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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토요일의 자전거 소풍 - 강화도 마니산 일대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9. 27. 08:46

 

토요일의 자전거 소풍과 양명학 - 강화도 마니산 일대

 

 

모처럼 낮 시간에 아무 일이 없던 지난 토요일, 전부터 기회를 엿보던 강화도 자전거 소풍을 실행에 옮겼다. 작년 이맘 때의 자전거 전국 일주여행 이후 시간이 날 때 가끔 한강 자전거도로를 달리는 것으로 라이딩의 갈증을 달래는 게 전부여서 아쉬였던 차다. 강화도는 작년 전국 일주를 앞두고 실제 도로에서의 실전 연습을 하러 왔던 곳인데, 강화대교 건너 역사박물관에서 출발하여 초지진을 지나 아마도 동검리 쯤에서 다시 돌아오는 왕복코스를 달렸다. 50km를 약간 넘는 비교적 쉬운 코스였는데도 초보자의 한계를 절감하고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는 추억의 장소이다.

 

이번 주행은 차에 자전거를 싣고 가서 화도면의 마니산 주위를 한바퀴 도는 코스를 달리기로 정했다. 근 1년동안 도로 주행을 하지 않았고 또 마니산 주위라 고개가 꽤 있지 않을까 싶어 어림짐작으로 30~40km 정도로 짐작되는 짧은 코스를 정한 것이다. 거기다 내심 코스 중간에 있는 이건창선생의 생가를 꼭 한 번 들러보고 싶은 마음이 나를 이 길로 내몰았다. 이건창선생은 구한말의 유학자인데 여한(麗韓) 9대가(大家)의 1인으로 꼽힌 조선 최후의 대문장가였다고 한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허명(?)보다도 그가 조선에서 거의 희귀종에 속하는 양명학자라는 사실이 더 소중한 사실(史實)로 다가왔다.

 

(마니산의 정문격인 상방리 쪽 등산로 입구 - 보통 등산객을 실은 관광버스가 닿는 곳이다)  

 

그래서 원래는 이 이건창생가를 출발점으로 삼으려했으나 지도를 보니 거리가 너무 짧아보여 일주코스를 좀더 늘이려는 욕심에 전등사 주차장으로 출발점을 변경했다. 아침에 사무실을 들르는 바람에 출발시간이 늦어져 10시에야 중곡동을 출발했다. 그래도 서울 강변도로와 김포 읍내 우회도로까지는 차가 잘 빠져 별 생각없이 강화대교 방향의 길로 가고 있었는데 아뿔싸, 장기지구를 지나면서부터 도로정체가 극심해지는게 아닌가? 진즉에 초지대교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어야 했는데 늘 강화다니던 길을 따라 가는 방심을 했다. 나중에 통진에 가서야 하는 수 없이 양촌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래서 11시 30분이면 넉넉하게 도착하겠지 싶었던 목적지에 당도한 시각이 12시 30분이었다. 별 차이 아닌데도 괜히 쫒기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전등사 주차장은 아주 널찍했다. 버스가 10여대 서있는 데도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을 정도로 컸다. 한 쪽 구석에 차를 세우고 자전거 바퀴를 조립하고 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오더니 주차비 2,000원을 받아 간다. 강화도에서는 조금만 신경쓰면 주차비를 안물어도 되는데 나는 오늘 출발지점에 연연해 하다 보니 돈을 내고 만다. 강화대교 건너 강화역사박물관이나 동막해수욕장 입구 등에는 무료주차장도 있던데 말이다. 그래도 이곳에 세우길 잘했다 싶은 건 주차장이 넓어서였다. 나중에 가본 이건창생가만 해도 주차 공간이 5~6대 분밖에 없어 거기 종일 차를 세웠다가는 눈치받기 십상이고 동막리 주변도 주말에는 혼잡해서 안전주차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어느 곳도 평일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 강화도에 자전거를 싣고 오실 분들은 주차 걱정은 마시길...

