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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0강) 시편 10:1-18 없는 것 같은 하나님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5. 29. 06:02

 

 

 

 

 

 

 

 

(10강) 시편 10:1-18  없는 것 같은 하나님

 

 

은석교회 신윤식 목사

 

 

 

 

 

 

 

 

 

<본문>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군박하오니 저희로 자기의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 악인은 그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탐리하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저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주의 심판은 높아서 저의 안력이 미치지 못하오며 저는 그 모든 대적을 멸시하며 그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요동치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나이다 그 입에는 저주와 궤휼과 포학이 충만하며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저가 향촌 유벽한 곳에 앉으며 그 은밀한 곳에서 무죄한 자를 죽이며 그 눈은 외로운 자를 엿보나이다 사자가 그 굴혈에 엎드림 같이 저가 은밀한 곳에 엎드려 가련한 자를 잡으려고 기다리며 자기 그물을 끌어 가련한 자를 잡나이다 저가 구푸려 엎드리니 그 강포로 인하여 외로운 자가 넘어지나이다 저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 얼굴을 가리우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를 잊지 마옵소서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치 아니하리라 하나이까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잔해와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자니이다 악인의 팔을 꺾으소서 악한 자의 악을 없기까지 찾으소서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토록 왕이시니 열방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 저희 마음을 예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고아와 압박 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로 다시는 위협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시편 10:1-18)

 



<설교>


신자가 하나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믿긴 하지만 그 믿음으로 살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마치 이 세상에 안계신 것처럼 침묵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무리 세상을 둘러봐도 하나님이 살아서 일하신다는 것을 자신 있게 증거할 증거물들이 없습니다.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것도 세상에 먹혀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눈이 오고 비가 오는 원인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여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실패하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보면 더욱 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만 갈 뿐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자기 백성이 어려움을 당하도록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때로 신자들에게도 혼란을 가져다주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혼란은 하나님의 일에 대해 알지 못한 결과입니다.

 

 

 


본문 1,2절을 보면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군박하오니 저희로 자기의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 라는 탄식을 합니다. 지금 시편 저자는 자신이 겪고 있는 환난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숨어 계신 것처럼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환난에 처한 입장에서 그 답답함이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저자는 하나님이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으로 탄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환난을 보고 악한 자들이 조롱을 하는 것에 대해 탄식을 합니다.

 

 

 


4절을 보면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는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데도 하나님은 가만히 계심으로 인해서 악한 자들이 여호와가 자기 백성도 살피지 않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없다’라며 조롱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오늘날도 하나님이 없다고 조롱하는 사람들의 사상입니다.

 

 

 


세상은 자신의 인생에 도움을 받기 위해 신을 찾습니다. 이런 사상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도 당연히 자기 백성을 돕는 분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도우시고 지키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도우시고 지키시는 것은 인간의 인생이 아니라 그 영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환난을 당하고, 기도하는데도 여전히 그 환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목격할 때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는 조롱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불의함이 성행하는 것 까지도 신의 부재로 여깁니다, 하나님은 선한 분인데, 선한 분이 악을 그냥 두고 보시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악이 성행하는 것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이런 조롱에 대해 명확한 증거를 보여줄 수 없다는 것으로 많은 신자들이 답답함을 가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하늘의 표적을 보여 달라고 기도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시각과 욕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도 하나님이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고 마치 계시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일이 날마다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 일을 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시각과 욕심을 벗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11-14절을 보면 “저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 얼굴을 가리우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를 잊지 마옵소서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치 아니하리라 하나이까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잔해와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자니이다”고 말합니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부디 그 모습을 나타내서 하나님을 조롱하는 저 악한 무리들을 심판해 주십시오’라는 요청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악함을 주께서 다 보고 계시며 그 모든 악함에 대해 주가 직접 갚으실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고 계획임을 알기에 하나님의 백성이 환난에 있고, 하나님은 숨어 계신 것처럼 가만히 계시고, 세상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자기 백성을 돌보지 않으신다고 조롱 하는 자들을 두고 보시는 모든 일들을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서 지금 당장 나의 일이 잘 해결되고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지만, 시편 저자는 세상을 심판하실 하나님의 일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지금 당장 악한 자들에 대해 승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결국 어떤 길로 가게 될 것인가를 바라보며 탄식하는 심정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지금 하나님 앞에서 악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이 처한 현실입니다. 세상은 악에 대해 어떤 심판도 행하지 않는 하나님을 두고 ‘하나님이 없다’며 조롱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악을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모든 악이 드러남으로써 심판하실 때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15,16절에서 “악인의 팔을 꺾으소서 악한 자의 악을 없기까지 찾으소서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토록 왕이시니 열방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는 말에서 “악한 자의 악을 없기까지 찾으소서”라는 말의 의미도 악한 자들의 악이 하나도 남김없이 드러나도록 하시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시편 저자가 바라보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일은 죄를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가 다 드러나도록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백성들을 세상에 두시고, 그 백성들이 세상의 악으로 인해 고난을 받고 조롱을 받는데도 마치 없는 것처럼, 자기 백성을 감찰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가만히 계시는 것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악과 완악함이 드러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악에 대해 즉각적으로 심판하지 않으시는 이유입니다. 모든 악을 드러내셔서 하나님의 때, 마지막 때에 모든 악을 심판하시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일을 알지 못한 세상의 시각으로는 아무리 둘러봐도 하나님이 보일 리가 만무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신자만큼은 하나님에 대해 바른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왜 세상을 가만 두고 보시는지, 하나님의 백성이 어려움을 당하는데도 왜 가만히 계시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현실의 어려움에서도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당장 눈앞의 부와 권세에 미혹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는 어리석음으로 나아가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선악 간에 심판하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현실로 인해서 조급해서도 안됩니다. 때가 이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취되어질 것을 믿고 그 날을 기다리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신자의 인내입니다. 무작정 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말씀대로 성취될 것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 인내가 신자에게 소망을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세상의 상식으로는 절대 알 수가 없고 볼 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고 하나님의 때를 믿는 믿음으로만 세상에서 숨어 계시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17,18절을 보면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 저희 마음을 예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고아와 압박 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로 다시는 위협치 못하게 하시리이다”고 말합니다.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다고 하는데 겸손한 자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악한 자의 팔을 꺾으시고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 소원을 들으셨다는 것은 지금 당장 악한 자를 심판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가 되어 악한 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미리 내다보고 하는 말입니다. 이처럼 신자는 하나님의 때를 바라보고 그 때를 이루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면 됩니다. 현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약속 안에서 하나님의 때를 바라보고 믿는 것입니다.

 

 

 

 

 

 


출처 : 심플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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