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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송광호] 나의 어머니

명호경영컨설턴트 2011. 10. 3. 19:37

 

나의 어머니

 

송 광 호

 

저녁엔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잠들지만 새벽녘에 제법 썰렁한 기온이 느껴지니 이제는 얇은 이불이라도 덮어야겠다.

중복과 말복이 보내며 35도를 오르내리던 무더운 여름을 잘 버티시던 어머니께서 며칠 전 기운을 잃으시더니 기어코 자리에 누우셨다. 그리곤 20년 가까이 다니신 동네의 작은 단골 의원에서 비타민이 들어간 두 병의 닝겔과 혈장으로 채워진 고농도 영양제를 맞으시고야 거센 폭풍이 지나간 후 살며시 피어나는 야생화처럼 그렇게 일어나셨다.

이제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아흔을 넘기신 내 어머니의 인생여정을 통해 인간에게 부여된 생명의 애틋함과 소중함 그리고 그 무엇과도 비교 할 수 없는 생명의 경이로움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어머니는 주민등록증과는 다르게 실제로 1919년 무더운 여름에 가평의 광산 탁씨의 큰 딸로 태어나셨다. 그런 어머니께서 열여섯 되던 해 세살이 위신 아버지께로 시집 오셔서 1년 후인 열일곱 살에 큰아들을 낳으셨고 1960년에 8남매의 막내인 내 여동생을 낳으시기까지 24년간 모두 12명의 자식을 낳으셨다. 소위 어떠한 형태로든 인공적인 방법으로 산아제한을 하지 않고 년 년생으로 출산한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1950년에 발발한 6.25전쟁을 전후로 고마고마한 네 명의 어린 자식을 잃으셨다. 지금 살아계신 큰 누님과 둘째 누님 밑으로 두 명의 아들과 두 명의 딸을 피난시절을 전후해 마마라는 병으로 잃었다고 한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1953년 휴전협정이 체결된 직후부터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자식을 또 다시 낳으신 것이다. 6.25전쟁 피난전후에 잃은 두 명의 아들과 두 명의 딸이 전쟁이 끝나고 나서 약속이나 한 듯 순서대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것은 분명 하늘이 내려주신 설명할 수 없는 신비스런 생명의 회복이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왔다가는 것이 어디 인간뿐이랴. 생명을 갖고 태어난 만물은 어떤 이유로든 피해 갈 수 없는 생성과 소멸의 여정을 갖는다. 그것이 부모와 자식간이던 형제와 자매간이던 부부 사이던 이 땅에 왔으면 반드시 돌아가는 반환점을 거치게 된다. 하지만 엄마의 뱃속에서 열 달을 기다려 이 세상에 태어나는 새로운 생명과 마주할 때 느낌은 참으로 신비하고 경이롭다.

하지만 이런 신비하고 경이로운 생명체도 언젠가는 각자의 수명을 다하고 흙으로 돌아간다. 27년 전에 병환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는 사주팔자를 잘 본다는 어떤 노인의 예언대로 자신이 늘 87세까지 는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셨지만 결국 예순 여덟 번째 맞는 추석을 지낸 어느 일요일 11시 미사를 알리는 성당종소리를 들으시며 숙환으로 눈을 감으셨다.

어머니께서 바람 앞에 꺼져가는 촛불 같아 임종 환자에게 주는 종부성사까지 받으시고도 들녘 에 핀 야생화처럼 다시 일어나는 기적 같은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런 어머니는 감히 나를 낳아주신 단순한 어머니이기 전에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축복으로 내려주신 소중한 한 생명체로서 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러기에 새로 태어나는 생명의 경이로움처럼 언젠가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실 내 어머니의 소천은 그야말로 잊을 수 없는 경이로운 감동으로 내게 남을 것임을 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이 그의 손에 의해 거두어지니 이는 슬픈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것보다도 아름다운 자연의 섭리요, 진정한 평화요, 영원한 안식으로 가는 축복의 여정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들어 자주 어느 날이 될지 모르지만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는 내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그리곤 어머니와 영영 헤어질 때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도 해본다. 당신의 임종을 지켜보는 나에게 어머니는 “아들아, 울지 마라, 내 생명을 주신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이니 웃는 얼굴로 나를 보내주렴. 그리고 그동안 어미가 널 더 많이 사랑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 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유언하셨듯이 이 어미도 네 밑의 동생이 제일 걱정이다. 네가 내 대신 잘 보살피며 살아다오, 내 마지막 부탁이다....어디 보리방석처럼 잘 생긴 내 새끼 얼굴 좀 만져보자”며 내 손을 꼭 잡으시고 운명하실 것이다.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작별을 상상했을 뿐인데도 바보 같은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다.

 

어머니는 매주 토요일 저녁 7시에 시작하는 성당 미사 참석을 위해 언제나 50년째 운영하시는 당신의 가게를 일찍 닫으셨다. 오후 7시 미사에 참석하려면 일주일 동안 지은 죄를 고백하는 고회 성사란 걸 봐야하므로 3~40분전에 성당 안에 도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오후 5시 30분쯤에 성당에 일찍 들어가 언제나 앉으시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야 마음이 편하시다 며 한 번도 성당 미사를 빠지지 않으셨으므로 나는 그런 어머니가 심히 고집스럽게 보여 많은 걱정을 했다.

 

만약 어머니께서 어느 날 스스로 하늘나라로 떠날 때가 되었다며 우리 8남매를 불러 모으신다면 어머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100년 가깝게 살아오신 이승을 떠나시는 어머니를 끌어안고 메어지는 슬픔으로 대성통곡 하는 것이 아닐 것 같다. 50년이 넘도록 당신께서 그토록 지극정성으로 염원하셨던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가시니 차라리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는 따듯한 환송이 더 나을 듯싶다. 이 세상에 영원한 물질은 없어도 사랑으로 충만한 영혼이 있음을 나는 믿는다. 어머니는 우리들의 영원한 고향이며 사랑이다. 엄마의 따듯한 손을 잡고 흰눈이 내린 시골길을 따라 걷던 어릴 적 추억이 새로워진다.

출처 : 토지문학회
글쓴이 : 박현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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