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불한당>이 어제 종영을 했다. 종영과 함께 드라마에 대한 미안함이 몰려온다. 나는 <불한당>이 줄 수 있는 모든 감동을 빠짐없이 다 받아먹고 나서, 이 드라마를 좋아했노라는 표현을 너무 게을리 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상한가? 흐흐... 몇 년동안 드라마마다 정을 붙이고 살다보면, 드라마 자체를 인격화 시켜버리는 기이한 경지까지 도달하게 된다. 한 번 시도해 보시라.
그랬다. <불한당>이라는 드라마에 대한 정당한 가치를 이야기 하기보다, 출연배우들의 너무도 적절한 연기에 대한 칭찬을 하기보다 시한부 인생의 사랑이야기라는 "흔하디 흔한" 소재였기 때문에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다라고 성의없는 기사들이 눈에 띌때마다, 난 나름의 내가 왜 <불한당>을 챙겨 시청하는지를 이야기 하지 못한 것이, 이제와서 참 미안하기만 하다.
흔하디 흔한, 그러나 그 누군가에게는 참 특별한 "사랑"에 대하여
<불한당>의 이야기는 정말, 그 흔한 사랑 이야기였다. 싱글맘 진달래가 천하의 불한당인 권오준을 사랑으로 변화시킨다는 것도, 그렇게 그녀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겠다고 오준이 결심한 순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시한부 인생 설정까지, 한국 드라마의 고정관념과도 같은 "시한부 인생의 사랑타령 공식"은 정말 식상한 소재거리였다. 그러나, 이 모든 판단은 <불한당>을 시청하기 전까지의 이야기이다.
<불한당>의 모든 등장인물들은 그렇게나 흔하다는 '사랑'이 결핍된 이들이다. 그래서, 권오준은 자기 인생에서 생전 처음으로 받아보는 진달래의 사랑이 미치도록 벅차고, '사랑'이 무엇인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는 김진구는 진달래와 순대의 사랑으로 '사랑'을 느낀다. 남편의 죽음으로 자신을 잃고 살아온 진달래는 늘 제 곁에 있겠다는 오준의 약속으로, 오준이 가장 밑바닥에 있을 때마다 그를 구원해준다. 그들에게 있어 '사랑'이란, 결핍되어 말라버린 영혼을 구해내는 구원의 동앗줄이다.
<불한당>은 이렇게 흔하다고 말하는 그 사랑이 인물 하나하나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감정의 발현인지를 너무나 세밀하게 그려준다. 그래서, 그들에겐 가장 특별한 '사랑'이 되고, 그것은 시청자들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불한당>은 사랑은 '흔하다는', 집밥은 '식상하다는',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는' 고정관념을 우리에게 되묻는다. 정말, 지금 우리와 함께 하는 부모, 자녀, 형제, 그리고 연인들과 함께 어우러져 먹는 저녁식사가 우리에게 '당연한' 일일까 하고.
진달래의 아이 순대는 유치원 행사인 '아버지의 날'에 함께 해주는 아빠가 없어서 즐거운 행사날에 울음을 터뜨리고, 함께 모여 축하해 줄 가족이 없고 돈이 없어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는 종구 부부는 오준에게 혼인의 증인이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건강마저도 '당연한'것이 되지 못해서 하루를 평생처럼 살아야 하는 오준과 달래는 언제든 헤어짐을 준비할 수 있는 제주도행 비행기티켓을 넣어두고 하루를 마감한다. 우리에게 당연한 이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지 못한 '가난한' 인물들은, 그래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단 하나, '사랑'이 너무도 특별하다.
우리에겐 당연한 것도, 흔한 것도 없다
당연히 받고 자랐을 부모의 배려와 따뜻한 사랑을 공백으로 두고 있는 진구는 커다란 집과 넓은 사무실만큼이나 공허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했고, 사랑하는 사람이 제 친구 오준이기 때문에 서로 사랑을 교감할 수 있는 당연한 기회를 잃어버린 만두는 그저 그를 자신의 '꿈'으로 둘 수 밖에 없었다. 그 흔한 엄마가 끓여주신 된장찌개와 더운 쌀밥으로 만들어준 집밥을 못 얻어먹고 자란 오준은 진달래와 시어머니 순섬의 따뜻한 저녁식사 한 끼에 그 작은집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된다.
마음이 가난하고, 가진게 없어서 제 품에 안을 수 있는 '사람' 한 명 가지고도 벅차게 행복할 수 있는 <불한당>의 인물들은,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절대 당연한 권리가 아니다.'라고 이야기 한다. 그것은 언제 어느때 사라질지 모르는 신기루처럼, 언제 어느때 누구 먼저 죽을지는 사실은 모르는데 당연히 나는 내일은 죽지 않을거라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무자각을 건드린다.
그렇다. 우리들이 가진 이 모든 것들은, 우리를 사랑하는 부모도, 늘 싸우는 형제도, 사랑하는 연인도, 늘 먹는 세끼 집밥까지... 사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은 당연한 것도, 흔한 것도 없다. 그저,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살 뿐이다.
마지막 회, <불한당>의 오준은 죽지 않았다. 예전의 불한당 생활을 청산하고, 착실하게 권투클럽을 운영하며 순대와 달래와 함께 살겠노라는 꿈이 내게 너무 큰 행복이 아닐까, 불안하던 즈음 어김없이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를 드라마는 굳이 '자극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당연한 건강마저' 잃어버린 이들이 남은 것은 '사랑' 뿐이라서 오로지 그것 하나로 하루를 평생처럼 살아갈 것이라는 잔인한 희망만을 남겨주며, 그들의 일상중 하루를 마감하듯 그렇게 종영한 <불한당>은, 흔하게 흘러가는 드라마 중 하나로 함께 흘려보내기엔 너무 아쉬운 드라마이다.
배우가 좋다
'사랑'의 영역이 연애감정 그 이상의 영역임을 진달래를 통해 보여준 이다해씨, 인생의 가장 밑바닥을 칠 때, 그 순간 구원의 동앗줄을 만났을때 솟아오르는 인간의 희열을 온 몸으로 표현해 주신 장혁씨,
공허한 진구의 마음을 유쾌하고 인간미 넘치게 표현해 준 김정태씨,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 언제나 그 표현을 잘못해서 외로운 아버지 신구님,
남자를 사랑하는 만두의 마음을 단지 '사람'을 사랑했을 뿐인 이유로 기막히게 표현해낸 홍경인씨, "어즌씨~"라는 귀여운 억양과 통통한 볼살을 깨물어 주고 싶었던 환희양,
정말 너무너무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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