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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평] 문제있는 책, 스베덴보리의 위대한 선물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7. 28. 10:24

†그리스도의 평화

 

 

책 제목 : 스베덴보리의 위대한 선물

지음 : 스베덴보리(?)

편역 : 스베덴보리연구회 편역

출판사 : 다산북스

출판연도 : 2009년 2월 5일

 

우연히 신문에 쓰여진 책 소개 글을 보고 주문해서 읽어 보았다. 총 295페이지 분량의 이 책은 동의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고, 논리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있고, 사기당한 것 같은 생각마저 드는 책이다. 결론은 전혀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사기성이 강한 책이다.

 

1. 우선 사기라는 부분부터 이야기하자. 분명 책에는 스베덴보리 지음, 스베덴보리연구회 편역이라고 되어 있는데, 책 내용과 비중을 보면 스베덴보리 체험담은 40% 정도 밖에는 안되고, 나머지는 편역자인 연구회의 주장뿐이다. 더군다나 스베덴보리의 체험담의 상당 부분을 자신들의 주장의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스베덴보리 지음이 아니다. 이것 완전한 사기다.

 

2. 책의 내용 중에서 스베덴보리의 체험에서 지상에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얼마나 실천"했는냐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이 결정된다고 하는데, 이는 이미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문제는 자동 결정이라는 점이다. 그러면서 연옥이 싹 빠져버렸다. 하느님의 자비는 사후에도 우리 인간에게 베풀어지신다. 그것이 바로 연옥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스베덴보리는 사후에는 하느님의 자비가 전혀 베풀어지지 않고, 지상에서의 사랑실천만으로 천국과 지옥으로만 자동 결정된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매우 잘못된 주장이다. 그러므로, 체험이라는 말을 신뢰할 수 없다. 조작의 냄새가 너무나 많이 난다.

 

3. 스베덴보리의 체험담에는 연옥에 대한 기록이 없다. 중간경계는 분명 연옥이 아니다. 연옥이란, 천국에 바로 들어가지 못할 정도의 삶을 지상에서 산 사람이 자신이 지상에서 범하고 속죄받지 못한 죄에 대한 벌을 받는 곳이다. 그러나 아직 구원의 희망이 남아 잇는 곳이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단 사람의 영혼마저도 구원을 하시고자 하느님 자비의 한 형태로 만들어 놓으신 곳이 연옥이고, 이 연옥에서 보속과 정화의 시기를 보낸 다음, 이 연옥영혼은 천국에 들게 된다. 스베덴보리의 체험담에서는 연옥에 대한 이야기가 단 하나도 없고, 아예 개념도 없다. 또, 이 책에 따르면 스베덴보리는 사후에는 정화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매우 잘못된 개념이다. 스베덴보리는 연옥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스베덴보리는 하느님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십자가의 성 요한이나, 예수아기의 데레사 등 셀 수 없는 가톨릭의 성인분들은 주님이신 예수님을 친히 뵈었다. 그 분들 모두 연옥을 이야기한다. 하느님을 친히 뵌 성인분들의 주장과 하느님을 친히 뵙지도 못한 한 체험가의 주장이 정반대라면 당연히 하느님을 친히 뵙고 성인으로서 수 없이 많은 기적을 사후에 행한 가톨릭의 성인분들의 주장이 옳은 것이고 스베덴보리의 주장은 틀린 것이다. 가톨릭에서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기적을 성인으로 추대될 분이 사후에 보여야만 성인이 된다. 이유는? 하느님을 뵙는 지복직관의 복을 누리고 있는 상태임을 그래서 하느님께 전구하시고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연옥에 대해서만 보더라도, 스베덴보리의 체험은 사실이 아니거나, 스베덴보리가 실제 천국을 보았다면 전체 체계와 내용에 조작이 가해졌다고 본다.

 

4. 또한 이 책에서는 스베덴보리의 체험과도 논리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편역도 있다. 예를 들어, 사랑에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여 희생하는 것은 그 자체로 완덕이고 고귀한 것인데도, 편역자들은 이것을 세분화하여 가치를 차등화했다. 국가와 세계에 대한 사랑이 가장 가치있는 것 마냥. 쇼를 한다. 사랑에는 대소가 없다. 가족 구성원에 대한 사랑이나 국가에 대한 사랑이나 전혀 그 가치에서 차이가 없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은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말씀이다. 가난한 사람에게 빵을 하나 주는 것은 완전한 사랑이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랑보다 더 클 수도 있다. 만약 이것이 스베덴보리의 체험 내용이었다면, 스베덴보리의 체험은 거짓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이유는? 성서의 핵심 내용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5. 특히, 중간영계에 대한 주장을 하면서 가라지에 대한 성서말씀을 인용한 것은 무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편역자들은 성서를 아는가? 가라지에 대한 성서의 말씀과 중간영계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해당 부분의 성서 말씀의 요지는 "하느님 사랑"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를 중간영계에다가 끼워맞추는 무식하기 그지없는 성서지식을 이야기하고 있다니...ㅉㅉ.

