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는 왜 하필 도심에서 벌어져 교통을 마비시키는 걸까?
모이기 좋고 교통에도 지장을 주지 않는 넓은 운동장이나 한적한 공원에서 하면 안 되는 걸까?
혹여 그런 의문을 가졌던 분이 있다면, 그분은 필경 ‘정치’의 속성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기 십상이다. ‘Politics(정치)’라는 말이 애초 장소(도시) 혹은 공간을 의미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와 도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류 최초의 도시들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인류의 절반 가량이 도시에서 살고 있다. “미래학자들의 추산에 의하면 2025년에는 인류의 2/3가, 그리고 22세기 초에는 인류의 3/4이 도시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한다.”(고종석 저 <도시의 기억>)
도시는 다양한 문화가 탄생한 곳이면서 동시에 인간을 괴롭히는 온갖 질병과 바이러스의 발생지이기도 했다. 유럽인들이 손쉽게 아메리카 대륙을 점령할 수 있었던 요인 역시 일찍이 도시화의 과정 속에서 온갖 전염병에 대한 내성을 기른 덕분이었다는 게 <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주장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이 유명한 말이 의미하는 바는 의외로 단순하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일찍이 ‘인프라스트럭처(기간산업)’의 중요성에 눈을 뜬 로마인들의 탁월함을 상징하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도시를 구성하는 기본단위에는 사람과 건축 외에 길(혹은 도로)이 반드시 포함된다.
8월의 키워드는 ‘도시와 길’이다. 둘의 관계는 실과 바늘처럼 따로 언급할 수 없을 만큼 밀접하다. 이 도시의 거주자들, 즉 ‘메트로(지하철)-불로(일)-도도(잠)’의 쳇바퀴 같은 일상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산책을 시작해 보자.
첫 번째 키워드는 ‘도시’이다. 시인 서정주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지만 노벨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을 키운 건 도시 이스탄불이었다. <이스탄불>을 통해 파묵은 그가 태어나고 성장해서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기까지의 개인사를 이스탄불의 변천사와 함께 담담하게 풀어 나가고 있다. 노벨상 수상 당시 스웨덴 한림원은 "파묵은 고향인 이스탄불의 음울한 영혼을 탐색해 가는 과정에서 문화 간 충돌과 복잡함에 대한 새로운 상징을 발견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스탄불>에 수록된 이스탄불의 풍경과 오르한 파묵의 어린 시절 사진 200여 점을 통해 이 도시와 파묵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다.
스티븐 존슨은 <바이러스 도시>를 통해 콜레라균이 세계 최대의 글로벌 도시였던 런던을 어떻게 엄습했고, 이 과정이 어떻게 도시 공중보건 시스템의 대변혁으로까지 이어졌는지를 과학자의 눈으로 해석하고 있다. 저자는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런던 대역병을 소재로, 거대 교역도시를 철저히 무력화시킨 무시무시한 세균의 발생과 전염, 소멸경로를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해외여행은 모든 젊은이들의 로망이다. 먼저 로망을 이룬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 설레는 유혹의 소리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임우석의 <도쿄 산책>이나 백상현의 <유럽 칸타타>, 이주은의 <이지 뉴욕>, <고정희의 바로크 정원 이야기> 등은 독자층을 확보할 만하다. 특히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간 바로크 시대 인물들과 흥미진진한 유럽 정원의 비밀 속으로 인도하는 <고정희의 바로크 정원 이야기>는 보이는 것과 보아야 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알게 해주는 책이어서 눈길이 간다.
해외여행이 시간과 돈의 제약을 받는 여행이라면 국내 여행은 부담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자신만의 확실한 컨셉을 가진 테마여행일 때 비로소 여행의 맛과 의미가 살아난다. <메뉴판닷컴이 추천하는 맛이 흐르는 도시>는 그런 의미에서 식도락가들에게 안성맞춤한 안내서가 될 듯하다. 경비에 대한 부담을 던다는 측면에서 중국으로의 여행 또한 추천할 만하다. 다만 ‘묻지마관광’이거나 단순한 역사기행이어서는 곤란하다. 역시 테마를 정해 특정 도시의 모든 것을 둘러보겠다는 마음으로 떠나는 것이 남는 여행일 수 있다. 이미경의 <상하이 산책>, 양둥핑의 <중국의 두 얼굴 : 원한 라이벌 베이징 VS 상하이, 두 도시 이야기>, 리처드 플랫의 <베이징> 등은 중국을 대표하는 두 도시인 상하이와 베이징에 대한 정보를 많이 담고 있는 책들이다.
