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쉴년 같았던 안식년을 마무리할 시간입니다.정확하게 주후 2000년 7월1일부로 시작한 나의 안식년은 2001년 6월30일로 종결되어야 하나,그동안 거의 두세달에 한번씩 드나 들며 교회내에 체류한 시간들을 헤아려 나름대로는 9월 30일을 종료시간으로 정했었습니다.이제 10월1일부로 본격적인 사역을 재개한 마당에 과연 내게 안식년이 있었는지 조차 기억에서 아련해가는 이 시점에서 더이상의 기억의 소멸을 체험하기전 안식년의 유감과 소감,그리고 예감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유감
사람에겐 어떤 일을 치르고 지나가면 항상 유감이 남습니다. 그것은 이렇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 터인데--라는 아쉬움일수도 있고 후회일수도 있습니다.앞으로 안식년을 가지게될 후배들을 위해서는 이런 유감의 참회록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되어 이 글을 남깁니다.저의 그동안 안식년의 시간들은 대체로,미국의 자녀들과 함께하기,영적 회복을 위한 개인적 기도시간 갖기,앞으로의 사역에 유익한 세미나들 참석하기, 선교지 돌아보기,평소에 집회요청 받고도 시간낼수 없었던 국내외 몇교회 집회인도하기,셀사역 연구를 위한 독서와 모범교회 돌아보기등으로 채워진 시간들 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너무 많은 목표들이 있었고,너무 많은 곳을 여행하다보니 안식 그 자체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흐려진 느낌이 적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다시 이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한곳에서 그냥 휴식과 기도에만 침잠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크게 마음에 남습니다.
소감
그러나 이 안식년 기간동안 주께로 부터 받은 가르침과 유익도 결코 적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내 영성의 샘물이 깊고 넓어진 느낌입니다. 확실히 평소 목회의 장에서 보다 더 많은 양의 기도시간이 있었고,특히 어머니 자연의 아름다운 품속에서 안식하면서 자신의 숨결을 느끼고나의 인생을 객관적으로 관조(contemplate)하는동안 영적인 회복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Shalem Institute에서 체득하기 시작한 관상기도(Contemplative prayer)와 관상적 삶(Contemplative lifestyle)은 나의 여생과 목회에 적지않은 유익이 될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저는 앞으로 주님보다 앞서지 않고, 서두르지 않는 여유속에 욕심없이 천천히 살며 깊은 기도에 나아갈것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무엇보다 내 사랑의 가슴을 넓혀 교우들과 동역자들을 한껏 끌어안고 함께 기도하며 서로 치유하며 후회없는 내 인생의 마지막 여행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예감
안식년의 유익을 통해 천천히 마음에 그려본 저의 사역의 미래는 크게 네가지로 요약될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우리교회의 21세기의 비전과 사명으로 채택한 평신도 선교사 양육과 파송에 최선을 다 하겠다는 것입니다.저는 그길만이 민족을 치유하고 세상을 변화시킬수 있는 유일한 대안임을 더욱 확신케 되었습니다. 둘째는,이 사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리교회가 셀 교회(Cell Church)로 전환하는것이 우리교회의 본질적 과업임을 더욱 절실하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전 교인의 목자화만이 평신도 선교사 탄생의 가장 효율적인 모태가 될수 있기때문입니다. 셋째로,더욱 황폐화되어가는 이땅의 청소년 교육의 현장을 바라보며 '지구촌 고등학교'의 꿈이야 말로 우리가 민족을 치유할수 있는 하나님의 꿈인것을 확신하게 된것입니다.마지막으로, 몸살을 앓고있는 한국교회의 목회현장을 위해 '목회리더십 연구소'를 통해서 우리교회와 부족한 제가 마땅히 드려할 섬김을 아낌없이 준비해야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마무리 헌사
이 안식년의 여정이 축복될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 기간동안 변함없이 옆에 붙어 있었던 여편네 덕분이었슴을 잊지 않고자 합니다. 그녀는 이 여정동안 저를 안식케한 진실로 안식'년'이었습니다.덕분에 저도 어느정도 안식'놈'일수 있었습니다.그러나 무엇보다 제가 어느정도 안식하며 교회를 떠나 있을수 있었던 또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강단을 기대이상으로 지키며 말씀의 청지기가 되어준 김형준 목사님 때문 이었습니다.물론 그의 인기가 예상외로 상승함이 저의 불안요인 이었던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불안요인은 저로 마음을 넓혀 저를좀더 성자스럽게한 성화요인 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안식의 요인은 저를 기쁘게 보내주시고 중보기도한 나의 사랑 지구촌 가족들 때문이었슴을 잊지 않고자 합니다. 그리고 신실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수고해준 모든 목회 동역자들--그대들 때문에 저는 행복하게 돌아올수 있었습니다.
사랑해요--내 목숨의 불꽃이 다 할때까지--당신들을!
너무 너무 부족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받는 작은 목동,동원이 드립니다.
PS--앞으로 저는 은퇴일까지 안식년없이 그대신 매년 한달의 안식월을 갖기로 한것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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