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테크/시편과 잠언이야기

[스크랩] (3강) 시편 3:1-8 여호와의 구원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5. 29. 06:04

 

 

 

 

 

 

 

(3강) 시편 3:1-8  여호와의 구원

 

 

 

은석교회 신윤식 목사

 

 

 

 

 

 

 

 

 

<본문>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셀라)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셀라)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셀라) (시편 3:1-8)

 

 



<설교>


여러분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에 대해 과연 얼마나 실감을 하며 살아가십니까? 하루하루를 지내면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으로 살았다는 것을 마음 깊이 실감하십니까? 물론 신자라면 하나님이 도우셔서 하루를 살았다는 말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믿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으로 살았음을 실감하려면 가장 먼저 하나님이 돕지 않으시고 보호해 주지 않으시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어떤 상황에 직면해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시면 안되는 상황에 직면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았다’고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자신의 신앙을 나타내기 위한 ‘립 서비스’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까? 물론 어떤 사람은 그런 상황에 직면해 있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그 상황이라는 것이 결국 육신의 문제가 아니던가요? 그런데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으로 살아가는 것은 모든 신자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어려운 일이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본다면 자신에게는 어려운 상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말하는 것은 앞서 말한 대로 듣기 좋아라고  하는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3편은 고난 중에 있던 다윗이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는 내용입니다. 7,8절에서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셀라)”라고 노래하는 것처럼, 다윗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고 자기를 구원하셨음을  말합니다.

 

 

 


다윗의 이 노래에서 주의할 것은 다윗은 이미 이루어진 여호와의 구원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지 구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7절에서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다고 말하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3편을 기록할 때는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왕궁에서 도망쳐 나와서 떠돌아다닐 때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수의 뺨을 치신 하나님을 노래하려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배신한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시고 다윗을 다시 왕궁으로 들여보낸 후에 해야 순서가 맞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여전히 도망을 치는 상황에서 원수의 뺨을 치신 여호와를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여호와가 원수의 뺨을 쳤다는 말은  다윗이 처한 상황을 개선해 주셨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1,2절에서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셀라)”라고 노래하는 것처럼 다윗이 처한 상황은 많은 대적들로 인해서 사면초가에 빠진 상태입니다. 이 대적들은 다윗을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고 조롱합니다. 대적들에게 쫓겨 도망을 치는 신세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 버림 받은 것으로 조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대적들의 사상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말입니다. 다윗의 대적들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함께 하심의 의미를 육신의 조건과 상황에서 찾았던 것입니다. 하고자 하는 일이 순탄하게 잘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돕는 결과고, 모든 일이 실패와 고통으로 빠지게 되면 하나님이 버리시고 떠난 결과로 인식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대적들은 반역이 성공한 것을 하나님이 다윗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을 돕고 계시기 때문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오늘날에도 다르지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육신의 조건을 기준으로 해서 판단하려는 습성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우심과 지키심, 사랑, 선하심, 모든 것을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상황과 형편을 기준으로 해서 판단해 버리는 것입니다. 때문에 고통이 주어지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소위 잘 살면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한 결과로 여기고 그 모든 것을 자신의 믿음에 근거를 두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습니다. 3절을 보면 다윗은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라고 노래합니다. 여러분이 다윗과 같은 처지라면 과연 이런 노래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여호와가 나의 방패임을 바라보고 방패 되시는 여호와가 자신을 도와주기를 기대하는 노래를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노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방패가 되시는 여호와가 자신의 영광임을 고백합니다. 방패가 되어주기를 기대하고 나의 영광이 되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방패요 영광임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다윗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개선시켜주시는 여호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상황의 여부와 상관없이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4,5절에서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셀라)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고 노래하는 내용에서도 다윗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육신의 형편이나 상황을 초월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하나님이 응답하셨음을 말하지만, 다윗의 처지는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부르짖음이 자신이 처한 형편을 바꾸어 달라는 것이 아니었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누워 자고 깨었다는 것은 평안의 잠을 뜻합니다. 즉 다윗은 대적이 둘러싼 상황에서도 평안의 잠을 잘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여호와께서 자신을 붙드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과연 다윗의 이러한 신앙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다윗은 여호와를 방패로 말하는데, 방패라는 것은 군사적인 용어입니다. 전쟁터에서 자신을 보호해주는 무기의 일종인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이처럼 군사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고백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싸움으로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단지 압살롬이란 인간과의 싸움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대적을 하나님의 대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대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다윗은 지금의 형편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하나님에 의해 그 모든 대적이 깨어질 것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가 심판을 받고 다윗이 승리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천만인이 그를 치려한다고 해도 두렵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다윗이 어떤 하나님을 알았기에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입니까? 다윗이 압살롬에 의해서 쫓겨 다니게 되는 것은 사실 다윗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비록 다윗이 하나님께 징계는 받았지만 버림을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여전히 하나님이 택하신 왕으로써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맺으신 이 관계는 인간의 실수와 허물에 의해서 파기되어지지 않습니다. 인간의 모든 실수와 허물을 극복하시고 하나님의 약속의 관계로서 약속의 실체인 영원한 생명에 거하도록 만들어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다윗의 형편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사랑과 도우심이 떠난 버림 받은 사람이라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인간이 처한 환경과 형편으로 계산하는 것이며 이것이 곧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러한 대적들을 용서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형편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대적자를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구원은 사랑과 자비였습니다.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이 함께 함을 알았기에 흔들림 없이 구원을 노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8절에서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셀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주의 복, 즉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이 주의 백성에게 있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바라보고 의지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복된 것은 없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며 사랑과 자비하심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를 사단에게서 구출하신 것이야 말로 말할 수 없는 사랑이고 자비임을 안다면 신자는 실패의 자리에서도 여호와의 구원을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참으로 복된 자인 것입니다.

 

 

 

 

 


출처 : 심플 라이프
글쓴이 : 심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