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테크/시편과 잠언이야기

[스크랩] (5강) 시편 5:1-12 주의 길을 곧게 하소서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5. 29. 06:04

 

 

 

 

 

 

 

(5강) 시편 5:1-12  주의 길을 곧게 하소서

 

 

은석교회 신윤식 목사

 

 

 

 

 

 

 

 

<본문>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사를 통촉하소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리이다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을 인하여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저희 입에 신실함이 없고 저희 심중이 심히 악하며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저희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하나님이여 저희를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인하여 저희를 쫓아내소서 저희가 주를 배역함이니이다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저를 호위하시리이다(시편 5:1-12)

 

 


<설교>


하나님은 사람은 의인과 악인으로 구분하여 보십니다. 그런데 구분의 원칙은 인간의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함에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사랑할 자로 택한 자는 의롭게 보시고, 미워할 자로 여긴 자는 악인으로 보시는 것입니다. 뭔가 불합리하다고 여겨지는 것 같지만 사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행위로 사람의 의와 악을 구분하신다면, 세상 그 누구도 의롭다고 여김 받을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택한 자로 하여금 자신의 악을 깨닫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의를 힘입는 것만이 생명의 길임을 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악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의로운 도우심을 구하는 자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의롭다고 여김 받는 사람이 신자입니다.

 

 

 


그러면 의인과 악인은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을까요? 3-6절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을 죄를 기뻐하지 않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때문에 악이 주와 함께 유할 수 없고,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고,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고,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는 분이고, 피 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는 분이 다윗이 아는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은 다윗의 이 고백을 보면서 누구를 생각합니까? 살인자를 생각합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신다고 하면서 왜 그런 악행을 행하는 자들을 그냥 두고 보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은 죄를 범한 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벌주는 분이 아니라 아예 이 세상을 통째로 깨어 버릴 계획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 것은 하나님이 싫어하시고 미워하시는 조건을 모두 갖춘 자가 바로 우리 자신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말하지만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들이 못됩니다. 하나님을 말하면서도 하나님보다도 세상에 있는 것을 더 의지하고 힘으로 여기며 세상 것을 소유함으로써 마음이 든든해지는 오만한 자가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돈이 없으면 힘이 빠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자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곧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을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미움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이것부터 철저하게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부터 내 뼈 속까지 파헤쳐서 그 바닥까지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나는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이다’는 생각이 있다면, 그 생각이야 말로 하나님의 은혜로 나아가는 길을 훼방하는 사단의 생각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흘림을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실체에 대해 그 밑바닥까지 철저하게 깨달아야 하는 것은, 이러한 깨달음이 없이는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리이다”(7절)는 노래를 부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갈 수 있었음을 노래합니다. 주의 집은 주가 거하시는 집을 뜻합니다. 구약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시는 성전이고, 지금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생명의 나라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시는 이 집은 죄인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죄인된 자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당장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죄가 용서되고, 우리를 죄없다 선언하심으로써 주의 집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의인과 악인의 다른 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악인은 세상을 자신이 거할 집으로 여기기 때문에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만 중요하고 목적이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를 구할 이유도, 인자를 힘입고자 하는 것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면 그것으로 만족할 뿐입니다.

 

 

 


하지만 의인은 세상이 집이 아니라 주의 집을 자신의 본향으로 믿습니다. 세상에서는 나그네일 뿐임을 압니다. 주의 집에서 주와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이 소망이기에 삶의 방향은 세상이 아니라 주의 집, 즉 천국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러한 신자에게 주의 인자하심은 무한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의 집에 거할 수 없는 자신이 주의 인자하심으로 인해서 영원히 주의 집에 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인자를 힘입는다는 것이야 말로 말할 수 없는 복이며 감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소원이 하나님의 풍성하신 인자를 힘입어서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보면 오늘날 교회에서 기도하는 소원과 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까? 세상에 마음을 뺏긴 자와, 주의 인자하심에 마음을 뺏긴 자의 소원은 이처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범죄한 악한 자신을 바라봤습니다. 자신의 악함을 바라볼 때, 생명을 향한 모든 소망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시고 미워하시는 분인데 나같은 자가 주의 집에 거하기는커녕 멸망을 받을 자에 지나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다윗에게 다가오는 것이 곧 주의 인자하심이었습니다. 모든 허물과 악을 덮으시고 용서하시는 인자하심이야 말로 유일한 희망이며, 주의 나아갈 수 있는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인자를 구하는 기도를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풍성하신 인자를 힘입는다고 해서 세상의 삶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인자와 사랑을 세상의 문제가 해결되고 삶이 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으로 기대를 하지만 하나님의 인자는 우리의 모든 죄를 덮고 죄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서게 하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주의 인자를 의지하는 자로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8절을 보면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을 인하여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는 말을 합니다.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라는 말은 주의 길로만 곧게 걸어가게 해달라는 소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다윗의 소원은 주의 의의 길로만 인도받는 것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들의 소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늘 구하는 것이 육신이 편히 머무를 수 있는 조건들이 아니라 내 영혼이 영원히 주와 함께 머무를 수 있는 것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인생의 마지막을 내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내 인생과 주께서 인도하시는 인생의 마지막이 다르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주의 인도입니다. 주의 인도는 분명 우리를 의로운 길로 인도하십니다. 문제는 우리의 소원을 주의 인도하심에 두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인생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인도하심만이 내게 길이 되어지기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보면서 소원을 내뱉지 말고 십자가 앞에 서서 우리 자신을 면밀히 파헤쳐 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진심으로 내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보게 될 것이고, 따라서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달라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하나님이 들으신다고 한 것처럼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거룩하신 뜻을 구하고 하나님께서 모든 악을 심판하시고 의의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때까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주의 길로만 나아갈 수 있기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원으로 주를 바라본다면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저를 호위하시리이다”(11,12절)는 노래처럼 다윗의 기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다윗의 노래를 부르며 다윗의 감사가 있는 그가 바로 진심으로 하나님을 아는 신자가 아니겠습니까?

 

 

 

 

 

 


출처 : 심플 라이프
글쓴이 : 심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