 

6. 성서에 대한 무식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성서를 이해한 자라면, 인간의 가장 큰 고통은 바로 '하느님을 뵙지 못하는 것'임을 알 것이다. 연옥과 지옥이 고통스러운 것은 "하느님을 뵙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되어서 하느님 사랑으로 태어나서 하느님 사랑으로 자라고 하느님 사랑으로 되돌아 가는 것인데, 지상에서 살 때 죄를 많이 짓고 이를 회개하고 보속하지 않고 살았다면 죽어서 당연히 벌을 받는 것인데, 이 벌 중 가장 큰 벌이 하느님을 뵙지 못하는 벌이다. 이 책에는 벌이 없다. 그저 천국과 지옥으로 자동으로 넘어간다가 내용의 전부다. 중간영게에서 허물을 벗듯이 자동으로 벗어서. 이런... ㅉㅉ. 지옥의 영혼들이나 연옥의 영혼들은 하느님을 뵙지 못하는 가장 큰 벌과 해당 죄에 준하는 벌을 받는 것이고, 단, 연옥 영혼은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 자비로 보속을 다 마치면 천국에 들어 하느님을 뵙는 지복직관의 복락을 누리는 희망. 하느님을 뵙는 희망속에서 벌을 받는다는 것이 지옥영혼과의 차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지옥영혼은 그저 자기가 가고 싶어서 가고 오히려 즐긴단다. 인간을 타락시키기 위해서. 즐긴다라... 쇼를 하는구나. 쇼를 해. 지옥영혼들은 하느님을 영원히 뵙지 못하는 고통 속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하는 것이지, 즐기는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왜 창조되었는지, 인간 존재의 근원이 무엇이고 인간의 지향의 긍극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는 무식한 이야기만 가득하다. 성서를 전혀 모르고 있다. 성서는 진리로 인정받지만, 스베덴보리의 체험은 사실 여부도 확인할 수 없고 그 내용에 대해서도 성서와 아주 많이 반대된다. 그러면서 하느님 이야기를 하다니... ㅉㅉ. 성서를 다시 보기 바란다.

 

7. 천국을 묘사한 내용도 문제다. 묘사한 천국을 보면 무슨 SF영화의 장면이다. 그리고 금은보화로 장식되는, 지상에서 생각하는 멋진 집, 멋진 가구, 금은보화 등의 이런 이야기가 주다. 그리고 천국의 조직체계에 대한 이야기, 하는 일 등이 주다. 천국의 핵심은 이런 조직과 체계 그리고 금은보화 등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핵심은 "하느님 사랑"이고, 하느님 사랑이 전부인 것이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나사렛 동네에서 가장 가난하게 사셨다. 금은보화와 같은 사치스러운 것으로 가득한 천국을 묘사하면서 천국을 체험했다라... 신뢰할 수 없는 내용이다. 또한 성서에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 보다 더 어렵다고 기록되어 있다. 천국은 금은보화와 무슨 최첨단 시설과 설비가 가득한 첨단문명처럼 묘사를 해 놓고는, "나중에 천국가면 이런 곳에 서 삐까뻔쩍하게 살 것입니다."라고 마치 무슨 대기업 광고하는 마냥 글을 쓰고 있다. 말이 안되고, 의도가 불순해 보이고, 조작인 것이 느껴진다.

 

8. 더군다나 천국을 3단계로 나누었는데, 아마도 바오로사도의 서간에서 바로오사도가 세번째 하늘을 언급하신 것에서 따온 것 같다. 체험한 것이 아니라. 그러나, 성서를 다시 보아라. 바오로사도가 기도 중에 보신 세번째 하늘은 세번째 하늘이 천국의 마지막 단계라는 것이 아니다. 성서에 대한 무식함이 또 드러난다.

 

9. 편역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 바로 성서다. 성서에서 하느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가난한 동네인 나자렛에서 가난한 집에서 어떻게 사셨는지를 아주 깊이 충분히 묵상해 보고,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사신 33년의 모든 삶을 깊이 묵상해 보기를 바란다. 오직, 성서의 내용을 보면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화두로 삼아서. 그것이 바로 천국체험이다. 천국은 바로 하느님과 함께하는 것.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시고 우리 인류에게 하느님을 알려주신 분이시다. 하느님께서 몸소 하느님을 알려주셨다. 아주 구체적인 삶으로, 아주 구체적인 말씀과 행동으로.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상 죽음으로 부활로, 성령으로. 깊이 묵상해 보기를 바란다.

 

10. 만약 신비적인 체험담을 더 알고 싶다면, 가톨릭대학교의 교수신부에게 문의를 하기 바란다. 나는 개인적으로 십자가의 성요한과 예수아기의 데레사를 특히 존경하는데, 그외 셀 수 없이 많은 천국의 체험담과 환시를 통한 천국과 연옥, 지옥에 대한 기록들이 아주 넘치도록 많으니 말이다. 바오로사도께서 기도 중 환시를 통해 본 세번째 하늘의 모습에 준하는 환시 기록도 많다. 아예 본격적인 연구를 하고 싶다면 로마교황청의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라. 최소한 30년은 매일 8시간씩 읽어도 다 못 읽을 기적과 신비 체험담이 많이 있으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 이 책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쓴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분명히 문제가 있는 책이고, 나는 이 책의 거의 99%의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 또한 편역자의 역자로서의 기본 도덕을 지키지 않는 파렴치함에 분노한다.

출처 : 진리와 자유, 생명과 평화
글쓴이 : ArchangelGabrie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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