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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내가 사랑한 감독, 바다의 평온과 광기를 닮은 `프랑소와 오종`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9. 4. 11:18

 

 

 

 

 

뒤돌아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취향과 존경하는 감독은 거의 일치된다. 그들의 영화가 마치 그들의 성향이라는 듯 내 안에 잠재되어있기 때문일지는 모르나, '프랑소와 오종'은 나에게 있어 중요한 자리에 선 감독임은 확실하다. 아무 인식없이 '프랑소와 오종'의 영화에 끌렸던 것은 그저 나의 한때 별명인 이름과 같아서였는지도 모른다. (참고로, 나의 이름은 수아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의 영화를 접하게 된 이유가 까뜨린느 브레이야의 '로망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고 그 이후 '팻걸'과 '섹스이즈 코메디'로 점차 물 익어갈때였다. (물론 '섹스이즈 코메디'는 오종의 영화를 겪은 후 보았던 경우다.) '스위밍 풀'이라는 스릴러 장르로 몇년 전쯤 우리나라를 찾아왔을때 '프랑소와 오종'은 나의 성적코드와 스릴에 맞는 장르로 나를 간지럽혔다. 아마도 '까뜨린느 브레이야'의 '프랑스'라는 고정되고도 유동적인(어쩌면 퇴폐적인) 성문화를 많이 닮았다고 느껴서 였을지는 몰라도 '새롭지만 가까운 경험과 충동'을 느끼게 해주었다. 여성이라면 한번쯤 느껴봤을 법한 '열등심', 나이를 한살한살 먹어가면서 사라지는 자신감들이 보편여성이었기때문에 타당하다 생각되서 였을지는 모르나, 우선 그 울렁이는 '물'자체가 마음에 들었(기때문일까?)다. 제목에서부터 '물'은 파란듯 하얗고 얕은 듯 깊지만 어둡고 침울하기까지 온갖 경험을 밑바탕으로 깔수있는 대상이였으며 그 자체가 고정된 장소인 '수영장'이라는 것에 국한되어 유동적이지 못한다는 것에 있어 불편함까지 가져다 주었다. 사실, 젊은 여성/늙은 여성을 대조하기 용이한것은 외형적인 성적쾌락을 주느냐 하는 것이라 생각되는 나에게 '프랑소와 오종'에서 펼쳐지는 성적문화는 '야하다'보다는 '위험하다'라는 느낌을 받게했다. 뭐, 관음증적 시선으로 보았으니 당연히 그랬을지는 모르나. 어찌보면 당연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를 '미스터리'로 '스릴러'로 풀어가면서 '성적유희'로 놀아나는 것이 '프랑소와 오종'이라는 이름을 내 자신에 저장시켰던 것같다. 아, 이 감독은 딱 이런 성향이군. 하면서. 그는 감독이라기 보다 관객입장에 서서 카메라를 돌리듯, 캐릭터들을 우리에게 끌여다 주지만 영화의 엔딩 부분쯤 와서는 다시 감독의 자리에 서서 그의 이야기를 보여주려는 노련한 심리 게임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스레) 나는 이 영화에 반했고, 많은 사라들이 부르듯 ,'프랑소와 오종'을 마치 광기어린 히치콕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 다음 접한 영화는 '스위밍 풀'보다 전년에 만들어졌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후에 개봉된 '8명의 여인들'이었다. 이번에는 어떤 광기적 성유희와 팽팽한 스릴러를 보여줄까 학수고대하던 나에게 뜻밖에도 이 영화에는 '물'이 등장하지 않으며 마치 크리스마스용처럼 보였다.물론 은근한 '동성애'와 함께 '근친상간'을 둘러싼 스릴러였지만! 그녀들의 재치있는 입담과 웃음과 뮤지컬은 폭설에 갇혀도 기쁠만큼 사랑스러웠다.사실 영화 중간마다 그것도 드라마 형식으로 진행되다가 '뮤지컬'로 극을 마치거나 다시 이어받는 행위는 우리나라에서 접하지 못할 형식이었고 (뮤지컬 형식은 아마도 그의 '워터 드롭스 온 버닝 락'에서 되살아난게 아닌가싶다.) 그러한 분위기게 휩쓸리기까지 어느정도의 시간이 걸렸지만 이것은 '프랑소와 오종'의 유쾌버젼이라는 생각이 역력할 정도의 긴장감 있는 범죄 뮤지컬임을 상기시키며 나름대로 즐겼던 것 같다. 언제나 소재좋고 여성들을 중심으로 그들만의 갈등으로 골때리는 문제를 가득안고 나를 반기는 '프랑소와 오종' 그 자체랄까. 