 

자전거 주행은 순조로웠다. 오늘의 주요 목적 중 하나인 이건창생가를 깜박 놓친 것만 빼면 말이다. 지도상으로는 정수사 못미쳐서인데 정수사까지 가도 이정표가 없다. 중간에 내가 딴 생각하다가 놓친 것이 틀림없다. 한바퀴 돌고 나서 나중에 다시 오지 뭐,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의 우둔함을 달랬다. 동막 갯벌에는 토요일답게 수백명의 사람들이 와글거리는 모습이 도로에서 내려다보였다. 동막리를 지나니 꼬리에 꼬리를 물던 차량 통행도 눈에 띄게 줄어들어 주행 분위기가 좋아졌다. 이날 최고 기온이 31도가 넘는다더니 코스가 순탄한데도 날씨가 워낙 더운지라 땀이 비오듯 한다. 흥왕리까지 1시간을 달리고나서 배는 별로 안고프지만 체력 저하를 막기 위해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나를 유혹한 감나무집 간판 -양푼이비빔밥과 함께 토속적 메뉴들이 여럿 있다)

 

동막에서부터 줄을 서있는 해물칼국수 간판이 국수킬러인 나를 유혹했지만 찜통더위와 흐르는 땀이 더운 칼국수에 대한 습관적 탐닉을 물리쳤다. 시원한 콩국수를 파는 데는 없나 하고 계속 달리는데 그 간판은 안보이고 대신 내 눈길을 확 끌어당기는 간판 하나. ‘양푼이비빔밥’. 갑자기 입 안에 군침이 돌면서 그래, 오늘 점심은 저거다, 하는 결정이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졌다. <감나무집> 식당 마당에 자전차를 안전하게 주차해 놓고 ‘양푼이’를 주문해놓은 뒤 바로 화장실로 직행해서 세수부터 했다. 지하수인지 물이 너무 시원해서 열에 들뜬 머리와 얼굴에 자꾸자꾸 찬 물을 끼얹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나가서 먹은 양푼이는 너무 맛있어서 정말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정도였다. 자전거타기로 땀을 쫙 흘린 후에 먹는 음식이라 더 맛있었겠지.

  

오른쪽으로 마니산을 쳐다보며 다시 길을 나선다. 길가에는 참성단 올라가는 등산로 안내표지도 보였다. 저 산은 여러 번 올라가 본 산인데 이렇게 밑에서 쳐다보며 산을 한 바퀴 도는 기분도 괜찮았다. 이쪽 흥왕리 쪽에서 바라보니 산이 별로 높지 않고 덩치도 작게 보인다. 높이가 해발 469m이고 주위를 한바퀴 도는데 30km가 채 안되는 산이니 그럴 만도 하지만, 계단길을 피하고 길게 종주능선을 타면 제법 3~4시간 걸리는 좋은 등산코스가 있는 산이다. 해안도로에서 바라보는 왼편 바다 쪽은 대부분 농토이거나 아직 밀물이 들어오지 않은 갯벌이다. 멀리 보이는 곳까지 그러하니 이곳이 해안도로라는 사실이 잘 실감나지 않을 정도이다.

 

(흥왕리에서 올려다본 마니산 - 산 아래 오른쪽 건물이 흥왕리성당이다)

 

여차리까지는 작은 오름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적당한 운동코스였는데 여기서부터 강화갯벌센터 쪽으로 올라가는 고갯길이 제법 가파르고 길다. 오늘 내가 주행한 코스 중에 가장 힘든 고개였다. 그래도 갯벌센터 안내판 앞에서 한 번만 쉬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고개를 올랐다. 1년만의 고갯길이라 오를 수 있을까 걱정했더니 아직 다리 힘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나보다. 내리막길은 힘들게 고개를 오른 라이더들에게 최고의 보상이다. 휘파람을 불며 편안히 고개를 내려오는데 맞은편에서 자전거를 탄 동호인들이 올라온다. 오늘 처음보는 라이더들이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니 반가운 인사가 돌아온다. 아마 출발지가 강화대교쪽이고 섬을 거의 한바퀴 돌아오면 맞는 시간인지 이후에는 라이더들이 자주 보였다. 하지만 혼자 타는 솔로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고독하게 홀로 타는 자전거가 얼마나 멋지고 여유로운 일인지 이 분들은 잘 모르실거다. 나도 작년에 본의 아니게 남해안 길을 1주일가량 혼자 타보고 배운 즐거움이다.

