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눈으로 문화읽기]
누가 이 잔인한 엇갈림을
풀어내랴… 영화 ‘크로싱’ |
![]() 영화 '크로싱'은 사실적이다. 탈북민들의 삶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탈북의 모티브는 관점에 따라 달리 받아들여질 수 있다. 만약 엑소더스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통쾌한 앵글로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당독재의 억압과 폭정에 시달린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 탈출한다는 설정은 박수받을 만한 거사이기 때문이다. 매스컴이 탈북민들을 특종으로 다루던 시절이 기억되지 않는가. 하지만 '크로싱'은 그렇지 않았다. 김용수(차인표 분)라는 이름의 가장(家長)이 탈북을 결심한다. 그 이유는 정치적인 데 있지 않았다. 가족을 위해서였다. 아내가 결핵으로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이유보다 살기 위해 탈출해야 한다는 것이 더 비극적인 현실 아닌가. 그는 죽음의 사선을 넘어 탈출에 성공한다. 하지만 아내와 아들을 잃는다. '크로싱'은 그런 아픔과 고통의 현실을 기초로 하고 있다. 그 소재가 영화 이전에 현실이라는 데 처절함이 더한다. '크로싱'은 또한 정치적이다. 탈북민들의 삶을 통해 무언가 증언하려 한다. 그 증언 내용이 관객에게는 불편하다. 남한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살아왔고 북한은 그렇지 못했다. 그 결과가 극명했다. 관객은 탈북민들이 겪는 비참한 현실을 바라보며 어떤 감정을 갖게 된다. 백성을 저런 참혹상에 내던지는 정권이 무슨 정치를 논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다. 이 저항감이 정치적이다. '크로싱'은 나아가 기독교적 고뇌를 담는다. 김용수는 이렇게 울부짖는다. "북녘 땅에는 하나님이 안 계시단 말입니까?" 그는 혼란스럽다. 신앙을 받아들인 친구네 식구는 반동으로 몰려 어느 날 마을에서 사라진다. 자신은 자유의 몸이 되었는데 북한에 남겨둔 가족을 위해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너무 답답하다. 과연 정의로운 신이 있다면 어떻게 이런 부조리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을까. 김용수의 외침은 성경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바울의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이 도와달라고 외치는 것 같다(행 16:9). 어느 탈북민의 절규, 그것은 먼저 믿은 우리에게 던지는 질책과도 같다. "하나님은 북한을 구원하시기 원하는데 여러분들은 뭐하시는 겁니까." 그렇다. 하나님은 북한도 구원하시기 원하셔서 일하고 계신다. 김용수는 하나님의 전적인 기적을 기대한 것 같다. 전능한 신이라면 이 비극적 상황을 단번에 변화시킬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역사적으로 일하시기 원하신다. 그의 형상대로 지음받고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일하여 해결하기를 원하신다는 의미이다. '크로싱'은 이 문제들을 단순히 엇갈려가게 하지 말라고 역설한다. 한편의 영상을 통해 현실과 정치, 그리고 신앙적 문제를 진지하게 곱씹으라는 것이다. 그 문제들이 더 이상 무심하게 엇갈려가는 것을 용납하지 말라고 한다. 사태가 더 늦어지기 전에…. 추태화(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 - 국민일보 2008.07.06 17:35 - |
|
출처 : 내고향 옹달샘
글쓴이 : 옹달샘 원글보기
메모 :
'신앙테크 > 성서와 신앙을 알고싶어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성경의 눈으로 문화읽기] 공포와 스릴러,그 오락의 끝은? (0) | 2008.10.07 |
---|---|
[스크랩] [성경의 눈으로 문화읽기] 미디어 테러에 떠오르는 성경 구절 (0) | 2008.10.07 |
[스크랩] [성경의 눈으로 문화읽기] 인디아나 존스4 (0) | 2008.10.07 |
[스크랩] [성경의 눈으로 문화읽기] 폴란드 연극 ‘두드리 두드리’ (0) | 2008.10.07 |
[스크랩] [성경의 눈으로 문화읽기] 감동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루카스’ (0) | 2008.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