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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도보여행 11일차 (9. 20) - 보은 서원리에서 삼년산성까지 -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9. 27. 08:39

 

9. 20(일) 가을바람이 부는 맑은 날.

 

어제 밤 12시 가까이에 가족들이 보은으로 내려왔다. 내 아내와 초5짜리 아들. 내일 일요일을 틈타 함께 걷기로 한 주인공인 아이는 이미 차 뒷좌석에서 긴 잠에 빠져 있었다. 좁은 여관방에 셋이 자느라 침대에는 둘을 재우고 나는 바닥에 간신히 자리를 깔고 누웠다. 그래도 낮이 피곤해서인지 금새 잠이 들었다. 5시간을 자고 6시에 잠이 깼는데 다시 잠이 들지 않는다. 하는 수없이 일어나 조용히 씻고 짐을 꾸리는데 잠귀 밝은 아내가 일어나 거든다.

 

터미널 주변의 보은 읍내를 걸어다니다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아내가 갖고 온 차로 이동하여, 출발예정지인 외속리면 서원리에서 걷기를 시작한 시각이 8시 50분. 길가에 소나무숲이 있어 거기가 출발점인 줄 알았더니 <서원리 소나무>는 그곳에서 한 500m나  더 올라가야 있는 유명한 '정부인 소나무' 한 그루란다. 걷기 시작한 후 길가 밭에서 만난 아주머니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출발지라는 게 내 마음에 있는 것이지, 사람들이 정해놓은 한 지점이란 것이 무슨 그리 큰 의미가 있으랴. 다음에 보기를 기약하는 수밖에.

 

삼가천을 따라 걷는 길이란 것과 중간 경유지로 상현서원(2km 지점)과 선병국가옥(또 2km 지점), 그리고 종착지가 삼년산성이란 정보밖에 갖지 못한 나로서는 애써 추천받아 걷는 코스가 계속 아스팔트도로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삼가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만날 때마다 건너가서 고즈넉한 도보길을 찾느라 애를 써보았다. 하지만 헛된 수고였다. 흙길이나 콘크리트길은 산으로 올라가버리거나 논밭이 끝나는 지점에서 끊겨버린다. 몇 번 시도끝에 마음에 드는 길찾기를 포기하고 마냥 도로길을 따라 걷는다.

 

 

 

걷다보니 충북알프스(속리산-구병산의 44km 등산코스)의 기점이란 표지와도 만나고, 아담한 분위기의 상현서원도 지난다. 그리고 길가의 표석을 통해 이 서원리 계곡이 금강의 발원지라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선병국가옥은 너무나 커서 빈 마당의 큰 여백이 당황스러운 집이다. 남아있는 고가들만 보아도 이 집이 과거 얼마나 부잣집이었고 이 일대에서 위세가 등등한 가문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그런  집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위세가 빠지고 재산이 빠져 낡아가는 선병국가옥은 퇴락한 과거 양반지주들의 현 주소를 보는 것같아 씁쓸하였다.

 

 

 

삼가천길은 상류 쪽으로 올라가면 속리산행이요, 하류쪽은 보은-상주 간 도로와 만난다. 그 만나는 삼거리가  장내리 삼거리이다. 19세기 말 동학혁명 때 이곳 장내리에서 동학도들의 보은집회가 열렸다는 안내판이 길가에 서있다. 그 뜨거웠을 흥분과 조바심의 집회와 지금의 마냥 평화로운 장내리가 잘 연결이 되질 않는다. 지난 역사와 현실의 물리적인 만남은 항상 이렇게 멀뚱하기 십상이다. 결국 정신문화와 사상의 연결 만이 강력할 뿐이다.

 

삼거리에서 보은 쪽으로 발걸음을 튼다. 마냥 도로의 갓길, 혹은 갓길도 없어 차선 한켠을 눈치걸음하는 것이 싫어 논두렁 사이의 시멘트길을 걸어본다. 논밭과 농로 가에 심어져 있는 벼, 콩, 깨, 호박들을 소재로 아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길의 진행이 여의치 않으면 다시 도로로 올라서는 일을 2~3번 반복하면서 스스로 재미를 만드는 걷기를 하였다. 


