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테크/책방이야기

[스크랩] [서평] 지혜의 보고, 사랑의 기쁨!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7. 28. 10:24

†그리스도의 평화

 

 

책명 : 사랑의 기쁨

저자 :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역자 : 이종훈 신부(구속주회)

출판사 : 바오로딸출판사

출판일 : 2008년 1월 10일

 

책의 일러두기에 밝혀져 있듯이, 이 책은 구속주회의 크리스토퍼 파월 신부와 낸시 페론 수녀가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의 원저인 The Practice of the Love of Jesus Christ 에서 발췌/편집한 내용을 같은 구속주회 신부인 이종훈 마가리오 신부가 번역한 책이다.

 

우선 번역의 수준은 참 놀랄만 하다. 원서를 보지는 않았지만, 번역을 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매끄러운 번역이고, 어법이나 어휘 측면에서도 문제가 거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정성이 들어간 번역이다.

 

평소 무척이나 존경하던 성인이기도 한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는 1696년 태생으로, 1839년에 성인품에 올랐으며 가톨릭교회내에서 몇 명 안되는 교회박사 중의 한명이시다. 또한 구속주회의 창설자이시기도 하고, 특히 성체와 성모마리아, 성요셉님께 대한 신심이 특별하신 분이셨다.

 

내가 이 분을 알게 된 것은 성요셉님과 성체에 대한 신심에 대해서 집중적인 묵상과 기도를 하는 기간 동안에 알게 되었고, 이 분의 일대기와 이분의 저서를 읽으면서 깊은 존경심과 신의를 갖게 되었다.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를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또한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일치하여 살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셨던 성인에게 존경과 형제애 그리고 우정을 드린다.

 

이 책은 성서의 바오로서간에서 언급한 사랑의 비밀에 대해서 성인의 영적인 깨달음을 한 문장씩 별도의 장으로 설정하여 그 깨달음을 기술해 놓고 있다. 그리고 매 장의 끝에는 항상 하느님 우리 아버지께 대한 기도문이 같이 실려 있다.

 

1.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2. 사랑은 친절합니다

3.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4. 사랑은 뽐내지 않습니다

5.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7. 사랑은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8. 사랑은 성내지 않습니다

9.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리를 두고 기뻐합니다

10.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줍니다

11. 사랑은 모든 것을 믿습니다

12. 사랑은 모든 것을 바랍니다

13.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성인께서는 거룩함이란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자기 자신을 일치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평론자가 보기에 어쩌면 사랑의 13가지의 기쁨은 이러한 하느님과의 일치, 즉 거룩함의 분명한 지표이기도 하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하느님과의 일치 속에 있는 지를 점검하는 지표이지 않나 싶다. 다만,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 딱 한 가지는 동의가 되지 않는다. 자기 희생, 자기 비움에 대한 성인의 깨달음이다.

 

우선,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자신의 의지와 지성을 포기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래야 하는 것인데, 이것과 영적지도자에게 순종하는 것과는 100% 일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교회 그 자체는 예수님의 신부이고, 성령의 거처로서 거룩하지만 인간의 잘못은 언제나 역사적으로도 무척이나 큰 죄악을 낳았고 이것에 무조건적 동의를 하는 것은 옳지 않고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고 본다.

 

나아가서, 하느님의 뜻에 자신의 의지와 지성을 포기하는 과정을, 나는 "자기 비움"의 괴정이라고 보다는 "하느님을 사랑하기에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무엇보다 사랑하시는 나의 아버지이시고 연인이기에, 나의 생명이기에 나의 의지와 지성과 다른 모든 것을 오로지 하느님의 뜻과 합치시키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즉,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하느님의 일방적인 사랑과 로봇같은 인간의 순종으로 인식하기 보다는, 하느님의 주도적/근원적/일차적 사랑과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의 과정으로 인식하는 것이지, 이 과정을 인간 그 자체의 철저한 자기 비움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오랜 기간의 화두였고, 앞으로도 화두가 될 것이다. 좀 더 많은 묵상이 필요한 부분으로 보지만, 그렇다고 성인들의 깨달음을 무조건적인 진리로 받아들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유는? 교회의 잘못이 역사적으로 큰 죄악이 있었듯이 (물론 선한 행위는 악한 행위보다 더 많았지만), 성인들의 깨달음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 비움이란 인간의 뜻과 지성, 욕정은 상당 부분 하느님을 가로막는 장애라고 보기 때문에 나오는 개념일 것이다. 그래야만 자기 비움이란 말이 성립된다. 하느님과 일치하기 위하여. 그런데, 진실로 인간의 많은 부분은 이런 악적인 요소가 주를 이룰까? 진정 그러할까?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하느님께서 친히 창조하신 자유의지를 가진 참 자유로운 존재이고, 참 사랑의 존재이다. 성인분들도 그렇다고 하셨고, 성서와 이분들의 깨달음을 닮은 책과 나의 신앙 경험을 바탕으로 내린 나의 결론도 동일하다. 이제 이런 인간이 하느님과 일치해 나가는 과정이 자기 비움의 과정인가? 여기서 나는 성인분들의 생각에 100% 동의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능동적이고, 근원적이며, 일차적이고, 주도적인 사랑에 대한 인간의 응답과 과정에서 생각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나는 이 과정을 자기 비움의 과정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의 부르심에 대해서 인간이 기뻐하며 하느님께로 달려가는 능동적인 과정으로 이해한다. 인간의 수동적인 과정이 아니라, 매우 능동적인 과정이다. 이 부분은 앞으로도 계속 화두가 될 것 같은데, 그러기에 좋다. 언젠가는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에. 물론 자기 비움의 과정을 수동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충분히 능동적일 수 있다. 자기 비움을 원어로 무엇이라고 할까? 라틴어로 말이다. 영어가 아니고. 2-3가지의 언어로 번역되다가 영어로 된 번역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원래의 의미가 희석될 수도 있겠기에.

 

Anyway, 이 책은 참 좋은 책이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본성인 바로 그 사랑의 비밀을 밝힌 책이고, 인간이 하느님 사랑의 길을 살아가는 데에, 하느님과 일치해 살아가는 데에,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에 자신을 바라보고 진전시킬 좌표를 얻는데 결정적 도움을 줄 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인에게 감사한다. 화두를 던져주셔서.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성인을 오랜 기간 존경해왔기에, 그리고 성인이시기에 그 분의 말씀에 더 귀를 기울이고 싶고, 충분히 묵상하고 싶다. 성인의 선의와 신의그리고 그분의 살아오셨던 하느님의 계명대로 살려고 노력했던, 특히 자신을 낮추고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을 알게 해주고, 친구되어주려고 최선의 노력을 했던 그 착한 행동의 역사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마더 데레사의 가톨릭 수도자로서의 오랜 선행, 가난한 이들의 친구로서의 삶을 신뢰하듯이.

출처 : 진리와 자유, 생명과 평화
글쓴이 : ArchangelGabriel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