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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본사] 고대 (고분시대>아스카시대>나라시대>헤이안시대)

명호경영컨설턴트 2010. 5. 23. 20:27

고  대 고분시대>아스카시대>나라시대>헤이안시대

 
1.개  요
 계급과 국가의 발생이 가장 큰 특징. 금속기가 사용되고 생산수단의 사유화가 진행되었다. 고대사회의 유형은 크게 두가지. 토지의 공동소유를 기초로 지역적 통일국가를 형성한 아시아적 사회와 토지 사유가 진행되면서 국가가 형성되는 그리스·로마적 사회가 있다. 일본은 물론 아시아.
 일본의 고대는 3세기 경부터 12세기 말까지로 본다. 고분시대를 시작으로 아스카 시대와 나라 시대를 거쳐 헤이안 시대에 이어진다. 물론 7세기에 고대가 시작된다거나, 16세기에 끝난다고 하는 등 다른 견해도 있다.
 
 2.시  대
1)고분시대 
 (1)개요
 야요이 시대 이후 역사시대에 이르기까지. 4세기부터 7세기. 본격적인 농업생산이 이루어진 시기로 증대된 생산력을 기반으로하여 제사장 출신의 지배계급이 형성된다. 호족으로 성장한 이들은 지역사회를 지배하며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과 같은 대규모의 분묘를 조성. 그래서 고분시대라 한다. 이들은 점차 긴키(近畿)지방 즉, 오사카, 나라 중심의 호족아래에 편입되면서 고대국가를 형성해 간다. 물론 일본 열도 전체를 지배하는 통일국가는 아직 아득. 도래인들이 많이 건너 와 일본문화의 기틀을 형성하였다.
 
(2)주요사항
-전방후원분 : 앞 부분이 사각형으로 되어 있고 이어진 뒷부분이 원형의 봉분으로 일본에 특유한 형식의 고분이라고 한다. 실제로는 사각형 부분이 앞쪽인지 원형부분이 앞쪽인지도 명확하지는 않다. 매장시설은 대부분 원형부분에 만들어져 있지만 사각형 부분에 만들어진 것도 있고 새로운 것일수록 원형보다 사각형 부분이 더 크다고도 한다.
 어떤 학자들은 원형분과 방형분에 통로겸 제단인 돌출부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변모하여 전방후원분이 발생했을 것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숫적으로는 원형분이나 방형분보다 적지만 규모가 대단히 크다.
 대체적으로 전방후원분은 야마토 지역에서 처음 형성된 후 야마토 정권의 확대와 함께 세토 내해(瀨戶內海)를 중심으로 한 각지로 퍼져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거대한 규모 때문에 강력한 고대왕권의 확립을 말해주는 증거로 채택되기도 한다. 반대 견해도 있다. 내부의 매장시설도 비교적 간단하고 껴묻거리도 빈약할 뿐아니라 대부분 주술적 성격이 짙은 것들이어서 강력한 정치, 군사력의 성장보다는 샤먼적 권위의 비대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도래인(渡來人) : 1970년대부터 사용하게 된 조어. 그 전에는 귀화인(歸化人)이라고 했다. 주로 고분시대에 일본에 건너 온 사람들을 가리키지만 일본으로의 도래는 이전의 야요이 시대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다. 어느 일본인 학자에 의하면 7세기 말까지의 전체인구중 70-90%가 도래인이라고도 한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생각된다.
-천황(天皇) : 7세기 경부터 사용된 용어. 통수자의 뜻을 가진 '스메라미코토'라 읽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5,6세기에는 '대왕(大王)'이라 표기하고 '오키미'라 읽었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각지에 지역의 수장급에 해당하는 '왕(王)' 즉 '기미'들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2)아스카(飛鳥) 시대
 (1)개요
 쇼토쿠(聖德) 태자가 스이코(推古) 천황의 섭정이 된 593년부터 나라(奈良)의 헤이죠(平城)경으로 천도한 710년 까지. 좁은 의미로는 스이코 천황 때만을 가리킨다. 스이코 천황은 592년부터 628년 까지 재위. 고대국가의 기틀이 잡히고 불교가 전래되어 발전하였다. 문화상으로는 고분시대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2)주요사항
-스이코 천황 : 제33대 천황. 소가(蘇我) 씨의 딸로 30대 비다쓰(敏達) 천황의 황후가 되었으나 32대인 스슌(崇峻) 천황이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에 의해 살해된 후 천황으로 추대되었다. 쇼토쿠 태자를 섭정으로 하여 정치를 하게 했으며 아스카 시대를 열었다.
-쇼토쿠 태자 : 숙모인 스이코 천황이 즉위하자 20세의 나이로 섭정이 되었다. 그 후 약 30년간 일본의 정치를 좌우. 불교를 장려하여 국가의 정치이념으로 삼았으며 관위12계 제도를 시행하여 호족의 관료화를 추진하였다. 또 관리들이 지켜야 할 훈령을 담은 '헌법17조'를 공표하여 정치를 안정시키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수나라와 국교를 열어 선진 문화 수입에 노력하고 역사서도 편찬하였다고 한다. 일본 고대사상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인물로 사후에는 신격화되어 태자신앙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다이카(大化) 개신 : 645년에 시작된 정치개혁. 나카노오에(中大兄) 황자와 나카토미노 가마타리(中臣鎌足) 등이 주도하여 실권을 쥐고 있던 소가(蘇我) 씨를 멸망시켰다. 그 후 고토쿠(孝德) 천황이 즉위하여 사유지와 사유민의 폐지, 지방행정조직 정비 및 호적 작성, 조용조(租庸調)의 세제 시행 등을 선포하였다. 중앙집권적이고 관료제적인 지배체제를 확립하고자 한 것이다. 701년의 다이호(大보) 율령 제정으로 대체적인 완성을 이루었다고 보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정치개혁이 없었고 후일에 조작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다이호(大보) 율령 : 몸무(文武) 천황 때인 701년에 제정하여 702년부터 시행한 율령. 뎀무(天武) 천황이 제정한 아스카 기요미하라(飛鳥淨御原) 율령을 확대 정비한 것으로 중앙집권적 율령체제의 완성을 기한 것이라 보지만 전문은 전해지지 않는다.
 
