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눈으로 문화읽기]
공의의 심판에 맡겨라 |
![]() 광복절은 일제로부터 해방과 독립을 맞은 날이다. 정치적인 해방은 이뤄졌지만 경제와 이데올로기 등 온전한 해방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독립은 또 어떤가. 분단 역시 아직도 진행 중이어서 온전한 독립을 이뤘다고 보기 힘들다. 해방과 독립을 우리 자신의 힘으로 이루지 못한 후유증을 아직도 앓고 있는 게 우리 민족이요, 사회다. 통일을 향해 그 무언가 조용히 그리고 역동적으로 역사(役事)해야할 숙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통일을 위한 발걸음에 장애가 되는 게 있으니 바로 과거사 청산이다. 친일파 처리 문제와 민주-공산주의의 색깔 논쟁은 우리 민족 영혼 깊은 데까지 스며들어 때로 치유하기 힘든 한(恨)이나 상흔이 되어 증오와 복수의 칼날을 세우게 된다. 여기에 증폭되어가는 감정의 악순환까지 감안하면 우리 민족이 안고 있는 트라우마는 전적인 은총의 세례가 아니면 치유가 어려운 국민적 질병이 되어가고 있다. 문화 속에서도 민족주의는 은근히 팔이 안으로 굽게 행동한다. 가령 '경성스캔들'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등과 같은 영화에 일제의 식민지가 소재로 등장한다. 이들 영화에 등장하는 일본 제국주의는 한마디로 '나쁜 놈'들로 그려진다. 제국주의의 속성은 이상하고 나쁜 것이기에 더 어떻게 미화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일제 장본인이나 앞잡이들은 언제나 비참하게 죽거나 웃음거리가 된다. 우리는 영상미학을 앞세워 그렇게 내면의 복수심을 충족해가고 있지 않았는가. 성경에도 용서할 수 없어 보이는 원수같은 이들이 등장한다. 특히 시편에 보면 적에 대한 탄원과 복수가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위협하는 '원수' 같은 이들에 대해 어떻게 행동해야할까. 일본처럼 전쟁을 일으키고도 아시아 해방을 위한 거사였다고 진실을 호도하는 이들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악인의 팔을 꺽고(시 10:15) 원수를 영영히 멸하소서(시 9:6)라는 저주를 퍼붓기는 쉽다. 하지만 말씀은 우리를 강권하신다. 역사의 주관자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심판의 주께서 정죄하시고 심판하시도록 우리는 다만 가만히 서서 여호와의 행하심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출 14:13). 우리가 할 수 있는 정말 용기있는 일은 '여호와의 구원을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다(애 3:26). 하나님의 공의에 맡기는 것, 그것이 역사적 행위임을 다시 깨달아야 한다. 자신이 정의와 복수의 칼을 휘두르며 원수를 무찌르는 용맹이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 하나님을 기다리며 묵묵히 공의를 행하는 게 오히려 더 용기있는 행위일 수 있다.
- 2008. 8. 18일자 국민일보 [32면] 추태화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 - |
출처 : 내고향 옹달샘
글쓴이 : 옹달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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