선병국가옥에서 삼년산성까지는 9km. 보은장례식장을 지나자  보은읍내가 금방일 것처럼 이정표가 반복되는데 삼년산성의 입구는 바로 그런 지점에서 왼쪽으로 언덕을 돌자마자 불현듯 나타났다. <삼년산성-자연휴양림>이란 간판이 요란하지 않게 숨은듯 서있다. 입구에서 조금 걸어 들어가니 <북문>이란 이정표와 <산림욕로>란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남자들은 후자를, 내 아내는 전자의 길을 선택하여 올라갔다. 10여분을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자 두 길이 다시 만난다. 그곳에서 조금 더 올라간 곳에서 삼년산성의 성곽이 올려다보인다. 성벽은 돌들을 다듬어 쌓은 것인데 마치 벽돌을 구워 쌓은 듯 가지런히 정연하다.  기 400년대 자비왕시대에 신라가 쌓았다는 이 산성은 삼국경합의 와중에서 전략적 요충지로 크게 활용된 곳이라고 한다. 백제와의 전쟁 당시 태종무열왕이 당나라의 사신을 접견한 곳이라는 설명도 있고, 나중에는 고려의 왕건이 이곳을 공격하다가 패퇴하였다는 이야기도 소개되어 있다.

 

삼년산성을 내려와 보은 읍내로 들어갔다. 오후 1시경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서 시내의 분식집을 찾아 열무국수와 만두, 김밥 등으로 기대하지 않은 뜻밖의 맛있는 점심 식사를 하였다. 그 식당의 이름은 <레드분식>. 보은을 찾는 사람들은 주머니가 가볍거나 무겁거나 한번쯤 찾아볼 만한 맛집이다. 식사 후에는 말티재를 넘어 속리산 법주사로 향했다.  지금까지 걸은 거리가 길찾느라 헤맨 것까지 포함해서 15km 가량인데 아무래도 미진하고 시간도 남는다 싶어 법주사가는 길 <오리숲>을 걸어보기로 하였다.

 

하지만 유료주차장에 차를 대고, 법주사 입구 매표소에 가보니 1인당 입장료가 무려 3,000원이다.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었고, 법주사에서만 돈을 받을텐데 옛날보다 더 많은 입장료(다른 국립공원 기준)를 받는다는게 화도 나고 이해가 잘 되질 않았다. 그래서 발길을 돌려 그 아래의 숲길을 산책하기로 계획을 바꿨다. 왼편 길로 내려가 야영장까지 한 바퀴 돌고 나와서는 길가 슈퍼 앞에 앉아 인스턴트 팥빙수를 사먹었다. 하루의 피로를 씻는 마지막 일정으로는 최상의 디저트가 아니었나 싶다.  

 (법주사 입구에서 바라본 속리산의 원경)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제천으로 향했다. 내일은 이번 도보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충주호 주변 비포장  호반길 20km를 걷기로 하였다. 원래 예정은  충주시 산척면의 달랑고개에서 출발하여 제천시 금성까지 가는 것인데 오늘 삼탄역 주변을 답사하면서 탐문해봐도 시작 지점을 찾기가 어려웠다. 고민을 하면서 오늘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코스를 결정하자고 미뤘는데 해결책은 뜻밖의 조언자로부터 왔다.

 

숙소 문제로 고민하다 충주호리조트에 가서 자기로 하고 그 바로 입구의 <송뜰가든>에서 저녁식사를 했는데 그집 할머니 말씀이 여기서 조금만 더 차를 달리면 아스팔트길이 끝나고 비포장로가 나오는데 그 길이 제천 금성까지 가는 길이란다. 세상에 이런 일이...할머니가 말씀하는 <금자미?>는 아마도 처음 예정했던 시작점에서 옥녀봉을 넘어온 지점인 것같다. 내일 다시 40여분 차를 달려 달랑고개로 가느니 할머니왈 '금자미'로 가서 시작하는 게 백번 나을 것같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은 우리의 도보여행중 마지막 밤이다. 내일 저녁은 집으로 바로 귀가할 생각이다. 그래서 김선배와의 쫑파티를 닭도리탕과 소주 각 1병으로 마춤했는데 할머니의 솜씨가 아주 맛있었다. 아울러 76세 제천댁 할머니의  인생유전 스토리를 식사 내내 옆에 앉은 당신으로부터 들으면서 즐거운 저녁시간을 함께 보냈다.

 

충주호리조트는 방 하나, 거실 하나 짜리를 빌렸는데 우리 식구 세 사람이 거실에서 함께 잤다. 이 넓은 리조트 전체에 투숙객은 우리 일행 4명 뿐인것 같다. 아무리 비수기라도 이렇게 인적이 끊긴 적막강산일까 싶어 무섭기까지 하다. 이 글을 쓰는 리조트 오락실에도, 나와 옆에서 게임중인 아들밖에 손님이 없다. 이 컴퓨터는 [오락실]에 앉은 값을 하느라 노랗고 발간 철갑을 둘렀다. USB 포트 따위는 보이지도 않아 사진올리기는 포기하고 내일로 미룬다..

 

출처 : 김영춘 BLOG
글쓴이 : 아차산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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