그 외 <아이들만의 도시>, <풀 위의 생명들 : 도시 근교 자연의 사계>, <몽골 인 몽골리아>, <나는 도시에 산다> 등도 도시를 키워드로 찾아볼 수 있는 신간들이다.
두 번째 키워드는 ‘길’이다. 길은 사람에 따라 혹은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저마다 다른 의미를 지닌 동음이의어일 수 있다. 누군가에겐 이미 걸어온 추억 혹은 회한일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앞으로 걸어야 할 삶의 목표이자 의미일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걸어온 길에 대한 글들은 대체로 절절하고 안타깝지만, 걸어야 할 길에 대한 책들은 비교적 희망적이고 다짐과 결의가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과연 아직 걷지 않은 길을 마치 어느새 걸어와 버린 것처럼 가장하거나 상상해서 쓴 책의 분위기는 어떨까? 의외로 정답에 가까운 흐름들이 자주 발견된다. 암울한 회색, 공포의 어둠, 그리고 이어지는 탄식과 후회.
노(老)작가 코맥 매카시의 <로드> 역시 일종의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은 대재앙으로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지구. 폐허가 된 그곳을,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걸어간다. 남쪽을 향해가는 그들에게는, 생활에 필요한 얼마 안 되는 물품들을 담은 카트와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자살용으로 남겨둔 총알 두 알이 든 권총 한 자루가 전부다. 남자와 소년은 밤마다 추위에 떨었고, 거의 매일 굶주렸다. 식량은 늘 부족했고 숲에 만드는 잠자리는 춥고 불안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말한다. "우리가 사는 게 안 좋니?" "아빠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 나는 그래도 우리가 아직 여기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지만 우린 아직 여기 있잖아." 이 죽음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일, 나아가 사랑하는 사람을 이 세상에 남겨놓아야 하는 일에 대한 강렬한 메시지가 담긴 소설이다.
“태초에 길이 있어 걸은 게 아니라 걸어서 길이 되는” 것이라는 시인 김남조의 절창이 저절로 떠오르는 책이 있다. 박태순의 <나의 국토 나의 산하1,2,3>이다. 39편의 국토기행문과 사진작가 황헌만이 발로 찍은 풍부한 국토사진으로 구성된 이 책은 소비문화라든가 여가문화의 국토보다는 생산관계와 생산력의 국토 살피기로서 모든 창조활동이 이루어지는 풍경, 장소, 공간을 찾아내는 산문집이다.
유종인의 <산책 : 나를 만나러 떠나는 길>, 도보여행가 김남희의 <유럽의 걷고 싶은 길 : 도보여행가 김남희가 반한>, 노동효의 <길 위의 칸타빌레>, 박준의 <언제나 써바이 써바이>, 조이스 럽의 <느긋하게 걸어라 : 산티아고 가는 길>, 김창엽의 <길 위의 바람이 되다 : 집시처럼 떠돈 289일, 8만 3000km 아메리카 유랑기>, 김병훈의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자전거여행 서울·수도권> 등의 책들도 따라 걷고 싶은 ‘길’들인 게 분명하다.
그렇기로, 길만 길인 건 아니다. 마음의 길, 생각의 길을 좇는 책들도 있다. 윤수일의 <길 : 윤수일 에세이집>, 김지하의 <흰 그늘의 길1,2,3 : 김지하 회고록>, 한겨레20년사편찬위원회 <희망으로 가는 길 : 한겨레 20년의 역사>, 주섭일의 <사회민주주의의 길 : 서구 좌 우파의 실용주의>, 알렉스 칼리니코스의 <'제3의 길'은 없다 : 반자본주의적 비판> 등도 꼼꼼히 따라가 봄직한 삶의 길, 생각의 길이다.
