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의 독후감은 2008년 3월에 옛날 개인홈페이지의 함께쓰는 독서노트 코너에 올렸던 글인데,
이연학 신부님의 인도차이나 행장기를 보고 생각이 나서 블로그로 옮겨놓음.
지압장군을 찾아서(들녘, 2005)
안정효의 베트남 기행 수상록이다. 80년대 후반이던가, 본인의 베트남전 참전 경험을 토대로 쓴 소설 <하얀 전쟁>으로 우리 곁에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이 과작의 노작가(1941년생)는 오랜만에 내놓은 <지압장군을 찾아서>를 통해 기행문학이란 이런 것이다 하고 선포하는 듯하다. 그만큼 탁월한 지성을 바탕으로, 역사 그리고 세계와의 대화를 진진하게 풀어가는 책이다.
지압장군을 아는가? 과거에 우리가 보 구엔 지압이라고 들었던 사람, 프랑스와의 디엔비엔푸 전투와 미국과의 10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월맹의 최고 군사지도자였던 사람이다. 베트남 말로는 보 응웬 지압이 맞는 발음이란다(마찬가지로 한국군이 주둔했던 나트랑은 나짱이 맞다). 안정효씨가 굳이 이 기행문의 제목을 ‘지압장군을 찾아서’라고 붙인 이유는 책을 다 읽어보면 알 수 있다. 그에게 이 여행은 단순히 베트남의 풍물만을 보기 위함이 아니라 베트남전쟁을 중심으로 역사와의 대화를 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호치민(옛 사이공)에서 출발하여 하노이로 북상하는 기차여행을 선택한다. 남북으로 길게 생긴 베트남의 지형상 끝에서 끝도 아닌데 장장 1,600km의 긴 여정이 된다. 나짱과 다낭 등 옛날 한국군이 주둔하고 전투를 벌였던 지역에서는 과거를 회상하며 엉뚱하게 종군기자로 그 전쟁에 뛰어들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중부의 고도(古都) 후에에서는 미군과 월맹군이 벌였던 치열한 시가전의 공방 현장을 답사하기도 한다.
하노이로 가는 밤기차에서 그는 과거에 월맹정규군이었던 사람과 베트콩이었던 사람을 만나 긴 대화를 나누며 그 전쟁의 의미를 정리한다. 베트남전은 기본적으로 불의한 전쟁이었다는 것이 그의 기본시각이다. 그러면서도 우리 한국군의 만행(?) 등에 대해서는 정당화하지는 않지만 과도한 콤플렉스를 배척하고자 애쓴다. 베트남이라는 특수한 전장에서의 전투 논리로 설명한다. 이렇게 균형을 추구하는 그의 시각은 패권국가로서의 미국에 대해서, 대한민국의 독재체제와 철학없는 언론에 대해서도 냉정한 비판의 잣대를 들이댄다.
기행의 앞 부분에서 작가는 자신의 종군기자 시절 가깝게 지냈던 한 월남 기자를 30년 만에 호치민시에서 어렵게 재회한다. 그런데 공산화이후 탈출하지 않고 남아서 당연히 엄청난 고초를 겪었을 것으로 생각했던 그로부터 뜻밖의 고백을 듣는다. 서방 언론의 현지 채용 기자였던 그 사람은 내막적으로는 베트콩의 협력자였던 것이다. 월남과 미국이 결코 이길 수 없었던 전쟁이었다는 점을 극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한 삽화이다. 기행은 하노이에서 90객의 노인인 보 응웬 지압 장군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제는 노년으로 접어든 우리 사회 60대들에 대한 인식을 한층 더 넓혀 보게 되었다. 안정효선생의 글쓰기를 통해 진보주의자를 표방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지성을 갖춘 휴머니스트의 시각만으로도 세상을 눈밝게 읽어내고 국가 속의 인간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좌표를 제시하는 훌륭한 지식인의 상을 만날 수가 있었다. 단지 베트남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세계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고 깨우쳐주는 멋지고 재미있는 기행문학과의 만남이었다.
'이야기테크 > 책방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보고 (0) | 2009.09.27 |
---|---|
[스크랩] 연극 관람기 <그대를 사랑합니다>. (0) | 2009.09.27 |
[스크랩]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vs.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 (0) | 2009.09.27 |
[스크랩] 파울로 코엘료를 읽는 기쁨 1 (0) | 2009.09.27 |
[스크랩] <소금꽃나무>를 아시나요? (0) | 2009.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