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전부터 '붉은 수수밭'은 나에게 염탐대상이었다.유치원시절, 이 영화를 보고 단지 '에로영화'인줄 알고 가슴뛰던 때가 기억이 난다. 10대때 다시 이 영화를 보게 되었을때는 영화의 전체를 지배하는 역사의식이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리'라는 여배우에 푹 빠져있었다.그리고 20대가 되어 두 번 이 영화를 보게되었을때서야, 비로소 영화의 역사적 배경지식를 바탕으로 영상미에 빠져들었다.그러니까 결국 4번에 걸쳐 '붉은 수수밭'을 보았고 마지막 보았을 적에는 5세대 감독들의 영화에 대해 검토하는 생각으로 들여다 보았던 걸로 기억한다.한가지 확실한것은, '장이모우'의 초기작인 '붉은 수수밭'은 가장 매력적인 중국영화로 나에게 기록되었고 아무리 봐도 질리지않는, 그래서 대형스크린으로 꼭 봐야하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했다.(그동안은 계속 브라우져관에서 이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제1회 CJ 중국영화제에서 관객들이 뽑은 가장 기대되는 작품인 '붉은 수수밭'을 다시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벌써 굳혀졌던 의지를 다시 꺼내는 일이었다.아쉽지만 '조춘이월'을 뒤로한채 나는 그 넘실거리는 붉은 스크린을 택한 것이다.
CJ 영화제 다른 프로그램이었던 첸카이거의 '황토지'를 장이모우의 '붉은 수수밭'과 비교하며 보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왜냐하면 첸 카이거의 '황토지'의 연출을 장이모우가 맡았고 이 두 영화는 모티브상에서 상당히 겹치는 부분이 많다.특히, 붉은색이 주는 이미지와 결혼풍습, 축제는 중요모티브로 작용하여 영화를 이끌어나가며 심지여 영화속 시간 배경 - 근대화 전 중국을 담은 모습 - 도 거의 비슷하다.암막에서 내러티브로 시작하여, 현재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과거의 모습과 일치시키며 '붉은 수수밭'은 시작된다.당시 신부는 붉은 가죽신에 붉은 천으로 얼굴을 덮은채 붉은 가마에 타고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결혼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그때 신부를 겁주는 가마꾼들의 풍속이 있다.영화는 '황토지'와 마찬가지로 황토빛 대지위의 식을 올리러 가는 붉은 마차를 비춘다.다만, '붉은 수수밭'은 좀더 캐릭터의 감정선을 중요시여긴다.이 점은 인물의 시점숏으로 드러나는데, 공리(추알)이 마차속에서 힐끔 힐끔 가마꾼- 남자들을 훔쳐보는 모습이나, 강문(유이찬)이 공리를 바라보는 숏이 직접적이다.사내들은 남편이 나병환자라는 겁을 주는 것으로도 모잘라 신부를 골탕먹이는데, 풍악을 울리며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가며 가마를 들썩인다.이렇게 가마를 두고 약올리는 가마꾼들과 가마속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추알'의 교차편집은 관객에게 상당한 집중력을 주게된다.후반되면 강인한 여성이 되는 '추알'의 모습이 그려지는데, 초반 가마속의 연약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면 웃음이 절로나온다.이들은 야생 수수밭을 건너 양조장을 가게되는데, 난데없는 도적을 만나게된다.'산파오'를 가장한 도적은 거적을 뒤집어 쓰고 남자들을 무장시킨후, '추알'을 범하려드나, '유이찬'이 이를 제압해 첫번째 만남을 갖게된다.이 부분에서 '추알'과 '유이찬'은 서로의 눈빛을 주고받는 액션/반응 쇼트를 보여주는데 오묘한 감정이 흘러 흥겨웠던 앞부분과 대조를 시킨다.특히, '추알'이 영악하다는 느낌을 주는 에피소드는 가죽신을 가마밖으로 살짝 내밀어 자신의 공간으로 '유이찬'의 손이 들어오게 하는 부분인데 이는, 의도적이었다 생각든다.결국 그 둘의 멜로가 시작되려는 스파크인 셈이다.붉은 노을이 지고 검푸른 밤이되자, '추알'은 자신의 나병 남편을 맞이하는데 여기서도 재미있는 것이 놀라는 '추알'은 있되 그에 응하는 남편의 모습과 반응 숏이 없다는 것이다.이는 첸카이거의 '황토지'에서의 복습같다는 이미지를 준다.첫날밤을 같이 지내지 않고 중국의 풍습대로 3일째는 친정에 가나, 아버지라는 사람은 노새와 딸을 바꾸고도 딸을 문책하기 이르른다.'추알'은 다시 양조장으로 돌아오는데, 이때 다시 거적을 쓴 도적을 만난다.불어드는 바람, 거칠게 움직여대는 야생수수밭.이러한 필로우 숏의 결과는 당연히 도적이 '유이찬'이었다는 것이다.거친 반항을 하던 '추알'은 금새 조용한 노새처럼 그의 손에 붙들리고 둘은 그곳에서 마음을 통한다.가장 격하게 움직이는 트래킹숏과 역광으로 비춰드는 로우앵글, 붉은 빛으로 얼굴의 표정을 없애고 끊이없이 흔들리는 수수들.마치 초반의 붉은 마차를 흔들리듯, 영화는 그 둘을 비추는 대신 자연을 보여준다.이 숏은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의 버드나무 내러티브가 떠올릴 정도로 상당히 감성적인 몽타주였다.양조장으로 돌아온 '추알'은 자신의 전남편이 살해되었음을 알게되고 양조장의 모든 사람들은 액운이 들었다며 떠나려고하지만, '추알'의 변화적인 모습 - 강인함으로 다시 양조장을 이끌게 된다.
