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티지’의 구성
‘프레스티지’는 전작 ‘메멘토’의 편집기술을 생각나게 할 만큼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 중 가장 ‘메멘토’와 근접한 거리에 있다. 특히, 단절된 시간과 공간의 교합을 뒤엉켜진 플롯으로 더욱 난해하고 교묘하게 배치했다. ‘내보이는 거짓’과 ‘숨겨진 진실’이라는 트릭을 편집의 기술로 사용한 ‘크리스토퍼 놀란’은 단지, 마술을 영화 소재만으로 선택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오프닝에 친절히 명시되어있듯 이 영화의 전체적인 구성은 마술과 닮아있다. 즉, 두 캐릭터간의 마술대결의 시작과 끝이라는 연대기를 1단계 ‘검증’, 2단계 ‘변화’, 3단계 ‘창조’에 치환해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불리어도 된다면,) 영화 ‘프레스티지’는 ‘펄롱’과 ‘로버트’, ‘알프레드’와 ‘복제-알프레드(혹은 가짜-알프레드)’, ‘마술과 영화’라는 2인 1각 경기이다. 하나로 수렴된 공통성질 (그것이 외모이든 유전자이든 구성방식이든 간에)을 이용한 혼란은 관객들에게 진실과 거짓 양면을 내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인 점은 이 혼란이 몇 가지의 구조를 띄고 있으므로 ‘카오스’가 아닌 ‘코스모스’라는 것이다.
우선, 영화의 전체를 훑어보자면 ‘로버트’의 부인의 죽음이 전환점 1, ‘로버트’가 복제기계를 이용하여 순간이동마술을 성공시키는 지점이 전환점 2가 될 것이다. 또한, ‘알프레드’의 순간이동이 등장하고 나서 영화가 직접적으로 ‘로버트’와 ‘알프레드‘의 대결형식을 띄게 되었기 때문에 이 부분을 미드 포인트로 잡을 수 있다. 이 영화는 사실 현재와, 과거, 과거의 플래시백들이 주를 이루며 서로 얽혀있다는 점이 가장 흥미로우며 가장 중요한 구성이다. 현재의 씬인 엔딩 씬, 대과거 씬인 ’로버트‘와 그의 부인, ’알프레드‘가 수중 탈출 마술 공연을 하는 씬을 양극으로 놓은 채, 나머지 씬들을 시간 순서대로 끼어 맞추게 되면 이야기를 이해하는 게 수월해진다. 영화 속 짧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알프레드‘ 혹은 ’로버트‘가 서로의 다이어리를 읽고 있는 씬들은 사실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인서트 씬이라 생각되기 쉽지만 각자의 연대기의 흐름을 잡을 수 있는 포인트가 되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 이 다이어리를 읽는 씬의 전 혹은 후에는 꼭 플래시백이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영화를 이해하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트릭이 등장한다. 즉, 감옥에서 다이어리를 읽는 알프레드 다음 씬에 ’콜로라도‘에서 다이어리를 읽는 ’로버트‘를 병치시킴으로써 둘이 동시간대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만든 것이다. 사실 , 영화 속 등장하는 거의 모든 플래시백은 (영화 중후반부터는 누구의 다이어리에 명시된 플래시백인지 확실한 구분이 되지 않는 씬이 있다. 예를 들면, ’로버트‘의 다이어리를 ’알프레드‘가 읽는 플래시백 중에, ’로버트‘가 알프레드의 공간 이동 마술을 보고 시샘하는 장면에서 잠깐 삽입된 ’알프레드‘가 그의 아내에게 집을 선물하는 씬이 있는데 사실 이 부분은 ’로버트‘가 알 수 없는 행위이므로 등장하지 않아야 함이 옳다) 다이어리에 적혀있는 마술의 비밀이 아닌 상대방의 시간을 확보하는 구성방법이다. 이는, 영화를 풍부하게 확장시키는 것처럼 가시화되지만 영화를 복잡하게 만드는 거대한 트릭인 셈이다. 이 거대한 트릭과 맞물려 전복의 상징인 ’의도화된 다이어리‘는 두 연대기를 오고가며 영화를 진행해나간다. 첫 번째 전환점인 ’로버트 아내의 죽음‘이후 ’알프레드‘와 ’로버트‘는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병치 기법을 쓰며 동시에 대립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그래서 ’로버트‘는 콜로라도에 있는 것으로 시작되며, ’알프레드‘는 그의 아내인 ’새라‘를 만나는 씬부터 대립지점에 놓는 것이 편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영화 씬은 이 두 연대기의 흐름을 따르되 동일하게 붙여지지 않고 x자를 이루며 교차해 있기 때문이다. 마치 운동화의 신발 끈을 맬 때와 똑같은 원리이다. 단, 너무 단순하게 보일 수 있기에 그나마 현재와 가까운 시간대인, 감옥에 갇힌 ’알프레드‘의 연대기를 보여줌으로써 그 원리를 조금씩 비틀어나가고 있다.
