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눈으로 문화읽기]
인디아나 존스4
영상이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시대, 현대인들은 거의 영상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서 영화는 빼놓을 수 없는 문화 매체로 자리매김해 이제 사람이 영화 속에 살아가는지, 영화가 사람 속에 존재하는지 모를 정도로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앞으로 언젠가는 영화를 믿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우려도 된다.
'인디아나 존스'는 인기 있는 영화다. 그 시리즈로 현재 제4편이 개봉되었으니 흥행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또한 흥행의 보증수표라는 스필버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니 마니아층만 아니라 일반 관객들도 의심 없이 영화로 발길을 옮길 만하다.
이 작품은 모험과 여행을 전면에 배치하고 있는 어드벤처 영화다. 관객들은 시종 흥미 있는 수수께끼를 영상과 함께 풀어가는 재미를 맛본다. 그저 관람객의 위치에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 전개에 참여하는 쾌감을 곁들인다. 또한 기호학이 보편화된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예를 들면, U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나 D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같은 작품은 수수께끼를 풀듯 복잡한 기호를 풀어가는 가운데 스릴과 미스터리를 맛보게 하는데, 이 영화에 바로 그런 양념이 곁들여 있다.
하지만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은 그 속에 역사적 사실과 판타지를 교묘하게 뒤섞어 놓아 사실과 허구를 분간할 수 없게 되는 경우다. 인디아나 존스의 성공이라면 이러한 요소들을 가미한 절묘한 '짬뽕'술(術)에 있다 하겠다.
스필버그는 이 영화에서 전편보다 더 강한 뉴에이지 사상을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 장면 밀림 속 폐허를 헤치고 떠오르는 비행물체는 UFO였다. 미국과 러시아 양국간의 피말리는 추격전, 사건의 모티브는 인류가 추구하는 최고 지식의 기원에 대한 궁금증이었는데, 그 답은 미확인 비행물체와 외계인이라는 것이다. 스필버그는 데니캔과 핸콕 등 문명탐사가들이 쓴 책에서 영감을 받은 듯하다. 아니면 유대계인 그 자신이 UFO 추종자로 돌변했거나.
막대한 자원과 고도의 기술력, 감독의 예술성은 인디아나 존스 4편에 와서 그저 허무맹랑한 결말로 끝나버리고 만다. 인류는 그동안 고대 문명이 남긴 수수께끼를 아직 풀지 못했다. 고도의 지식, 고도의 문명이 남긴 신비한 유산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감독은 좀 더 진지한 결론을 기대했던 관객들을 모독했다. 고대 문명이 정체 모를 외계인이 남긴 흔적이라는 결말은 고귀한 인간 존재를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다. 역사는 사라지고 오락만 남은 셈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반격하겠지만, 정직하지 못한 편집이었다.
추태화(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
- 국민일보 2008.06.22 17: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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