 3)나라시대
 (1)개요
 헤이죠 경 즉, 나라(奈良)에 수도가 있던 시기. 710년부터 784년까지. 그 사이에도 잠깐씩 수도를 옮긴 적은 있었지만 모두 나라시대라 한다. 또 784년에 천도하여 794년까지 지속되었던 나가오카(長岡)경 시기도 나라시대에 포함시킨다. 결국 나라시대는 794년까지. 불교문화가 크게 발전하였다.
 
 (2)주요사항
-헤이죠 경(平城京) : 중국을 모방하여 만든 동서 6Km, 남북 4Km 정도의 도성. 현재의 나라 시 서쪽 일대로 겜메이(元明) 천황 때 수도가 되었다. 중앙을 남북으로 가로지른 주작대로(朱雀大路)에 의해 좌경(左京)과 우경(右京)으로 나누어지고, 다시 사방으로 뻗은 대로(大路)에 의해 84개의 방(坊)으로 구획되었다. 약 20만의 인구가 살았을 것으로 추정.
-후지와라(藤原) 씨 : 처음에는 나카토미(中臣) 씨라 하였으나 다이카 개신을 주도했던 나카토미노 가마타리(中臣鎌足)가 덴지(天智) 천황으로부터 '후지와라' 성(姓)을 하사 받았다. 그의 아들인 후히토(不比等)는 정권의 실세가 되어 다이호 율령의 제정, 헤이죠 경의 조성 등에 참여하였으며 딸을 황후로 들여 씨족 번영의 기틀을 쌓았다.
 그 후 후지와라 씨는 남(南),북(北),식(式),경(京)의 4대 가문으로 분가. 이중 북가(北家)가 주류가 되어 황실과 인척관계를 유지하며 권세를 누렸고, 섭정(攝政), 관백(關白), 태정대신(太政大臣) 등 중요한 지위를 독차지하여, 이른바 섭관정치(攝關政治)를 주도하였다. 한 때 세력이 쇠퇴하기도 하였으나 후지와라 씨는 에도 시대 말기까지 섭관으로서 권세를 유지하였다.
-나가야노오(長屋王)의 변 : 후지와라 씨 세도의 극치를 보여준 사건. 나가야노오는 뎀무천황의 손자이자 덴지천황의 외손자. 721년 우대신, 724년 좌대신에 올랐다. 그러나 후지와라 씨에 대항하다가 모함을 받아 천황의 명으로 가족과 함께 자결하였다. 후지와라 씨의 음모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뎀표(天平) 문화 : 나라 시대의 뎀표년간(729-749)을 중심으로 번영한 문화. 율령제와 당문화의 영향을 기반으로 발달하였으며, 당문화의 국제적 성격과 당시의 귀족적 색채가 잘 융합되어 독자적 문화가 형성되었다. 진호국가(鎭護國家) 사상이 유행하여 도다이 사(東大寺)를 비롯한 고쿠분 사 들이 건립되었으며 대규모의 사경(寫經)이 이루어졌다. 이와 함께 불상이나 불화(佛畵)의 제작, 사원 건축 등이 크게 발달하였다. 도다이 사의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상을 비롯한 많은 불상들이 대표적 작품이며 건축으로는 역시 도다이 사의 법화당과 호류 사의 몽전(夢殿) 등이 대표적이다.
 이 뿐만 아니라 가요집인 만요슈(萬葉集)와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 및 일본서기(日本書紀)가 이 때에 만들어 졌으며, 지지(地誌)인 풍토기(風土記)도 이 시기에 성립되었다. 이 시기는 일본 고유문화의 성립기로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고쿠분 사(國分寺) : 국가에서 각 지역별로 설치한 관립사원. 나라 불교의 전성을 보여주는 제도이다. 쇼무(聖武) 천황에 의해 각 지역의 관청 소재지에 설치되었으며 770년대까지는 거의 전국에 걸쳐 완성. 불교의 호국사상을 중앙집권 강화에 이용하고자 한 것으로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가 지급되었다. 10세기 이후 쇠퇴.
