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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도보여행 12일차(9.21) - 동량에서 청풍까지 충주호반의 흙길 -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9. 27. 08:39

 

9. 21(월) 아침부터 내내 가랑비.

 

눈을 떠보니 아직 미명의 새벽이다. 시간이 아주 이른 줄 알았더니 5시 50분이다. 창밖을 보니 가랑비가 내리고 있다. 비가 오고 있어 날이 어두웠나 보다. 나는 원래 야행성이고 아침잠이 많은 편인데, 이제는 5시간 정도만 숙면을 취하면 알람시계가 울리기 전 새벽에 잠을 깬다. 도보여행을 하면서 체질까지 바뀌는 모양이다. 곤하게 자는 아들을 억지로 깨웠다. 오늘의 길동무다. 학교에는 오늘 아빠와 도보여행을 함께 하는 체험학습을 하겠노라 연락해두었다.

 

이 시기 충주호 리조트 주위에는 아침식사를 파는 곳이 없어 고구마와 복숭아로 끼니를 해결하고, 8시에 숙소를 나섰다. 여전히 내리고 있는 가랑비. 굳이 우의까지 꺼내 입지 않더라도 내가 입고 있는 바람막이 겉옷 정도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빗방울이다. 어제밤에 송뜰가든 할머니가 일러준대로 더 안쪽으로 차를 몰아 들어가니 드디어 포장로가 끝나고 비포장 흙길이 나타난다. 차를 내려 걷기 시작한 시각이 8시 20분이 채 못되었다.

 

이 길은 충주호를 따라서 제천 금성까지 산길로 이어진 532번 지방도로이다. 비포장 구간이 20km 가량 되고 호수의 물길을 따라서 꼬불꼬불 구절양장의 모양으로 길이 계속되므로 속도를 낼 수 없기 때문에 차량통행이 거의 없다. 우리가 오전 내내 걸었지만 마주친 차가 전부 3대에 불과하다. 외진 골짜기이지만 그래도 군데군데 낚시터들이 은밀하게 자리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 통행이 이렇게 적은 것은 오늘이 9월의 월요일이기 때문일까?

 

 (충주에서 제천 청풍으로 넘어가는 '장전고개'에서 길은 별칭 달라진다)

 

하지만 걷는 우리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길이 있을 수 없다. 사람도, 차도 다니지 않는 인적끊긴 산길을 가는데, 충주호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절경의 한 가운데를 걷는다. 호수가 보이지 않으면 금방 산중이다. 그것도 깊은 첩첩산중의 분위기가 되고 만다. 이렇게 산길과 호반길의 정취를 함께 맛보며 오락가락하는 가랑비 속에서 4시간 이상을 꼬박 걸었다. 중간에 오산리-방흥리-단돈리 등의, 마을이랄 것도 없는 민가의 흔적만 지나쳤을 뿐이다.

 

 

 

 

 

강줄기와 호수의 모양을 따라 구비만 심하달 뿐, 경사가 크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이 흙길 걷기는 참으로 수월하고 즐거웠다. 4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눈깜짝할 새 지났고, 어느덧 부산리(婦山里) 마을유래비 앞이다. 우리가 걷고자 목적했던 길은 거기서 끝나고, 이후에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와 만난다. 도로를 넓히고 포장을 하는 공사가 진행중이었던 것이다. 그 1km 남짓의 공사구간이 끝나자 이미 잘 닦여져 있는 왕복 2차선의 532번 아스팔트도로와 만난다. 같은 번호의 도로라도 지금까지가 천상의 길이었다면, 이제부터는 현실세계의 도로인 것이다.

 

 

 

그 천상의 길은 19km였다. 나는 마지막 공사구간을 만나 맥이 풀리기도 하고, 중간에 엄마차를 타고 갔던 아들이 오늘의 목표 거리를 채운다고 혼자 걸은 끝에 삼거리에서 방향을 몰라 당황해 하고 있는 것을 만나, 애엄마를 불러 함께 차를 탔다. 그래서 1km는 덜 걸었다. 이 공사구간이 앞으로 얼마나 더 계획되어 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우리가 오늘 걸었던 비경의 도보길이 오래 유지되지는 못하겠구나 하는 예측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내 영혼에 상처를 받는 기분이 든 것은 왜였을까.

 

12시 30분에 충주호 호반길 걷기를 종료하고 귀경길에 올랐다. 12일 만의 귀가이다. 마지막 일정을 가족과 함께 해서 귀가에 대한 설레임은 거의 없고, 오히려 이렇게 짧게 여행을 끝내는 것에 대한 아쉬움만 앞선다. 그래도 가족들 앞에서 내색은 할 수 없다.

 

도보여행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힘이 센 여행이다. 얼마 안되는 기간이지만 내게 많은 것을 깨우쳐주고 선사해준 여행이다. 내 사정상 이번에는 이렇게 여행을 끝낼 수밖에 없지만 앞으로는 짧게라도 자주 걸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렇게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하고 감사하다. 내일은 12일 간의 도보여행을 결산하고 평가해보는 글을 써야겠다. 다음 여행을 위해...

출처 : 김영춘 BLOG
글쓴이 : 아차산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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