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피아노'의 메인테마.그리고 그녀의 가녀린 선.낮은 채도로 그려지는 검푸른 파도와 함께 떠내려가는 그녀, 혹은 아픈 추억들, 아니면 트라우마.영화 '피아노'의 가장 큰 매력을 꼽자면 그것은 모호함이다.미개척된 네덜란드를 배경으로 함에 있어마치 그녀의 자아 정체성과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그런 모호함에서부터 출발한다.우리는 그러한 미개척된 땅을 그녀와 함께 떠남으로서모호함에서 벗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의 엔딩과 함께그녀를 보고있자면 궁금한 것이 참 많다. 직접적인 감정표현이 없기때문에사랑인지 아닌지 슬픔인지 아닌지 분노인지 아닌지 주인공인 말을 못하는 여인이 등장함에 따라 그녀의 트라우마는 모호한 한으로 남게 되어 관객들 주위를 배회한다. 특히 '피아노'라는 여성 정체성을 가진 상징성과 함께우리를 피아노속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하고 남성적 권력에 찡그리게도 만든다.하지만 그 남성적 권력은 '베인스'를 제외한 모든 남성에게 발산된다.물론 그녀가 그를 '사랑의 대상'이라고 여기기 전까지 그 역시도 폭력적인 남성상이다.첫번째남편은 도망을 간 것인지 죽은것인지 영화에서 설명을 해주지않지만그녀가 벙어리라는 것에 있어 '답답스러움'을 사랑으로 극복하지 못했음은 확실해보인다.그렇게 사랑이라는 것을 그녀를 하지못한 채 다른 남성에게 팔려간다.(팔려간다는 어휘가 이 영화에서는 어찌보면 적절하다.)그리고 만난 두번째 남편 스튜어트와의 인연을 보면 눅눅함이 처음부터 끝까지 존재한다.
태풍이 일것만 같은 바다에 딸과 함께 서있는 에이다는뻘이라는 더럽고 축축함을 맛보면서 그곳에서의 인연은 시작한다.밀림과 같은 곳을 지나 집안으로 들어올때도 뻘은 빠지지않는다. 긴 널판지 위를 가야만 하듯 그녀의 삶이 비춰진다.결혼식 역시 순조롭지 못한 결혼식을 보여주면서 그들의 엔딩을말해준다.비가 내려 다 젖어버린 드레스를 입은채 결혼사진을 찍고찢어버렸다는 오해를 산 채 그녀의 피아노와 그녀의 존재는 무시를 당하기 일쑤다.마치 드가의 발레를 하는 소녀와 같은 가는 선을 지녔으며창백한듯 하얀 피부를 가진 아이다는고전명화에서 나오는 주인공과 흡싸하다. 머랄까, 자발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인 여성상의 모습이라고해야할까?그러한 그녀가 자신의 목숨처럼 생각하는 '피아노'는 세상에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다. 그녀가 파도소리와 함께 피아노의 흰건반과 검은 건반을 오고갈 때 그리고 그녀의 딸이 무용을 하듯 해변에서 춤을 출 때 그녀와 피아노는 벌써 하나의 자아임을 증명한다.슬픈 단조의 음악이 오고가며 변주될 때, 베인스가 그녀에게 사랑을 처음 발견하듯우리도 그녀의 존재를 다시 인식한다.그녀는 고집으로 피아노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녀가 표출하는 단 하나의 방식이었기 때문에 전부인듯 말한다. 피아노는 세상과의 연결고리였던 것이다.하지만 '벙어리'라는 문제. 즉,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었다는 것 때문에그의 두번째 남편은 그녀를 이해할 수 없고 그녀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아니, 그렇기때문에 그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되지 못한다.차라리, '피아노'라는 분출할 수 있는 대상을 매혹적으로 여기는 것은 마오리족과 교감하는 베인스였다. 그는 처음 그녀를 피아노가 있는 해변으로 데려가 준 이후로 그녀를 이용한다.아니, 피아노를 이용해 그녀를 갖으려 한다.조금씩 권해가는 그와 검은 건반 수대로 그를 위한 연주를 물물교환하는 그녀의 모습은마치 원제교제를 하는 여고생과 남성처럼 '성=물품'문화로 간주시켜버린다.물론, 그들의 에로틱은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구멍난 스타킹을 만지며 그녀의 피아노 소리에 심취하는 것 정도.그 후로는 그녀와의 잠자리까지 원하지만.그의 진심은 점점 커져만 갔고 그녀역시 그를 부인할 수 없었다.
