한 기업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자랑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러한 신자는 이웃에게 거짓을 말하거나 아첨하는 말을 하지 않게 됩니다. 신자가 만약 그리스도 안의 부요함을 자랑하지를 못한다면 세상의 썩어질 질서로 자신을 해석하게 될 뿐입니다. 그럴 때 세상의 것으로 낙심하게 되고 사망의 열매를 맺는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도 자기 백성을 보호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떠난 것처럼 되어 있어도 바울처럼 하나님을 크게 찬양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주님께서 우리가 원수 되고 죄인 되었을 때 먼저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들 안에서 자기 자신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은바 되었는데 성령은 친히 우리를 위해서 자기의 몸을 주신 아들의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환란 중에도 말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즐거워한다고 그렇게 롬5장에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 시편을 읽는 방식입니다.

 

 

 


이 세상에 좋은 것들이 아무리 차고 넘친다고 해도 하나님이 일어서시면 모든 것은 다 소멸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만큼은 안전합니다. 마치 애굽의 장자 재앙이 있던 날, 죽음의 천사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었던 힘이 이스라엘 자신들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린양의 피에 있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 가장 안전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가장 안전하게 지키고 보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안전지대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세밀한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곳이 온 우주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의 영혼을 지키고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이라면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맡길 분은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신다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가장 안전한 곳에 머물러 살아가는 것임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출처 : 심플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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