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장 25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기도는 무엇이든지 구하라는 말씀이 있지만 우리가 잘못 구하는 기도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면도칼을 갖고 놀고 싶으니 아버지께 면도칼을 달라고 떼를 쓰고 졸라대면 아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아버지는 철모르는 아이가 칼에 많이 다치고 상하고 피를 흘리며 위험하니 절대로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성한 후에 면도칼을 달라 하면 수염 깎으라고 아버지가 달라는 말을 안하여도 자발적으로 사다 줍니다.
내가 장성한 신앙과 사람이 되기 위하여는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을 위하여서는 얼마든지 기도를 할 수가 있지만 나 자신을 위하여 삼가며 기도하여야 일이 있는 것입니다.
1. 육신의 염려를 위한 기도
오늘날 우리가 기도할 때 육신의 염려를 위한 기도를 많이 합니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하는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어서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너무 지나쳐서 육신의 염려를 위한 기도를 많이 합니다.
병이 들면 어떠하나. 오늘 차를 몰다가 사고가 나면 어떠하나 하는 기도입니다.
오늘 아이들이 무슨 나뿐 놈을 학교에 오가는 길에 화를 당하지 않나. 남편이, 아내가 바람이 나지나 않는가 하는 등등의 육신의 염려를 위한 기도를 많이 합니다.
필자가 자동차를 운전하기 전에 운전대에 앉아서 기도를 잠시하고 운전을 하는 사람들을 가끔 봅니다. 차체를 보장하시고 운전대도 주님이 잡아 주소서 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 상당히 보는 사람으로 감동을 주는 일이지만, 필자는 운전대를 잡고 별로 기도를 안 합니다.
항상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고, 나를 지키시고, 내 앞서 행하시며, 나를 인도하시는 삶을 사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자동차를 타고 가도 앞뒤에 천군 천사가 에스코트(ESCORT)하고 갈 것이고, 하나님이 함께 동행 하실 것이기에, 특별히 그 순간만을 위한 기도는 안합니다.
아침에 기도할 때에 모든 하루의 삶을 부탁하였으면 그 믿음을 가지고 그대로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내 육신은 내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이고,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안에 거하고 있으니, 육신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를 염려 안하고 주님이 주장하시니 내 육신을 위한 염려 기도는 안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위하여 행하는 기도는 더욱 열심히 기도를 하는 것이 좋은 것이니, 나의 육신의 염려를 위하여 기도를 할 시간이 있다면 다른 사람을 위하여 그 기도를 더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아름 답께 나나 타고 내게 되돌아오는 복이 임합니다.
2. 육신의 영광을 위한 기도
나 자신이 높아지고 나 자신이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명예의 마음으로는 절대로 이를 위하여 기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세나 엘리야나 다른 유명한 선지자들은 오히려 하나님이 명예를 주며 높여 주려고 할 때 스스로 사양하면서 겸손의 자리를 찾아 내려갔습니다.
모세도 입술이 둔한 자라 하면서 여러 차례 사양하고, 하나님께서 화를 낼 정도까지 사양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의 기도는 자기가 스스로 높아지고, 자기의 명예를 내기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나를 위하여 육신의 영광을 위하여 출세를 하기 위하여 기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를 위한 기도가 있다면 아버지 뜻대로 순종하면서 살기를 위한 기도를 하여야 하고 나를 통하여 아버지가 영광을 받게 하여 달라는 기도를 하여야 하는 것이지, 나 스스로의 영광을 위한 기도는 삼가 여야 합니다.
3. 육신의 정욕을 위한 기도 (약 4:3)
무엇을 취할까(골 3:5) 무엇을 이룰까 (롬12:16) 무엇을 가질까 (눅 12:15)를 목적으로 기도하는 기도는 구하여도 받지 못하는 정욕으로, 육신의 욕심을 취하기 위한 기도입니다.
기도는 아버지의 뜻에 합당하게 아버지의 뜻대로 구하여야만 이 응답을 받습니다.(요1 5:15)
아버지의 뜻대로 구한 기도는 이미 받은 줄로 알고 믿음으로 감사하며 기도하는 것이지, 나를 위하여 나의 영광을 위한 기도는 육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기도이므로 하지 말아야 할 기도입니다.
기도를 하고 응답 받지 못하는 불쌍한 기도를 한 예를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 누가복음 18 : 11절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첨잔케 기도하고 첨잔케 거절당한 기도가 있습니다.
2. 마태복음 7장 23절 뜨겁게 기도하고 차갑게 거절당한 기도가 있습니다.
불법을 행하면서 아무리 뜨겁게 기도하여야 차갑게 거절당하는 것입니다.
불법은 노릇하면서 진실 된 행함이 없는 기도입니다.
3. 야고보서 4장 3절 열심히 기도하고 응답이 없는 기도가 있습니다.
철야하며 금식하며 기도하여도 호박에 침준 것같이 반응이 없는 기도는 자기 욕심을 위한
기도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4. 마태복음 6장 5절, 사람 앞에서는 기도를 잘 했지만 하나님께로 거절당한 기도가 있습니다.
외식하면서 기도하는 기도입니다. 사람이 듣기에 감동이 오는 열정적인 기도를 하지만
하나님은 외식이라고 거절하는 기도는 불쌍한 기도입니다.
5. 마태복음 6장 31절. 염려로 가득 찬 기도는 믿음 없는 기도이므로 응답이 오지 않는 것.
믿음으로 구하고 받은 줄로 믿는 말씀 안에서 기도하는 기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응답이 있는 것이 기도이지 응답이 없는 것은 기도가 아니고 자기의 노력일 뿐이고 요구 사항 일뿐입니다.
응답은 내 말대로 YES만 되어 나타나야 응답은 아니고 NO도 응답이고 HOLD도 응답입니다.
여하튼 기도를 하여 이 세 가지 중에 한가지의 회답이 와야 응답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대통령에게 청원을 하면 세 가지 중에 한가지의 회신이 비서실을 통하여서 오는 것인데
이런 회신마저 없는 기도는 하지 말아야 할 기도를 하였고, 불쌍한 기도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기도 응답은 YES. NO. HOLD이 세 가지로 회답이 오는 것이 기도 응답입니다.
호박에 침준 것 같은 반응 없는 기도를 이제부터는 하지 말고,
나의 영광을 위한 기도,
나의 육신의 염려를 위한 기도,
나의 욕심을 채우는 기도는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를 하여 응답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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