‘프레스티지’는 강한 상징을 띄고 있는 새와 새장, 감옥과 물탱크, 고무공과 총을 필두로 두 남성의 대립-이미지로 등장시키고 있다. 특히 이 이미지들은 희생과 그에 따른 죽음의 전조를 나타내어 이 영화의 전체적인 어두운 분위기와 승리를 위한 욕망에 적절하게 배분되어있다. 이런 두 이미지의 대립뿐 아니라 영화는 거시적 측면에서 오프닝시퀀스와 엔딩시퀀스가 수미쌍관구조를 이루고 있다. 전자와 후자의 시퀀스는 동일한 컷에서 이루어져있으나 명백히 다른 의도를 보이고 있다. 아무정보도 갖지 않은 채 시작하는 오프닝 시퀀스를 본다면 단순히 영화의 소재인 마술의 단계를 알려주려는 설정 샷으로 생각되지만, 영화의 모든 정보를 접한 뒤 보게 되는 엔딩 시퀀스는 마치 새장위에 덮여진 천만큼 교묘한 트릭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재 반복을 통하여 숨겨져 있는 진실을 내보이는 트릭은 ‘올리비아’가 ‘알프레드’를 찾아가 ‘로버트’를 배신하는 장면에서도 그대로 쓰이고 있다. 이런 구성은 이 영화의 진실과 거짓을 전환시키는 도구로, 미시적인 ‘속임수’(마술)부터 거시적인 ‘전복’(다어어리)까지를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영화와 마술이 진실과 거짓이란 유사점으로 칵테일처럼 섞여있다는 점이 아니라 그 믿을 수 없는 ‘다이어리’를 플래시백으로 놓고 있다는 점이다. 나레이션으로 읽히다 장면으로 시각화 되는 과거의 행위는 진실인가, 그것 역시 ‘로버트’와 ‘알프레드’의 왜곡된 기억의 창작물인 것도 아닌 것도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맥거핀’으로 사용된 다이어리를 마치 그들의 진실된 과거마냥 그려내고 있는 이들의 연대기가 교합이 그래서 흥미롭다. 그저 그들이 ‘진실 된 맥거핀’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을 믿었을 때야만 이 영화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다이어리들이 모두 진실이어야만 이 영화가 타당성을 갖게 됨은 당연하나, 뭔가 수를 잘 못 놓은 느낌이 들어 석연치 않다.
(2007)
'세상테크 > 영화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저주받은 자들 La Caduta degli dei, 1969 (0) | 2008.09.04 |
---|---|
[스크랩] 폭력의 역사 A History of Violence, 2005 (0) | 2008.09.04 |
[스크랩] <양산도>와<이어도>를 중심으로 환상양식으로 나타나는 여성의 욕망실현 (0) | 2008.09.04 |
[스크랩] 강박관념 Ossessione, 1943 (0) | 2008.09.04 |
[스크랩] 흔들리는 대지 La Terra trema: Episodio del mare, 1947 (0) | 2008.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