개성있는 캐릭터들을 다루는 솜씨나 그들을 이용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그 만의 색다른 스릴러로 이끌기 충분했다고 본다.'8명의 여인들'을 본 이후 오랜시간이 지난 후 나는 그의 단편인 '진실 혹은 대담'을 보게되었는데, 4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그의 광기어린 시선이 번듯 느껴진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까 다시 돌아간 것이다. 아기자기했던 유쾌스릴러극에서 색채부터 침울한 그의 성적유희로. 이 단편은 '진실 혹은 대담'이라는 게임을 주고받는 사춘기 소년소녀들의 이야기다. 언제나 그렇듯 엔딩을 충격적인 영상과 함께 선사하는 '그'가 4분안에서도 존재한다. 이성의 성 영역을 넘나들면서 벌칙을 내세우는 청소년들은 게임을 이어가면서 강도를 높인다. 그렇게 게임은 점점 더 문란하게 변질되어 가고. 어느 소녀가 벌칙을 수행하는 마지막 장면. 모든 것은 멈추고. 손가락을 비춘다. (남자의 손가락이었는지 여성의 손가락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손가락에 비춘 것은 피였다. 첫 생리를 의미하는 피가 묻어난다. 그렇게 그들이 이성과의 성인식을 시작하는 듯 끝내는 듯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야말로 과감한 내용과 충격적인 영상. 이 단편조차 내가 공감하는 '그'의 영화성향에 살이 되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보게 된 것이 그의 처녀작인 '바다를 보라'였는데 런닝 타임은 한시간이 채 되지않았으나!! 이 작품은 단편인 '진실 혹은 대담'보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영화였다. 어쩜, 젠틀하고 맑게 웃는 그에게서 이러한 (말그대로) 퇴폐적인 영화가 나올까. 의문이 될 정도니, 이제 그의 영화에서 '더이상'의 상상수위는 없을 법했다.일본영화 '오디션'처럼 '바다를 보라'도 어느 한적한 모녀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풀어낸다.한 바닷가 근처에 살고있는 평범한 주부에게 일어나는 일탈적인 사건이라고해야할까?대부분 프랑스 영화에서는 바다가 많이 나오지만 '프랑소와 오종'의 영화에서'바다'란 주연을 맡을 정도의 비중있는 부분이라 생각된다.그래서 그의 페르소나를 '바다'라 칭하면 '바다를 보라'에서의 '바다'장면은 첫 시도에 가깝다.모녀가 바다에서 놀고있는 모습은 이후 그의 영화에서 치환되어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가롭지만 어떻게 보면 일상을 지루하게 보내는 그녀에게 무전여행을 하게 되는 한 여성이 다가온다. 물론 그녀는 처음 받아들이기 꺼려하지만 개방적이고 털털한 모습에 이끌려 친구가 된다. 이렇게 초반과 중반까지는 두 여성이 친구가 되는 에피소드를 그리지만 드라마보다 스릴러에 가까운 역동성을 지닌채 엔딩으로 몰고간다.그래서였을까, 엔딩을 그나마 받아들이기 쉽게 된 부분은 중간중간의 치욕적인 부분이 존재했기때문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똥을 칫솔에 묻힌다거나!) 그러나 엔딩 부분은 표면적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도입부에서 이런 저런 설명을 했으니 그 감성을 이끌어 캐릭터의 심정을  머리속에 그려보아라" 하는 듯하게 진행된다. 다시 말해 교묘하게 보여주는 행위가 관객이 판단하고 상상하시오 라는 식은, 직접적인 것보다 자극적임이 확실하다. 아니, 자극을 넘는 잔혹사랄까.내용은 한마디로 한 여성이 아이에 집착을 하여 한 여성을 죽이는 것에 대한 스토리이다. 하지만 죽이는 과정자체가 생략됨에도 불구하고 소름이 끼칠만큼 잔인한 상상을 자연스럽게유도해내는 부분이 더욱 참혹하게 여겨졌다.  텐트안에 웅크려 봉투안에 디민채 죽어있는 여성은 죽어있는 피덩이,  태아 그자체로 보여질 정도이기때문이다. (이 엔딩은 정말 보아야 이해를 한다!) 이러한 퇴폐성과 잔혹사를 다루고 있는 영상은 그대로 꺼내도 신선할만큼 뇌리속에 저장되어있을 정도다. 이러한 부분이 그가 왜 도덕성을 실험하는 악동인지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광기어린 한 여성이 집착을하고 적나라한 행동을 보여주는 것은 성난 파도와 같은 '프랑소와 오종'의 한 작품 그대로였던 것이다.

