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례자>(파울로 코엘료, 2006, 문학동네)를 읽고 --
자세히는 몰라도 코엘료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대중적 소설가임이 분명할 것이다. 1947년생이니 이제 62세 초로(初老)인 그의 작품이 전 세계 160여 개국에서 1억부가 넘게 팔렸다니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책은 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곤 한다. 흔히 대중소설이 지나치게 통속적이어서 예술성이나 감동의 울림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나는 코엘료의 책이 전 세계 독서인들의 갈채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믿는다. 현재 고국인 브라질과 프랑스 남부의 피레네 지역을 오가며 살고 있는 이 행복한 작가의 소설은 한마디로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유익하다. 이같은 문학적 성과는 그의 녹녹치 않았던 젊은 시절의 다양한 경험과 정신적 담금질로부터 결정(結晶)된 보석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10대 때 정신병원에 수차례 입원한 적이 있으며 청년 시절에는 급진적 문화운동에 종사하다 브라질 군사정권으로부터 고문당하고 수감된 적도 있다고 한다. 작곡가, 록밴드, 저널리스트, 배우, 희곡작가, TV프로듀서, 회사 중역 등 다양한 일을 경험한 코엘료는 30대 후반의 나이에 잘 다니던 음반회사를 박차고 나와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스페인의 산티아고길 순례에 나선다. 이 순례가 코엘료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산티아고 순례로부터 그는 자신에게 부여된 소명을 믿게 되고 그 꿈을 실현하는 일에 적극 투신하게 된 것이다. 그의 소설 <연금술사>에서 묘사하고 있는 대로 ‘자아의 신화’가 불러낸 ‘표지’를 따라 나선 것이다. 이 순례의 경험을 소재로 1987년에 쓴 그의 데뷔작이 바로 이 소설 <순례자>이다.
나는 산티아고길 순례에 대한 기록을 서명숙선배의 오마이뉴스 블로그에서 처음 읽었다. 서선배는 지금 ‘터벅터벅 걷기’를 하나의 문화현상처럼 만들어버린 <제주 올레길>을 만든 장본인이다. 그는 올레길을 만들어야겠다는 영감을 바로 이 산티아고길 순례로부터 얻었다(서명숙의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 걷기 여행>은 올레길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이 산티아고길 순례기도 함께 싣고 있다). 사실 기독교, 특히 가톨릭신자가 아닌 사람들로서는 과거 중세기 때부터 종교적 사명으로 시작된 이 순례길, 사도 야고보성인의 유골이 묻혀있는 대서양변의 한 작은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찾아 가는 700km의 도보여행을 떠나야 할 어떤 당위적 이유도 없다. 하지만 오늘날 이 길에는, 과거 순례의 황금기였던 14세기에 해마다 백만 명 이상이 걸었다는 종교적 순례자들 대신에 ‘자아(自我)의 표지(標識)’를 찾아 떠나는 수만, 수십만의 사람들이 전 세계로부터 몰려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만들어내는데 큰 기여를 한 코엘료의 <순례자>는 그가 일종의 비교(秘敎) 조직인 람(RAM)의 요구로 ‘마음의 검’을 찾아 떠난 경험담을 토대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소설은 주인공이 브라질 ‘세하 두 마르 산’(이과수폭포의 발원지이다 : 필자 주)에서 람의 마스터 서품식을 치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나’는 마스터의 상징인 검을 넘겨 받는 마지막 순간에 그 신성한 의례를 통과하지 못한다. 선택된 자의 오만함, 비범한 것에 대한 미혹으로 인해 순결한 마음을 상실했다는 판결과 함께. 그래서 ‘나’는 자신의 검을 찾기 위해 람에서 요구한 대로 스페인의 산티아고길을 찾아 떠난다. 검은 그 길의 어딘가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순례길의 출발지인 프랑스의 피레네산맥 지역 ‘생장피에드포르’에서 람에서 파견한 길의 안내자인 페트루스를 만난다. 산티아고에 이르기까지 규칙상 나는 안내자에게 절대 복종해야만 한다. 페트루스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소박함’의 길이며, 누구라도 걸을 수 있는 길이고, 이런 길만이 신에게 이르는 길”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평범함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추구할 수 있는 일이 바로 구원의 길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페트루스는 우리를 신께 한 걸음 더 가까이 가닿게 해주는 것은 열정이지, 수백 수천의 고전을 읽는 것이 아니라고. ‘비밀의식’이나 ‘심오한 교리를 따르는 입문식’이 아닌, 삶이 기적임을 믿으려는 의지가 기적을 낳는 것이라고 설파한다.
길을 걸어가며 페트루스는 나에게 이런저런 훈련을 시킨다. 씨앗훈련, 속도훈련, 죽음훈련, 람호흡법 등등. 이런 훈련들을 통해 나는 삶과 죽음의 의미, 생명과 자연의 신비 그리고, 나와 우주의 일체감 등을 깨닫고 배운다. ‘내’가 죽음에 대한 훈련을 통해 어떤 의미를 체득하는지 보기로 하자. “깊은 회한이 몰려왔다. 산 채로 매장당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사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던 나 자신에 대한 깊은 후회였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충만한 삶을 즐기는 것일진대, 나는 무엇 때문에 거절당할까 두려워하고 하고 싶은 일을 훗날로 미루었던 것일까? ...(죽음이) 내 손을 잡고 분명히 말해주었다. 다른 세계로 떠나야 할 순간이 왔을 때, 가장 큰 죄악과 함께 가서는 안 된다고. 그것은 후회라는 죄악이었다.”
