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정비결
송 광 호
년 초가 되면 으레 심심풀이로 다가올 한 해를 새로 맞으며 미지의 길흉화복을 점쳐보는 토정비결을 보는 는 게 년 례 행사였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빡빡머리 고교시절 때 웬 지 어떤 특출한 영감을 가진 점술가나 되는 듯 일년간 신수를 점쳐보는 토정비결 그리고 손금과 관상에 대해 각별한 관심으로 심취해 있었다.
토정비결은 태어난 해와 월 일 그리고 시간을 말하는 소위 사주를 기본으로 하는데 48개의 괘가 있다. 토정비결은 조선조 이지함 선생의 글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이지함 선생이 직접 쓴 것인지는 정확치 않다고 한다. 다만 토정비결은 주역의 음양설에 기초하여 구성되었으나 태어난 연월일시 소위 사주를 갖고 풀어가는 64괘를 갖고 있는 주역과는 달리 태어난 연월일만으로 상중하 3괘를 만드는 것이 형식적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주역(周易)이 인간의 수명과 덕행을 중심으로 괘사가 꾸며져 있는 것과는 달리 토정비결(土亭秘訣)은 인간의 길흉화복을 중심으로 괘사가 꾸며져 있는 것이 근본적인 차이이며 토정비결은 이러한 구성을 바탕으로 월별의 길흉을 모두 6,480구로 풀어놓고 있다. 또한 인생을 사는 동안 다가오는 미래를 예측하는 사주와는 달리 토정비결은 한 해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또 조심해야 하는 방편들을 알려주는 정도로 사주에 비하여 훨씬 가벼운 수준의 심심풀이 운세이다.
토정비결이 아무리 년 초에 보는 풍속이었다 해도 열일곱 풋풋한 나이에 토정비결 책을 사서 들여다보며 좌정을 하고 앉아 식구들을 모아놓고 사주를 적어가며 운수가 좋으니 나쁘니 하면서 온갖 황당한 괘를 풀어놓곤 했으니 참으로 우스운 일이었다. 하지만 현대판 고스톱의 원조인 48장 화투로 점쳐보는 소위 <재수 떼기>란 것처럼 그 당시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소박하게 유행하던 일종의 신년 문화려니 하고 생각하면 지나간 시절이 아련한 추억으로 새롭다.
설날 특집으로 <학생 관람가>라는 영화포스터가 붙는 날이면 영화관에 미어지던 관객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발끝을 고추 세우고 흥미진진하게 보던 흑백의 대한늬우스....그 뉘우스 시작에 등장하던 흑백 태극기와 애국가 그리고 뭔가 관객을 교양시키려는 목소리로 열을 올리던 남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옛것에 대한 향수란 이런 것인가 보다.
요즘 일반 서민들은 년 초에 보는 토정비결을 대체로 편리한 인터넷으로 본다. 인터넷으로 보는 토정비결은 매우 편리하지만 40년 전 길거리에서 돋보기를 쓴 할아버지와 마주앉아 보던 그것과는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얼마 전에 길거리에 나가보니 토정비결을 봐주는 가게는 볼 수 가 없었고 서양에서 들어온 점술이라는 타로점(Tarot)을 봐주는 가게 앞에 젊은 여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장면을 보았다. 특이한 것은 이 타로점을 봐주는 점집 주인이 토정비결을 봐주던 노인 세대가 아닌 매우 젊은 세대란 것이다.
토정비결이 동양 점술이라고 한다면 타로점은 서양 점술로 구분되는데 여러 가지 그림이 그려진 22장의 메이저와 56개의 마이너 카드 중에서 몇 개를 뽑아 점을 치며 하루에 한 번, 그리고 특징적인 한 가지에 대해서만 점을 볼 수 있다는 게 특징이라고 한다. 시대가 변한 만큼 세태도 많이 변화되었다. 하지만 나는 나이 탓이긴 하겠지만 웬지 우리 정서에 다소 어색한 타로점 보다는 매년 재미삼아 우리 것인 토정비결을 본다. 컴퓨터 기술의 발전으로 토정비결 내용을 파일에 저장해 놓을 수 도 있고 프린트로 인쇄해서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보지만 아무리 기대가되는 좋은 운수라도 매년 딱히 들어맞는 게 없는지라 년 초의 설레였던 심정과는 사뭇 달라 매우 씁쓸한 마음이 든다.
매년 다가오는 새해 365일의 미래를 6,480괘로 예측하는 토정비결에 의존 할 수 만 있다면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고민하고 부대끼고 살 이유가 없다. 금년 말이면 70억을 넘는다는 지구촌의 인구가 제각기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면 인간사의 길흉화복을 단지 6,480괘로 분류한 이지함 선생의 토정비결은 한계가 있는 운세 이론임이 분명해진다. 하지만 우리가 불확실한 미래를 맞이하면서 1년에 한번 정도 애정, 시험, 승진, 이사, 그리고 사업 운 등 새해 운세의 흐름을 짚어보는 토정비결은 송구영신의 의미로 옛 풍속을 지켜간다는 정도로 가볍게 본다면 다른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정답이 딱히 하나가 아닌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개개인의 사는 목적과 방식이 모두 다르기에 우리는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만큼 인생을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은 제각기 아름다운 것이며 나름대로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궁굼 해 하는 길흉화복은 모두 우리들의 마음가짐과 처신에 달려있다. 올해도 서쪽에서 귀인이 찾아와 나에게 많은 재물과 행운을 준다고 하니 자못 기대가된다. 신묘년 365일을 긍정의 힘으로 살아야겠다.
'이야기테크 > 책방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송광호] 나의 어머니 (0) | 2011.10.03 |
---|---|
[스크랩] [송광호] 법 없이도 사는 부처님 (0) | 2011.10.03 |
23가지 마음의 질병, 제대로 알고 대처하는 법 (0) | 2011.08.22 |
[스크랩] 금리만 알아도 경제가 보인다 (0) | 2011.07.12 |
[스크랩] 히든 커뮤니케이션 (0) | 2011.0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