  

충격적인 그의 도덕성결핍범죄에 대해 이제는 중독이 되어 갈구할만큼 전작들(과 같은 범작)을 원할 정도가 되어버린 작년 어느날, 유럽영화제에서 선보였던 작품들은 놀라리만큼 NOMAL했다는 것이 (그의 전작을 대조해보았을때 내용적으로만 따져서) 또 한번 나를 강타했다. 우선 '5X2'는 제목만큼이나! 그리고 그의 포스터에서 보여주었던 '바다'만큼이나 나를 다시 들뜨게 만들었는데. (제목이 특이하니까!)

형식면으로 보았을때 현재에서 과거로 뒤집어 돌아가는 다섯번의 플래시백으로 시작과 마감을 한다는 것과 내용면으로 보았을때 몽환적인 환상이나 퇴폐적인 범죄가 아닌, 어찌보면 현실문제에 더욱 가까워졌다는 것이 그의 전작과 너무나도 달라진 부분이었다. 그것도 결혼과 사랑이라니! 그것도 (따져보면 평범한) 남성과 여성의 사랑이라니! 사실 그의 영화는 모든 커플들이 나온다. 그것이 동성애자이든 양성애자이든 이성애자이든 상관없이, 그들의 사랑과정과 방법에대한 이야기를 어떤 방식이든지 풀어나갔다. 그러나 (적어도) 그의 전작에서 이렇게 평범한 스토리는 없었다. 그래서 영화5X2'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더 특이하다고 생각될만도했다.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영화는 내용상 별다른 차이를 두지않는다. 이혼한 부부가 섹스아닌 강간을 한다에서 시작해서 그들이 처음 만났던 그때로 돌아가는 스토리.제목처럼 다섯번의 나뉜 내용을 두 사람의 관계에서 그린 영화.그들이 현재 불행하기전까지 어떻게 사랑을 했으며 결혼을 했고 출산을 했었는가.'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했지만 누구나 불행했었다.' 를 그리는 듯한 인생관을 보여주는 듯한 영화.그래서 마지막 노을이 지는 해변가의 롱테이크는 더욱 아름다워보이기만 했던 것 같지만..그러나 여기에 그치지않고 다음 작품인 '타임 투 리브'는 인생에 대해 더욱 성찰적이고 사색적인 '프랑소와 오종'을 보여주었다.사실 나는 '5X2'다음으로는 그의 영화 표본인 퇴폐범죄영화가 나올거라 예상했었다.(왜, 이와이 슈운지도 번갈아 가며 제작하지않는가, 백과 흑의 모습을!)그러나 결혼과 사랑을 다룬 '5X2'보다 확장해서 들어가 죽음을 앞둔 게이남성(그냥 인간이라 칭하고 싶지만 캐릭터의 성향임)의 인생에 대한 고뇌를 '타임 투 리브'에서는 진지하게 다루고있다.시한부라는 수식어가 적절이 잘 어울리는 그는 언급했던 성향대로 '게이'이지만 영화상 그가 '게이'임은 중요치않다. 그저 그가 죽기전에 무엇을 하는가. 다시말해 무엇을 남기는가에 있어 좀 더 '가볍게'가 될 수 있을런지는 모르지만.혹은, 일반인이 아닌 특별인을 대상으로 죽음을 바라보는 기회가 될 수 있을런지는 모르지만.(어쩌면 '워터 드랍스 온 버닝 락'의 연장일수도!)그는 확실히 내가 꿈꾸는 시한부의 표본이긴했다.죽음을 두려워 하지는 않지만 인정하고 자신의 삶을 어떻게 마감할 것인가에 대해 그는 성찰하고 실천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비록 누군가에게는 모질게 대하였고 누군가에게는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어도 어떤이에게는 다정하고 진실적인 인간이었기때문에 나는 그가 밉지않았다.  역시 그를 인정하고 바라보았다.그가 죽음을 얼마 앞두지 않았다며 같은 신세라 칭하는 자신의 할머니에게 마음을 터놓는 부분은  이 영화의 핵심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으며 마지막을 바닷가의 황혼과 함께 하는 부분에서 최고치로 올라간다.그리고 이 부분은 '5X2'에서 사랑의 시작을 보여주었던 마지막 장면과 흡사해서'리싸이클'이라는 느낌을 주기도했는데, 그의 전작다음으로 '타임 투 리브'를 본다면더욱 더 긴 여운이 남을 것은 확실하다. 아니, 나는 그러했다.삶을 살면서 자신을 뒤돌아보기는 힘들다. 앞만 바라보아도 바쁜 세상이고 현재 걱정만 하기에도 벅찬 세상이다. 그러나 인생의 끝이 바로 앞에 놓여있을 때,더이상의 미래가 없을 때 어느 한 사람은 과거에 집착하고 현재를 포기하기 마련이다.그리고 프랑소와 오종은 '로맹'을 통해 그것들을 묵묵히 표현해내고있다.그가 죽기전 세상에 남기었던 '정자'들은, 죽은 생명이 될 그와 대조되어 더욱 생기를 띄는 생명으로 기억에 남는다. 인간은 그렇게 남겨지고 그렇게 사라지는가. 사실 오종은 정확한 풀이를 해주지는 않는다. 그저 우리에게 보여주고 여지를 남길 뿐이다. 하지만 전작에서도 그랬듯이 그의 영화에는 관객이 생각할 영역이 확실하다. 이 영화역시 그러한 점에서  '프랑소와 오종' 영화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쉼표와 같은 역할을 한 것같다. 아니 느낌은 확실하다.