 

석모도 안내 표지가 뜻하지 않게 고갯마루 위에 서있다. 이정표가 서있을 자리는 아닌데 싶어 자전차를 내려보니 과연 그 표지판에서 멀리 선수선착장이 잘 내려다 보인다. 길안내겸 일종의 풍경 포인트(scenic point)인 셈이다. 교동도는 가보았어도 석모도에는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지형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괜찮다면 언젠가 시간을 내서 석모도 자전거투어를 한번 해봐야겠다. 마니산의 북변쪽 길은 산기슭인데도 높낮이가 없이 순탄했다. 아까부터 브레이크 패드가 바퀴에 닿는 소리가 나서 화도면소재지인 상방리를 한바퀴 돌며 자전거가게를 찾아보았는데 없었다. 달리는데 큰 지장이 있는 건 아니라서 그냥 가기로 했다. 아마 바퀴를 뗏다 붙였다 하는 과정에서 조금 문제가 생긴 것같다.

 

 

상방리에서 쭉 동진하다보면 덕포리로 우회전하는 길이 나오는데 이 길이 마니산을 오롯이 한바퀴 돌아 사기리의 이건창생가와 만나는 길이다. 하지만 나는 그냥 직진하여 온수리로 향했다. 내 차가 서있는 전등사 주차장으로 바로 가는 길이다. 마니산 일주보다는 7~8km 정도 더 달리는 것같다. 주차장에 도착해 확인해보니 주행거리가 34km. 하룻길치고는 적게 달렸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야외로 나와 달린 여름 라이딩이라 이 정도에서 자제한 게 잘한 처사같다. 점심식사 시간을 포함해서 3시간 20분이 걸렸는데 자전거 주행시간만 치면 2시간 조금 더 걸렸다. 땀을 워낙 많이 흘려 이 짧은 시간 동안 물 2병과 포카리스웨트 한 병을 다 마셨다.

 

이건창생가까지는 4~5km 거리인데 한번 갔던 길을 또 달리기도 뭐해서 그냥 차로 가기로 했다. 막상 찾아가서 보니 생가 전방에 안내표지가 꽤 크게 붙어 있었는데 아까는 왜 못봤을까 싶다. 몇 시간 전에 이 근처를 지나면서 어디선가 구성진 섹스폰 소리가 들리길래 이 시골에서 누가 섹스폰을 불어댈까 하고 궁금증이 일었는데 거기에 정신이 팔려 그만 안내판을 놓친 것같다. 지금껏 그 악기소리가 들리는 것을 봐서는 인근의 식당에서 녹음테이프를 틀어놓은 건데 괜히 낭만적인 상상에 빠진 것이다.

 

선생의 생가는 생각보다 작고 초라했다. 병인양요 때 낙향해 있다 자결했다는 조부가 비록 천거에 의한 잠시 벼슬이지만 그래도 이조판서를 지냈고 부친도 벼슬을 했다는데 초가지붕의 생가는 마루를 가운데 두고 기역자 모양으로 이어진 작은 방 두 개와 부엌 한 칸이 전부였다. 집 뒤켠 언덕에는 조부의 묘소가 있었는데 잡풀로 무성해서 올라가볼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선생 본인도 고종의 특명으로 암행어사를 여러 차례 지낸 분인데 이 집안의 검박함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5대조부터 가학으로 이어왔다는 양명학이 끼친 영향인가?

 

 

(이건창선생 생가 전경 - 옥호인 명미당은 그의 호이다. 우물은 아직도 물을 길을 수 있다)

 

양명학은 16세기 중국 명나라 시대에 왕수인이 창안했는데 명말과 청조에 중국에서 주자학과 쌍벽을 이루는 유력한 학문으로 자리잡았다. 모든 진리가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심학(心學)을 제창한 바, 지행합일과 실천을 통한 양지(良知)와 천리의 일치, 발현을 수행의 목표로 삼았다. 궁극적으로는 만물과 타인과 나와의 귀일(歸一)을 주장하는 대동(大同)의 세계를 염원함으로써 양명학은 현실과 동떨어진 담론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의 개선을 향해 나아가는 실천의 학문으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원리가 그러니만큼 주자학이외에는 모두 사문난적으로 몰아 박멸한 조선 후기의 경직된 사회에서 양명학을 신봉한다는 것은 참으로 비처세적이고 위험하기까지한 노릇이었다. 다만 17세기 후반 조선 양명학의 태두인 하곡 정제두선생이 이곳 강화에 낙향하여 학문을 보존함으로써 명맥을 이어온 것이 이건창선생과 박은식선생 등에까지 이른 것이다. 오늘의 자전거 소풍은 이렇게 양명학을 다시 생각하며 끝을 맺는다.

출처 : 김영춘 BLOG
글쓴이 : 아차산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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