도시
1. 이스탄불 : 도시 그리고 추억
오르한 파묵 저/ 이난아 역/ 516쪽/ 민음사/ 18,000원
2. 상하이 산책 : 골목마다 반짝이는 상하이의 숨은 매력 엿보기
이미경 글, 사진/ 288쪽/ 중앙books/ 13,000원
3. 바이러스 도시
스티븐 존슨 저/ 김명남 역/ 310쪽/ 김영사/ 14,500원
4. 도쿄 산책
임우석 저, 사진/ 320쪽/ 중앙books/ 13,800원
5 유럽 칸타타 : 어느 배낭여행자의 숨은 소도시 여행
백상현 저, 사진/ 294쪽/ 넥서스/ 13,000원
6. 이지 뉴욕
이주은 저/ 373쪽/ 블루/ 14,000원
7. 중국의 두 얼굴 : 원한 라이벌 베이징 VS 상하이, 두 도시 이야기
양둥핑 저/ 544쪽/ 펜타그램/ 16,000원
8. 메뉴판닷컴이 추천하는 맛이 흐르는 도시
메뉴판닷컴 저/ 280쪽/ 영진닷컴/ 12,000원
9. 고정희의 바로크 정원 이야기 : 유럽 정원에 담겨 있는 공간의 비밀
고정희 저/ 256쪽/ 나무도시/ 14,000원
10. 아이들만의 도시
헨리 빈터펠트 글/ 채기수 그림/ 208쪽/ 아롬주니어/ 8,800원
11. 풀 위의 생명들 : 도시 근교 자연의 사계
한나 홈스 저/ 안소연 역/ 372쪽/ 지호/ 17,000원
12. 몽골 인 몽골리아
어럴저뜨 저/ 김성철 사진/ 397쪽/ 두르가(DURGA)/ 15,000원
13. 베이징
리처드 플랫 글/ 마누엘라 카폰 그림/ 유수아 역/ 47쪽/ 국민서관/ 11,000원
14. 나는 도시에 산다
박훈하 저/ 이인미 사진/ 191쪽/ 비온후/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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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1. 로드 The Road
코맥 매카시 저/ 정영목 역/ 327쪽/ 문학동네/ 11,000원
2. 산책 : 나를 만나러 떠나는 길
유종인 저/ 256쪽/ 국일미디어/ 10,000원
3. 나의 국토 나의 산하1,2,3
박태순 저/ 황헌만 사진/ 한길사/ 18,000원
4. 길 : 윤수일 에세이집
윤수일 저/ 191쪽/ 어문각/ 10,000원
5. 유럽의 걷고 싶은 길 : 도보여행가 김남희가 반한
김남희 글, 사진/ 324쪽/ 미래인/ 13,800원
6. 길 위의 칸타빌레
노동효 저/ 강영도, 김영보 사진/ 296쪽/ 삼성출판사/ 12,000원
7. 언제나 써바이 써바이 : 길 위의 또 다른 여행자를 만나다
박준 저, 사진/ 264쪽/ 웅진윙스/ 13,000원
8.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자전거여행 서울·수도권 : 자전거 타기 좋은 길 52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여행
김병훈 저/ 353쪽/ 터치아트/ 15,000원
9. 느긋하게 걸어라 : 산티아고 가는 길
조이스 럽 저/ 윤종석 역/ 327쪽/ 복있는사람/ 12,000원
10. 흰 그늘의 길 1, 2, 3 : 김지하 회고록(문고판)
김지하 저/ 학고재/ 5,500원
11. 희망으로 가는 길 : 한겨레 20년의 역사
한겨레 20년 사사 편찬위원회 편/ 한겨레신문사/ 20,000원
12. 길 위의 바람이 되다 : 집시처럼 떠돈 289일, 8만 3000km 아메리카 유랑기
김창엽 저, 사진/ 332쪽/ 중앙books/ 13,000원
13. 사회민주주의의 길 : 서구 좌 우파의 실용주의
주섭일 저/ 382쪽/ 사회와연대/ 18,000원
14. '제3의 길'은 없다 : 반자본주의적 비판
알렉스 칼리니코스 저/ 김연각 역/ 201쪽/ 인간사랑/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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