이렇게 페트루스는 순례길 내내 절대 권위의 안내자로서 ‘나’를 다른 인간으로 만들어주고 있었지만 그 자신은 역시 평범한 사람의 심성과 외양으로 일관했다. 실제로 그는 브라질을 좋아하고 그 이유가 리우데자네이로에 있는 코르코바두의 그리스도상 때문이라고 말하는 보통 사람이다. 이런 보통 사람 페트루스에게 주인공은 적이 안도한다. “...여행하는 동안 그 어떤 순간에도 페트루스는 나보다 더 현명하거나 성스럽거나 더 나아 보이려 한 적이 없음을. 그는 내게 람의 의례를 행하며 자신이 한 경험을 전달해주는 데 그칠 뿐이었다.” 이같이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추구하는 람이라는 조직(코엘료의 글에서는 이 조직이 실재하는 것으로 쓰고 있다)에 대해 나는 왠지 모를 친밀감을 느꼈다. 소설 속의 순례자가 그 안내인에게 안도했던 것과 비슷한 이유로 나는 그 조직과 코엘료에 대해 깊은 친밀감을 느꼈던 것이다.
결국 순례의 목적은 나의 꿈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그것이 신이든, 아니면 나의 개인적인 자아를 찾아 떠나는 것이든. 코엘료 소설의 가장 큰 주제어는 바로 이 ‘꿈’이다. 그래서 코엘료는 페트루스의 입을 빌어 말한다. “인간은 결코 꿈꾸기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육체가 음식을 먹어야 사는 것처럼 영혼은 꿈을 먹어야 살 수 있으니까요...선한 싸움은 우리가 간직한 꿈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입니다...선한 싸움을 이끌어갈 용기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꿈을 죽여버리는 겁니다.”
코엘료에게 있어서 꿈꾸기와, 그 꿈을 지키기 위해 ‘선한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용기와 의지가 없는 인생은 ‘죽은 삶’일 수밖에 없다. 꿈이 없는 인생은 과연 어떻게 될까? 페트루스가 답한다. “꿈을 포기하고 평화를 찾게 되면, 얼마 동안은 평온함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은 꿈들이 우리 안에서 썩어가면서 우리의 존재 자체를 감염시키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주위 사람들에게 잔인해지게 되고, 마침내는 그 잔인성을 자기 자신에게 들이대게 됩니다. 그리고 고통과 강박관념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코엘료는 연대(連帶)에 대해서도 힘주어 강조한다. 이런 뜻을 전하는 페트루스의 말은 이미 한 편의 시이고 장쾌한 웅변이다. “한 시인이 말했지요. 어떤 사람도 섬이 될 수는 없다고. 선한 싸움을 이끌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합니다...모든 사람들과 모든 것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오만한 전사가 되고 말 것이고, 그 오만함은 결국 우리 자신을 파괴하고 말 것입니다.” 너무 가슴에 와닿는 말들이라 길게 소개하였다.
숱한 훈련을 거치고 많은 깨달음을 얻은 순례길의 막바지에 ‘나’는 <엘 세브레이로 산> 정상에서 기도한다. “당신께서는 사사로운 지혜로 인해 교만한 마음을 품었던 저로 하여금, 모든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을 따라 걷게 하셨습니다. 삶에 조금만 귀 기울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을 발견하게 하셨습니다.” 코엘료는 요컨대 우리들 누구라도 조금만 더 진지하게 삶을 성찰하면 “잠들어 있던 신이 내 안에서 깨어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마치 그 자신이 산티아고길 순례를 통해 얻었듯이 말이다.
코엘료는 소설을 끝내고 뒤에 붙인 <작가의 말>에서 자신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이미 인생의 전환을 결심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나는 바뀌어야 했다. 내 꿈을 좇아야 했다. 비록 그것이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우며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 해도, 늘 마음 속으로는 바라왔으나 뛰어들 용기를 내지 못했던 꿈, 그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가 풍족한 급여와 안정된 생활을 포기하고 불확실한 작가의 길을 선택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의 작품으로 미루어보면 사랑, 꿈, 선한 싸움, 소박함, 연대, 그리고 삶 자체의 소중함 등등일 것이다. 이런 가치들을 사람들 가슴 속에 심고, 이 세계를 더 좋은 세상으로 바꾸어 가자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파울로 코엘료의 지지자요, 동지이다. 내 나이, 벌써 40대 후반이지만 나는 여전히 ‘꿈’과 ‘선한 싸움’의 가치를 믿고 그 길을 향해 계속 나아가볼 작정이다. 그 길을 가는 도중 삶이 힘들어질 때,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될 때 나는 다시 이 소설 <순례자>를 꺼내 읽으며 위안과 용기를 얻으리라.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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