그는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의 피아노소리까지 사랑했고 영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듯 했다.영화 '피아노'에서 특별하게 생각한 두 씬이있었다.우리나라 '올드보이'와의 비교가 될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첫번째는 베인스와 에이다가 첫 성교를 갖을때 그녀의 딸이 훔쳐보는 시점이다.밖에서 안을 , 깨어진 창문이나 나무 판자 틈으로 그들을 훔쳐보는 것은 이우진과 이수아의 금지된 사랑을 오대수가 쳐다보았던 부분과 흡사했다.에이다와 베인스가 이우진과 이수아로 대치되는 씬이다.또한, 에이다와 베인스의 성교사실을 알게 된 이후 스튜어트는 그녀를 짐안에 가두워두는데이때 그녀는 거울을 보며 나르시즘에 빠져있는 듯하다. 거울에 키스를 하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다. 이부분 역시 올드보이의 같은 씬의 '이수아'로 대치된다.자신의 사랑을 합리화시키며 자신이 로맨스에 빠진듯한 여성으로.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듯해 보이는 그녀들의 모습은 참 인상 깊다.그리고 '피아니스트'인 여성이 손가락을 잘리는 모습은 조금이나마 박찬욱으 '쓰리몬스터-컷'과 비슷한 맥락이다. 물론, '피아니스트'라는 설정자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고'손가락이 잘린다'는 원인도 틀려도 박찬욱과 제인캠피온이 상관성있어보이는 것은둘의 모호한 여성 정체성에 대한 부분인 것도 같다.다시 영화 '피아노'로 돌아와서, '손가락'이 잘림에도 꿋꿋하게 일어서 베인스가 있는 곳을 향해 걷는 그녀를 보고있자면 '수동적임'을 손가락과 함께 잘려버린듯 해보인다.그녀는 손가락 하나에 어떤 자신감을 얻었는지 모른다.이제는 어떻게 될지모르겠다. 나자신의 감정대로 이성대로 행동하자.이정도의 마음가짐이랄까? 그래서 엔딩 부분에 죽음, 선택, 놀라움이라는 부분은피아노와 함께 잠시나마 죽었던 그녀의 육신처럼 '잘린 손가락'의 죽음/선택/놀라움과도 병행된다.그녀의 고요한바다속의 죽음이 되기전잘린 손가락은 전날밤의 '전야제'와 같은 의미랄까. 나에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결국, 피아노를 가져가게 할 수 없는 자와 가져가게 할 수 있는 자의 대결에서가져가게 한 자가 이겼다. 이는, 그녀가 여성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가와도 상충되는 문제며.'여성'이라는 성에 국한된 문제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선택을 자신이 할 수 있는 자유의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에이다는 그녀의 대사처럼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피아노를 간직하고 그것을 버림으로써.고요해서 소리가 존재 할 수 없는 바다속으로 그녀의 죽은육신과 함께 버림으로써그녀는 잠시나마의 죽음, 그리고 다시 태어나는 영생을 가졌다.그녀는 과거의 '벙어리'로 남지아니하고 노력을 해가며 말을 웅얼 거린다.이것이 베인스와의 결혼 전과 후, 즉 죽음과 재탄생을 일부 표출한다.그래서 마지막부분 면사포와 같은 레이스를 뒤집어 쓰고 말하기 연습을 하는 에이다에게 다가와 천을 위로 올린 후 키스를 나누는 모습은 마치 결혼식과 같았다.직접적인 결혼식 장면은 보여주지 않았어도 재탄생이라는 의미처럼 진정한 결혼식을 하는 듯한 것이다.어떻게 생각해보면 영화 '피아노'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대상이 많지만간적접이 아닌 직접적으로 말해주고있다. 마지막 그녀의 나레이션처럼자신의 무덤을 피아노라 하든지, 바다에 내던져 져 있는 피나오의 밧줄의 신발을 자신이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피아노의 한 '음'이 나는 건반을 떼어주는 에이다와 동시에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잃어버리는 부분도있다.이러한 상징적인 의미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직접적여보이는 의미부가성에 비해 진행되는 표현없는 로맨스에도 있겠다.앞에서 언급했듯이 모호해보이는 감정들이 연결되는 로맨스말이다.또한 이 영화의 감성들에 빠지게 되는 것은마치 '물'이 끊임없이 등장함에도 무채색빛 분위기가 무미건조해보이는 것처럼모순을 뒤집고 다시태어나는 촉촉한 무지개와 같기때문이다.그래서 이 영화는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 떠나고 죽지만남겨지고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 얼마전 개봉한 '빅 화이트'에서의 홀리 헌터의 연기는 참 인상깊었다.틱증후군 환자를 매력적으로 소화했다고 해야할까?하지만 이 영화의 '에이다'는 그녀를 위한,맞춤형 캐릭터였다는 것을 확신시켜준다.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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