-도다이 사(東大寺) : 나라에 조영된 총 고쿠분사. 745년 쇼무 천황에 의해 창건. 일부는 수차에 걸쳐 재건되었다. 도다이 사를 대표하는 것은 세계 최대의 목조 건축이라는 대불전과 그 안에 모셔진 대불. 대불전은 높이 47미터, 동서 길이 57미터에 이르는데 이것도 18세기 초 재건할 때 동서 길이를 2/3로 축소한 것이라 한다.
 대불 또한 세계 최대의 금동불. 높이 약 16미터, 무게 380톤으로 머리 부분은 17세기에, 오른손은 16세기 후반에 다시 주조하였다고 한다. 그 밖에도 도다이 사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정창원(正倉院)을 비롯, 삼월당(三月堂), 남대문(南大門) 등 많은 건축물이 남아 있다.
-나가오카 경(長岡京) : 감무(桓武) 천황이 민심의 환기를 위해 784년부터 천도하여 조영하기 시작. 지금의 교토부 나가오카쿄 시(長岡京市)와 그 주변 일대에 해당된다. 그러나 천도계획의 주도자였던 후지와라노 다네쓰구(藤原種繼)가 암살되고, 이에 연루된 것으로 간주되어 유배된 사와라(早良) 친왕의 사망 등 흉흉한 일이 이어지자, 조영을 중지하고 794년 헤이안 경(平安京)으로 천도하였다.
 
 4)헤이안 시대
 (1)개요
 헤이안(平安) 즉, 오늘의 교토로 천도한 794년부터 가마쿠라(鎌倉) 막부가 설치된 1185년 까지. 가마쿠라 막부가 언제 성립된 것으로 보는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1180년이나 1183년으로 보는 설도 있다.
 
 (2)주요사항
-관백(關白) : 천황을 보좌하는 직책. 천황이 어릴 때에는 섭정(攝政)이라고 한다. 헤이안 시대 중기 후지와라노 모토쓰네(藤原基經)로부터 시작되었다. 일시 중지되기도 하였으나 다시 부활하여 1867년 왕정이 복고될 때 까지 존속. 후지와라 씨가 맡는 것이 관례였으며 천황보다 먼저 소장(訴狀)이나 문서를 받아보는 등 권한이 막강하였다.
-원정(院政) : 황위에서 물러난 상황(上皇)이 정치를 맡아보는 형태. 1086년 시라가와(白河) 상황으로부터 시작되어 1840년 까지 계속되었다. 후지와라 씨의 섭관(攝關) 정치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원청에서 나오는 명령은 천황의 조칙과 같이 중시되었다.
-헤이(平) 씨 : 황족의 사성을(賜姓)을 받은 호족. 감무천황으로부터 사성을 받은 감무 헤이 씨(桓武平氏)가 대표적. 황실의 외척으로서 한때 상황의 원정(院政)을 폐지할 만큼 막강한 권세를 자랑하였다. 겐(源) 씨와의 세력다툼에서 패하여 쇠퇴.
-겐(源) 씨 : 황족 사성의 하나. 특히 세이와(淸和) 천황으로부터 받은 세이와 겐 씨가 유명하다. 헤이(平) 씨를 누르고 가마쿠라 막부를 세웠다.
출처 : 니홍고닷컴
글쓴이 : 양박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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