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범이나 유해진 같은 개성파 배우가 되는 것이 어릴 적부터 제 소망입니다. 제 꿈을 이루기 위해선 어떤 일이라도 할 각오가 돼 있어요.”
강남의 한 연기학원에서 만난 연기자 지망생 이슬기(19) 군의 말이다. 최근 연기학원에서 기초 실력을 쌓고 연기 관련 학과에 진학한 후 기획사가 주최하는 오디션을 통해 많은 연예인들이 스타로 성장하면서 이 군처럼 연기자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요즘의 10대 청소년에게 조승우, 김태희, 문근영 같은 스타는 단순히 텔레비전으로만 볼 수 있는 인기 연예인이기 보다는 닮고 싶고, 궁극적으로는 실현하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최근 영화 시장이 커지고 있는데다, 연극도 장기 공연 작품이 매년 늘면서 연기자를 희망하는 젊은이들이 크게 늘고 있다. 특히 뮤지컬에 대한 10~20대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이들이 늘어난 점도 고무적이다.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하듯 10여년 전 동국대, 중앙대, 한양대, 청주대, 용인대, 경성대 등 6개에 불과하던 연극영화학과는 최근 60여개(2년제 10곳 포함)로 무려 10배나 급증했다.
특히 올해 입학 경쟁률은 연기 관련 학과의 인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단국대 공연영화학부 연극(연기)학과는 모집인원 11명에 지원자가 653명으로 무려 60대 1에 가까운 경쟁률을 기록했다.
동국대(연극학부)와 중앙대(연극영화학부 연극연기학과)의 경쟁률도 각각 35대 1과 29대 1을 보였다. 지난해의 경우 단국대 연극학과가 40대 1의 경쟁률을, 동국대 연극영화학과가 20대 1을 경쟁률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경쟁률이 확연히 높아진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최근 뮤지컬의 인기를 반영하듯 뮤지컬학과를 별도로 둔 대학도 크게 늘었다. 단국대, 한세대, 명지대 등이 몇 년 전부터 뮤지컬학과를 개설, 운영하고 있으며, 2009학년도에는 서울종합예술학교가 뮤지컬 예술학부를 개설 운영하는데 대부분 경쟁률이 10대 1을 웃돌고 있다.
최근 신세대를 중심으로 연기 관련 학과가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이종섭 원장은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직 중심의 직업 인식의 변화에 하고 싶은 것이면 물불 가리지 않고 도전하는 신세대의 적극적인 성향 등이 맞물린 현상”이라고 해석했다. 아울러 ‘1인 기업’이라고 불리는 스타 연예인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스타가 되면 성공한 삶이 보장된다는 생각도 이 같은 트렌드를 부추기고 있다.
이와 관련,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 같은 풍조에 대해 최근 발간한 책 ‘트렌드 코리아 2009’를 통해 “최근의 경제 위기로 인해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타인과 차별화된 삶을 추구하려는 풍조”라며 “투자를 통해 끊임없는 자기 계발을 꾀하는 이 트렌드 속에는 여러 가지 수단으로 자기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려는 노력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는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두드러진다. 예전에는 연예인이라면 무조건 반대만 했지만 최근에는 숨겨진 재능을 일찌감치 찾아내 전문 직업인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조기 교육’을 시키는 방향으로 생각이 바뀌고 있다.
이를 위해 10살 안팎의 초등학생을 연기학원에 데려 오거나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중학생 자녀를 학원에 보내는 학부모들도 적지 않다.
영화 배우가 꿈인 딸을 연기 학원에 보냈다는 주부 김성미(45)씨는 “예전처럼 교수나 의사가 돼야 인생에서 성공했다고 말하는 시대는 끝났다”면서 “내 아이가 자신의 재능을 맘껏 펼쳐 보이며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이 부모로서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부분 연기학원은 발성 연습부터 자세 교정 학습, 표정 연기, 스트레칭, 무용 등 다양한 수업을 진행한다. 입시를 위주로 하는 학원의 경우 작품 분석과 해석, 연기에 대한 기본 이론 수업 등도 실시한다.
수업료는 월 30만~60만원 수준으로 1년에 600만원 이상이 소요되지만 학생이나 부모 모두 연기자가 되기 위해 치러야 할 투자로 생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만 명에 달하는 지망생 가운데 연기자로 성공하는 숫자는 10%에도 못 미치는 만큼 단순히 유행을 좇기 보다는 자신의 적성에 맞는지를 철저하게 생각해 본 후 강한 의지를 갖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 좋은 연기학원 선택하려면 강사진 연기 지도 경력·특기교육 여부 살펴야
전국적으로 100개가 넘는 연기 학원 가운데 제대로 된 곳을 찾아 강의를 듣는 것도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연기학원 선별 기준으로 ▲설립된 지 5년 이상 된 학원 ▲강사진의 연기 지도 경력 여부 ▲춤과 노래 등 특기교육 등을 꼽고 있다.
학원들은 학교 별로 다른 시험 체계를 분석, 전문 강사들의 지도 아래 실제 실기 시험과 동일한 방식으로 연습을 진행하기도 한다. 아울러 수강생들의 특기를 살려 주기 위해 뮤지컬을 비롯해 발레ㆍ재즈ㆍ한국 무용 등 '1인 2특기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이밖에도 전문 강사들이 입시 패턴과 수강생 개개인의 특성에 맞추어 작품을 선정, 지도하는 등 학원들의 경쟁은 치열하다.
이종섭 원장은 "연예인 지망생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지도하기 위한 학원들의 숫자도 함께 늘고 있다"며"우리 학원의 경우 그 동안 쌓아 온 경험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실력파 연기자를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연극영화학과 연기전공 입시 전형 방식
연극영화과 연기전공 전형은 대개 수능(학생부 포함) 40~50%, 실기 50~60%. 2년제 대학의 경우 실기 점수만 100% 반영하는 곳도 있다. 수능 성적이 떨어지더라도 연기만 잘하면 대학 입학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실기시험 과목은 대학마다 다르다. 그러나 대개 지정연기, 자유연기, 즉흥연기, 특기 등으로 이뤄져 있다. 지정연기란 대학 측에서 미리 지정한 작가나 작품의 한 장면을 연기하는 것이다.
반면 자유연기는 수험생이 희곡 등에서 한 대목을 자유롭게 준비해 발표한다. 특기는 무용 뮤지컬 노래 탭 댄스 등 장르에 제한이 없다.
즉흥연기는 시험장에서 제시되는 단어 또는 상황을 즉흥적으로 대사와 행위 또는 자신의 특기 등을 활용해 표현하는 방식이다. 중앙대의 경우 시험 당일 수험생 자신이 뽑은 연극적 상황카드에 따라 연기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