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테크/시편과 잠언이야기

[스크랩] (4강) 시편 4:1-8 의의 하나님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5. 29. 06:04

 

 

 

 

 

 

 

(4강) 시편 4:1-8  의의 하나님

 

 

 

은석교회 신윤식 목사

 

 

 

 

 

 

 

 

 

<본문>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겠는고(셀라)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셀라)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시편 4:1-8) 
 

 

 



<설교>


다윗이 쓴 시편의 내용들은 모두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로부터 솟아나는 기쁨의 노래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기쁨은 형통한 삶으로 인한 것이라기보다는 고난과 죄악 중에서 하나님을 알게 된 결과였습니다. 말하자면 다윗은 고난과 죄의 삶의 현실에서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교제를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흔히 이해하는 것처럼 기도하고 성경 보는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루 일상생활에서 특별한 시간을 내어 기도하거나 성경을 묵상해야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고 하루하루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사는 것이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필히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모르면서 하나님과의 만남이나 교제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있었던 다윗의 찬송을 통해서 다윗이 만난 하나님이 어떤 분이었는가를 깨닫고 우리도 다윗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1절을 보면 “내 의의 하나님이여”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라는 하나님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의가 되신다는 뜻의 말입니다. 즉 하나님이 아닌 그 어떤 것도 내게는 의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어떤 의미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요?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다윗은 대적들로부터 조롱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범하여 벌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윗을 돕지 않고 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압살롬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이 볼 때 다윗은 하나님에게 버림 받은 모습으로 보여지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에 의해 왕으로 세움을 받았다면, 누구든 다윗의 왕위를 빼앗을 때 하나님이 나서서 다윗의 대적을 치고 다윗을 돕는 것이 마땅한데 왜 왕위도 빼앗기고 쫓겨 다니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처지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내 의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다윗이 왜 이렇게 부르는가 하면 세상이 볼 때는 하나님께 버림 받은 죄인의 모습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의로운 자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를 죽인 죄를 범한 다윗으로서 하나님이 자신을 의롭게 여기신다고 생각하는 것이 뻔뻔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다윗은 진심으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았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내 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무엘하 12장을 보면 다윗이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솔로몬을 낳았을 때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내서 솔로몬의 이름을 여디디아(여호와의 사랑하심을 입은 자)로 부르게 합니다.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솔로몬을 다윗에게 보내셨다는 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사랑 아래 있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 모두가 다윗의 범죄를 욕하고 조롱해도 하나님을 여전히 그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하시는 것은 다윗이 자신의 죄를 갚을만한 선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다윗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할 자로 택하셨다는 것만으로 하나님은 다윗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처럼 사랑할 자를 사랑하시고 미워할 자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람의 행위와 그가 처한 형편과 처지를 기준하여 사랑을 받고 있는 자와 미움을 받고 있는 자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으로 다윗을 보기 때문에 아들에게 반역을 당하고 왕위에서 쫓겨나 도망을 치고 있는 다윗이 죄를 짓고 하나님께 버림 받아서 벌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시 51편을 보면 다윗의 회개가 어떠한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회개는 ‘제가 죄지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라는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범죄한 자신은 주를 떠나 살 수 없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범죄한 자신에게는 하나님의 용서하심과 의로우심만이 생명이 됨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것입니다. 회개의 행위가 의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 하나님의 의를 의지하는 믿음이 의롭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알았던 다윗은 세상이 볼 때는 버림 받은 자의 모습이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바라볼 때는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있고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기시는 의로운 자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내 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비록 내가 처한 초라한 모습과 형편을 보면서 무시한다고 해도, 하나님께는 사랑하는 백성이고 의롭다 여기시는 택한 존재임을 믿으면서 세상의 시각과 판단에 기죽지 않는 것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대적의 조롱에도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한마디로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겠는고(셀라)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셀라)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2-5절)

 

 

 


다윗에게는 하나님이 영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은 영광으로 여기지를 않았습니다. 또한 다른 영광을 구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만약 다윗에게 영광이 하나님이 아니라 왕위였다면 다윗이 왕궁에서 쫓겨난 상황은 말 그대로 하나님이 준 영광을 잃어버린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나 왕위가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광이셨기 때문에 비록 쫓겨 다니는 신세라고 해도 다윗은 여전히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었고 영광 아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앉혀준 왕위를 다윗의 영광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므로 쫓겨난 다윗이 영광을 잃어버린 초라한 자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다윗이 볼 때는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을 헛되게 하고 허사를 구하는 것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런 대적을 향해서 너희들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잠잠해라고 권고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힘을 의지하며 교만한 자들을 용서하지 않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볼 때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의의 제사였습니다. 의의 제사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제사를 뜻합니다. 즉 자신의 힘을 의지하고 살아온 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하는 것임을 깨닫고 내 힘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의만을 구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볼 때 대적자들이 살 수 있는 길은 바로 이것뿐이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말을 놓고 보면 결국 다윗의 말은 오늘 우리를 향한 말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다윗의 대적들과 같은 시각과 사고방식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영광을 구하며 살아갑니까? 하나님이 곧 나의 영광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갑니까? 아니면 세상이 영광으로 높여주는 것을 하나님께 구하며 살아갑니까? 하나님이 곧 나의 힘이라는 믿음으로 삽니까? 아니면 세상이 힘으로 여기는 것을 하나님이 주시기를 구하며 살아갑니까? 사실 우리는 하나님이 없이는 살 수 있어도 땅의 것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방식에 묻혀 살아가지 않습니까? 우리는 다윗의 대적들과 같은 사고방식을 내 자신에게서 발견해야 하며, 그러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참으로 불의한 존재일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 때 진심으로 내게 필요한 것,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구하게 될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한 것처럼, 죄 가운데 있는 우리는 사망으로 그 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치러야 할 값을 예수님이 대신 치르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의는 우리의 모든 죄를 가리고 용서하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자리에 있는 우리는 예수님의 의를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주님의 의를 구하는 그가 바로 의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는 세상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 민감하기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 마음에 두시는 기쁨을 알게 됩니다. 다윗이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7,8절)고 노래하는 것처럼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곡식과 새포도주의 풍성함보다 더 큰 기쁨을 맛볼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한 복이 무엇이겠습니까?

 

 

 


신자는 이러한 복을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자비하심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아는 것이야 말로 어떤 고난에서도 하나님만이 방패며 나의 도우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러한 주의 얼굴을 비춰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땅의 것을 힘으로 여기고 사는 것은 허사를 경영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신자는 다윗이 만난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다윗처럼 날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평안히 자게 하시고 눕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믿음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고 주의 의를 자랑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출처 : 심플 라이프
글쓴이 : 심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