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병일의 경제노트, 2008.9.5)세일러는 사람들이 금전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 때는 다양한 요인이나 선택대안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합리적으로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좁은 프레임을 만든 다음 그 프레임에 끼워넣어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세일러는 이 같은 프레임을 기업의 회계장부나 가정의 가계부에 비유하여 멘탈 어카운팅(mental accounting, 심적 회계, 심적 계산)이라 이름 지었다.
"쉽게 번 돈은 쉽게 쓴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같은 돈'인데도 힘들게 일해서 번 돈보다 도박이나 복권 등으로 쉽게 번 돈은 쉽게 써버리는 경우가 많습지요. 주류경제학의 가정인 '합리적 행동'이라는 개념에는 맞지 않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경제를 움직이는 이런 인간의 비합리적인 마음을 심리학과 함께 설명한 것이 '행동경제학'입니다.
행동경제학에 '멘탈 어카운팅'(mental accounting)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심적 회계, 심적 계산으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들이 돈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 때, 합리적으로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좁은 프레임을 만든 다음에 그 프레임을 토대로 결정한다는 시각입니다. 그 프레임을 기업의 회계장부나 가정의 가계부에 비유한 표현이 바로 '멘탈 어카운팅'입니다. 즉 마음속에 계정항목을 상정하고 손실(적자)이나 잉여(흑자)를 계산하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예컨대 이런 겁니다. 카너먼과 트브스키가 한 실험입니다. 사람들에게 두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질문1) "콘서트장에서 5만원짜리 티켓을 사려다 현금 5만원을 잃어버린 사실을 알았다. 그래도 그 자리에서 5만원을 지불하고 콘서트 티켓을 살 것인가?"
이 질문에 사람들의 88%가 "네"라고 답했습니다.
질문2) "5만원을 주고 예매했던 티켓을 가지고 콘서트장에 갔는데 그 티켓을 잃어버린 사실을 알았다. 그래도 현장에서 다시 5만원을 주고 티켓을 할 것인가?"
이 질문에는 앞의 절반 정도인 46%만이 "네"라고 답했습니다.
두 경우 모두 '5만원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답변은 많이 달랐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멘탈 어카운팅' 때문입니다.
티켓을 구매하는 것은 '오락비'라는 계정항목에 해당되지만, 현금 5만원을 잃어버린 것은 '오락비' 계정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5만원짜리 티켓을 분실한뒤 또 사는 행동'은 오락비 계정으로 10만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10만원은 오락비로 너무 크다고 생각해 "네"라는 답변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는 해석입니다.
비싼 물건을 살 때 다른 소소한 지출을 쉽게 결정하는 경우도 멘탈 어카운팅으로 설명합니다. 실제로 쇼핑을 할 때 금액이 크면 '추가 금액'이 적게 느껴지지요.
이 때문에 베테랑 백화점 점원들은 비싼 양복을 사는 사람에게 슬쩍 양말이나 드레스셔츠, 넥타이도 구입하라고 권합니다. 많은 경우 평소보다 훨씬 쉽게 구매결정을 하지요.
2000만원짜리 승용차를 구입하는 사람에게 옵션으로 50만원짜리 네비게이션을 사라고 권하는 자동차 영업맨도 많습니다. 네비게이션이 없는 차에 50만원짜리 제품을 달기로 결정하는 것보다, 훨씬 쉽게 "사겠다"고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돈', '같은 가치'인데도 사람은 대개 멘탈 어카운팅의 영향으로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경제적 선택을 하곤 합니다. 소비자이건 마케터이건, 각자 처한 입장에서 이런 인간의 경제행동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소비자라면 그것이 '같은 가치'라는 사실을 떠올리고, 마케터나 세일즈맨이라면 이런 사람의 모습을 업무에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멘탈 어카운팅'... 우리의 경제적 선택을 설명해주는 흥미로운 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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