 

 사실 나는 '타임 투 리브'를 본 후 얼마되지않아 '워터 드랍스 온 버닝 락'을 접했는데 이 또한 흥미로운 발견이었다. 게이를 다룬 영화였다는 점이외에도 '8명의 여인들'의 시초가 된 듯 싶은 갑작스러운 뮤지컬씬이라든가 (뭐, 원작이 연극이었으니 삽입되었을 수 있으나 형식적으로 파격적이었다) '8명의 여인들'과 '스위밍 풀'에 나왔던 배우인 '루디빈 새그니어'의 모습,역시나 퇴폐적인 관습을 지니고있는 내용들은 전작을 미루어보았을 때 비교대상이 되었고  그외에 '연극적인' 분위기를 백분 살렸다는 점은 그의 다른면을 보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그것도 챕터로 나누면서까지! 비록 동성애가 주된 사랑이었지만 '레오폴드'라는 비정한 남성이외의 주인공들이 입에담듯 '사랑의 피조물들'이라는 부분을 언급했다는 것 자체가 말해주듯 지배와 복종만이 사랑을 완성시킨다는 투의 발언은 사랑의 기괴한 변질성을 말해주었다.그것도 진지하고 유쾌하게! 이를테면 영화 중반부분에 '프란츠'가 빨간 스웨터에 팬티조각을 몸에 걸쳤을 때 음악을 끄라며 소리치고 나오는 '레오폴드'의 모습은 상위를 벗고 하위에 파란수건을 두른채였는데, 색상/나이/위치/지위의 대립이 시각적으로 잘 묘사되었지 않나 생각된다.이 영화는 '연극'이 원작인만큼 네명의 주인공으로 밀도를 완성해나가지만 그 완성도는 가히 놀랄만큼 날카롭다.누군가에게 복종을 하는 이는 어떤이에게는 지배를 당하고 그 모든 것을 즐긴다. 마치 지식의 배움처럼 누군가에게 전이를 시키는 것과 같다.

영화 속에서는 직접적인 SM이 나오지 않지만 그들의 대사(어투)나 행동을 보면 마치 선생님과 학생처럼 경직되어있거나 고분고분한 관계를 볼 수 있다는데 진지한 그들의 연기를 보고있자면 처량해보이기도하고 연민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유쾌하면서도 성찰적인 자세가 되는 것은 관객이기도 하지만 캐릭터이기도 하다.이러한 재주는 원작 자체에서도 나오는 것이겠지만 '프랑소와 오종'의 역량이기도 하다(고생각한다.)그러고 보면 그는 참 여러 장르를 오고가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 같다. 마치 그의 영화 곳곳에서 보는 바다의 거친 파도와 잔잔한 파도를 보는 듯 하다.모든 문제는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을 담고있지만 그 내용을 어떻게 연출하는 가는 그의 목소리 스펙트럼에 달려있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평온하지만 광기가있는 '프랑소와 오종'의 영화가 좋고 그의 영화에서 그의 목소리를 발견한다. 퇴폐적인 소재를 어떻게 더 퇴폐적이게 하는가, 덜 퇴폐적이게 하는가 사색적인 소재를 어떻게 더 사색적이게 하는가, 덜 사색적이게 하는가 그는 내가 사랑하는 감독 중에 많은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은 확실하다. 그래서 그의 다음 목소리가 더욱 듣고싶다. (나는 광기적 목소리가 더 좋지만!)

 

 

* 이 글을 쓴 후 본 '시트콤'은 정말 최고의 고지라 할 수 있었다. 정말, 프랑소와 오종만의 영화.(시트콤을 보고있자니 '8명의 여인들'은 참으로 미화된 영화라 생각되기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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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유디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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