영화에는 두가지 모티브인 '다리'와 '붉은 이미지'가 연이어 나오게 된다.'다리'는 귀신이 나오기도 한다는 전설적 공간이기도 하고 을씨년스러운 풍미를 가지고있으며 전남편의 신발이 발견되어 유기장소인듯보이기도하다.라호안을 따라나온 '추알'이 그의 흔적이 찾지못할때 누군가의 시점숏으로 '추알'과 '유이찬'을 바라보게되는데 이러한 이미지들의 연속성에서 이것은 타자적 느낌을 확연히 주게 된다.또한, 다리는 양조장 가족들이 일본인들의 분노로 결투를 하게될때 지나는 의식적 '상징'이기도하다.'붉은 이미지'는 붉은 마차 - 신부의 옷 - 고량주 - 부적 - 수수밭 - 인간의 피 - 동물의 피 - 초 - 불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일식'이라는 초자연적 현상으로 영화를 붉게 물들인다.이때, 인간의 가죽을 벗기는 장면이 들어있는데 아마 일본의 침략은 자신의 윗사람까지 죽여야하는 두려움, 그리고 죄의식과 분노의 혼잡한 감정의 직접적 표현이었을 것이다.그곳에서 희생을 당한 '라호안'의 죽음으로 양조장에는 결의와 분노로 가득찬 사람들이 마지막날 예를 지내는 것을 볼 수 있다.이때, 인물들을 잡으면서 보여주는 '불'의 이미지는 상당히 강렬하다.'추알'을 담아낼때도, '유이찬'을 담아낼때도 검은 배경에 이글거리며 타들어가는 불은 그들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주는 중요한 모티브다.이들의 결전의 날, 내러티브는 이렇게 말한다.'그날은 태양이 너무 붉었다. 그래서 모두들 눈이 멀었다.'눈이 멀정도로 붉은 태양아래, 그들의 피와 살로 담근 '고량주'와 화약으로 그들에게 대항한다.대항하기 직전, 음식을 날라주던 '추알'이 쓰러지고, 이어진 폭탄은 일본인들을 전멸시키게 된다.그 순간은 슬로우 모션으로, 그리고 붉은 태양, 뛰어가는 아이, 쓰러진 '추알', 불항아리의 폭파등의 미장센충로, 더욱 의미심장해진다.게다가 '월식'으로 스크린의 필터는 아예 붉게 변해있다.그것은 직접적인 '월식'의 표현일 수도있지만 아내가 죽었을 때의, 동료가 죽었을때의 '유이찬'의 심정과 동일한 것이다.(엔딩부의 슬로우 모션과 축제의 음악 역시 '황토지'와 닮아있다.)너무 붉은 태양때문에 모든 것이 피로 물든듯, 필터링이되어있고 그때 비추는 '유이찬'의 뒤에는 검붉은 연기가 지속적으로 흐른다.심지어 아무소리도 들리지않아, 이 적막으로 우리는 시선을 뗄 수 없게 된다.붉은 공기속에 나부끼는 수수밭은 끊임없이 넘실댄다.멀리서 들려오는 '둥둥둥' 거리는 북소리와 고음의 나팔소리가 아이러니한 축제의 분위기를 남긴채, 영화는 여기서 끝이 난다.'붉은 수수밭'은 여운이 참 긴 영화다.한 나라를 침략한 적들에 대한 분노와 이루어져 '붉은 이미지'들은 그저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폭발력과 생명력을 대변하기 때문이다.과거는 되풀이 되지 말아야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는 것 처럼 그렇게 역사에 대한 허탈감과 반성은 이 영화에서 산소처럼 흐르고있다.왜 우리가, 중국 5세대 영화에 조명을 비춰야 하는가는 장이모우의 초기작인 '붉은 수수밭'이 대신 대변을 해주는 것 같다.
* 기자 블로그에 썼던 글이라 문체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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