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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철원 복계산의 진달래꽃길을 다녀와서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9. 27. 08:46

철원 복계산의 진달래 꽃길을 다녀와서.

 

 

나는 벌써 몇 년째 매달 3번째 토요일 아침이면 <어울림산악회>의 등산 버스를 탄다. 외국에 체류 중일 때를 제외하면 빠지는 일이 없다. 어울림산악회는 처음 광진구에 사는 이들로 구성이 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계동, 남양주 등 멀리서 오는 회원들이 늘어 지금은 거의 수도권 산악회처럼 되었다. 하지만 출발지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중곡동이다. 멀리서도 불편을 무릅쓰고 몇 년째 이 산악회에 오시는 분들은 우리 산악회가 ‘편안한 산행모임’이기 때문이란다. 재정문제나 다른 목적으로 회원을 늘리는 데도 별 관심이 없다. 오직 산행이 좋아서 오는 사람들만 환영하는 그야말로 ‘동네 산행모임’인 것이다.

 

어울림산악회 소개가 애초 목적이 아니었는데 말이 길어졌다. 어제 있었던 4월 산행은 철원군 근남면의 복계산(福桂山), 서울 우리 동네에서 포천을 경유하여 2시간 20분 가량 버스를 달리니 복계산이다. 민간인이 등산을 할 수 있는 남한 최북단의 산이란다. 동해안 고성군 쪽에 더 북쪽 산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모르겠다. 서울에서는 이미 져가는 봄꽃을 보러 일부러 북상길을 선택했다.  임꺽정 드라마를 촬영했다는 청석골 세트장이 있는 곳에 제법 넓은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는데 입산료는 받지 않는다. 등산로 입구의 산행 지도를 보니 정상은 1057m, 우리가 서있는 곳이 이미 해발 500m 가량은 됨직하니(가까이에 있는 매월대 바위가 595m 위치라고 해서 추정해본 높이다) 대략 5~6백미터를 올라가는 셈이다.

 

토요일인데도 복계산에는 등산객이 거의 없었다. 산행내내 우리말고는 소규모 일행의 등산객 두어 무리만을 만날 수 있을 따름이었다. 우리가 선택한 길은 원래 매월대 쪽으로 올라가 매월대폭포로 내려오는 코스였는데 막상 올라가 보니 착각이란 걸 알게 되었다. 매월대코스는 애초에 주차장 올라오기 전에 진입 등산로가 있었던 거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폭포코스로 올라가서 다시 같은 길로 하산하자고 결정했다. 매월대폭포(정식명칭은 선암폭포)는 이 봄가뭄 중에도 제법 물줄기를 내려보내고 있어 반가웠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비가 많은 여름철에는 그런대로 장관을 보여줄 듯한 폭포이다. 이 인근에 매월이란 지명이 난무하는 것은 매월당 김시습의 행적이 여기에 미쳤기 때문이란다.

     (두 장의 사진은 산악회원인 노정애씨의 작품)

 

세조의 권력찬탈과 단종의 애사를 접한 김시습은 세상에 대한 모든 미련을 버리고 전국을 유랑한다. 그 와중에 김시습이 이곳 복계산에도 들러 잠시 머물렀을 법은 하나 여기 관청에서 세워 놓은 안내문의 설명처럼 이곳에서 오래 은거생활을 하지는 않았을 것같다. 하지만 매월당이 여기 머물렀다는 것만으로도 바위에, 폭포에 그의 이름이 붙어 후대의 사람들에게 까지 그를 추모하게 만드는 힘은 무엇인가? 권력을 누린 세조는 후세의 존경을 받지 못하지만, 그를 거부하고 표표히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시문(詩文)을 남기고 그 길에서 죽어간 재야의 은사는 이다지도 후대의 추앙을 받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런가?

 

폭포를 지나 입산한 지 30여 분만에 능선길에 올라서자 진달래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북한산의 진달래 능선은 사람들이 워낙 많이 다녀 꽃들이 저만큼 물러서 있지만, 이곳에서는 등산로 좌우 2~3m 키의 진달래나무(진달래관목을 나무라 하기 어색하지만 여기서 보니 확실히 나무다)가 드리운 무수한 꽃잎사이로 내가 걸어가는 형국이다. 그래서 나중 하산길에는 일부러 일행과 수십 미터 뒤떨어져 혼자서 조용히 진달래꽃길의 정취를 만끽해 보기도 했다. 중간에 삼각봉이라는 작은 봉우리를 경유해 정상을 향해 오르노라면 노송쉼터라고 이름붙여진 절벽가의 바위가 나타난다. 그야말로 수백년은 되었음직한 노송이 바위 틈에서 용케 장수의 천운을 누리며 키워온 기기묘묘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곳에서는 그 노송의 부름 때문이라도 누구든지 잠시 쉬어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삼각봉에서 정상까지의 능선길은 부드러운 흙길이라 걷기가 참 편했다. 산 아래쪽은 소나무가 많지만 위쪽은 대부분 참나무 종류라 낙엽썩은 부엽토가 잘 형성이 되어 있었다. 주차장에서부터 1,057m 정상까지는 약 1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정상지나 1분 거리에 헬기장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북동쪽으로 대성산이 건너다 보였다. 그곳은 군사지역이라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한다. 일행은 헬기장의 평평한 공터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싸갖고 온 밥과 반찬을 나누어 먹었다. 땀흘리는 운동을 한 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산정에서 먹는 도시락은 봉사정신으로 맛있는 반찬, 쌈, 컵라면 등을 싸온 이들과 한 잔씩 돌린 막걸리와 복분자주 덕분에 더더욱 진수성찬이 되었다. 식당에서 사먹는 밥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정말 꿀맛이란 게 이런 거지 싶었다.

 

하산길은 쉬엄쉬엄 걸었다. 맨 마지막에 처져 진달래꽃도 완상하고 매월대 폭포에서는 저만치 떨어진 바위에 앉아 폭포를 구경하며 단전

호흡과 명상을 해보기도 했다. 한참을 미동도 없이 앉았더니 다람쥐 한 마리가 1m 거리의 내 옆을 지나간다. 그 놈을 한참 쳐다 보며 손을 내밀고 마음 속으로 ‘이리 와봐라. 난 널 해치지 않아. 너를 사랑한단다.’하고 되뇌였지만 그놈은 잠시 보다 가버린다. 그래 다시 시선을 돌리니, 다른 다람쥐 한 마리가 바로 앞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나도 편안한 시선으로 한참을 마주보았다. 한 5~10초쯤 그러고 있다 그놈 역시 제 갈길을 가버린다. 그러면 그렇지, 나는 아직 물아일체로 자연과 하나되는 경지가 못되는 손님인 것이다. 

 

놀며 쉬며 걸어도 왕복 3시간이면 충분한 산, 걷기도 좋고 꽃구경까지 선사하니 복계산은 나같은 아마추어 등산객으로서는 참으로 편안하고 즐거운 산이 아닐 수 없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포천 이동의 <이동막걸리> 직판장에 들러 김치 한 보시기와 함께 시원한 막걸리를 한 박스 사서 버스 안에서 한 잔씩 나누어 마셨다. 그리고는 돌아가면서 노래 자랑을 한다. 노래방 때문인지, 원래 노래를 잘 부르는 분들만 모인 건지 모르지만 다들 노래를 참 잘 부른다. 난 요즘 성대를 다쳐 노래를 안 불렀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의 기분좋은 하루가 저물었다.

출처 : 김영춘 BLOG
글쓴이 : 아차산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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