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테크/로마서강해

[스크랩] “세상과 충돌하라”AW토저 로마서 12:1-2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1. 11. 07:36

당신은 사단의 종인가? 사단의 적인가? 그리스도인들이여 그리스도의 군사임을 잊지 말라. 그리스도인들이여, 세상에 무릎 꿇고 세상을 흉내 내거나, 타협하지 말라 하나님은 그 편한 길을 반대하신다! 세상과 불화하라. 겁먹지 말고 당당히 맞서라!

과거에 세상이 교회를 따랐었다. 교회가 주도권을 잡았으며, 세상은 교회를 뒤따랐지만 지금은 반대다. 지금은 교회가 세상을 따라간다. 과거의 교회는 어린양의 아름답고 혈색 좋은 신부였으나, 지금의 교회는 쪼글쪼글한 늙은 걸인 같다. 지금의 교회는 세상의 거리로 나가 세상 사람들에게 동전을 구걸하기 위해 손을 내밀고 있다. 한때는 교회가 세상을 향해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 3:6)라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제발, 우리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믿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당신들과 똑같다."라고 한다.

오늘날 기독교가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쏟아 부으면서 세상에 전하는 것은 무엇인가? 성경적 기독교와 세상을 섞어놓은 기독교, 즉 '혼혈(混血)기독교'를 전하지 않는가? 명심하자. 십자가의 기독교는 세상의 비위를 맞추려고 아첨하지 않는다. 진정한 교회는 세상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쓰지 않고 오히려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의지할 분은 하나님뿐이오니 우리를 도우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교회는 자신의 성경적 원리 위에 우뚝 서서 세상에게 성령님의 음성을 들려주어야 한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올 것이다.

◆ 세상의 비웃음과 따돌림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 이사야에게 주신 말씀이 사8:13,14절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

하나님의 백성은 앗수르의 침략을 목전에 두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몇몇 나라들과 동맹 관계를 맺음으로써 앗수르에게 대항할 궁리만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 오직 이사야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어떤 시대이든 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은 소수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위험과 재앙이 곳곳에 도사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피할 곳’이 되어주신다. 하나님을 두려워한 이사야의 이름은 아직도 살아 있지만,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은 민족들의 지도자들의 이름은 잊혀졌다. 이사야는 능력 얻는 비밀은 ‘여호와를 거룩하다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이 되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것들을 과감히 버려라. 하나님의 뜻만이 절대적으로 선하고 옳기 때문이다.

엘리야는 아합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여호와 앞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는 왕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무엇도,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그 누구도 우리를 해칠 수 없기 때문이다. 감옥에 가둔다 해도, 재산을 강탈한다 해도 우리를 해칠 수 없다. 우리의 목을 자른다 해도 영혼은 해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호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에게서 떼어놓는 것만이 해치는 것이다.

사람들의 손에서 벗어나라! 하나님은 사람들을 추종하는 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아첨하지 말고 비판에 흔들리지 말라. 다만 하나님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칭찬하기를 원하신다.

신앙과 세상의 경계의 회색지대에 속하는 문제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나? 이 원리는 “당신의 영적인 진보를 방해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버려라.”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겁쟁이가 되어버렸는가?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야고보는 칼로 죽임을 당했으며, 사도바울은 목이 잘렸고, 요한을 제외한 모든 사도들이 순교했고, 요한도 결국 밧모섬에 유배되었다. 교회의 역사는 냉대와 핍박과 순교의 역사가 아닌가? 그런데 그리스도인이라는 우리가 이런 교회의 역사를 뻔히 알면서도 사람들의 따돌림을 두려워하는가?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말씀 안에서 그분을 찾아야 한다. 범하기 쉬운 잘못은 묵상보다 연구를 중요시한다. ‘머리로써’ 성경에 접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으로써’ 접근하라. 교회의 문제는 ‘그리스도인의 진리’를 강조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을 강조하지 않기 때문이다. 삶을 변화시키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한다. 어디서나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세상에서 늘 바쁘지만 나침반이 북극을 향하듯 하나님을 향하라.

◆ 성령의 힘으로 세상을 제압하라

“권능을 받을 것이다”(행1:8)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제자들에게 주신 약속이다. 능력은 내부에서 오지 않고, 외부에서 임했다. 그것은 그들이 살아본 적도, 체험한 적도 없는 세계로부터 임할 능력이다.

성령님이 인간의 영의 깊은 곳에서 역사하시지만 성령님이 다른 수단들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시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영으로만 이루어진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지성이라는 도구를 주셨다. 하나님의 영은 인간의 지성을 사용하실 수 있다. 거룩한 지성, 넓고 높고 고상하고 면도날처럼 예리하면서도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부드럽고 우아하고 순결하게 변화된 지성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너희가 권능을 받을 것이다.”(행1:8)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영이 영과 마음에 역사하실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 안에 강력한 도덕적 능력을 부여하신 분이 바로 성령님이시다. 성령의 능력으로 기독교는 ‘윤리’에 머물지 않고 ‘살아 있는 영적 능력이’된다. 성령님은 우리 눈을 열어 진리를 보게 하신다. 그분의 최고의 사역은 영혼을 덮고 있는 베일을 제거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보게 하신다.

개인적인 부흥을 가로막고 있는 것들을 인정사정 보지 말고 단호히 분쇄해야한다.

첫째, 잘못된 사람들과 어울리는 사사로운 친구관계를 정리하라. 나쁜 친구들과 사귀면 영적 성장이 중단되거나 느려진다.(눅14:26) 친구관계가 영적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면, 전화로든 편지로든, 직접 찾아가서 반드시 그 관계를 끊어라.

둘째, 개인적 습관을 바꾸라. 신앙의 진보를 가로막는다면 나쁜 습관을 뿌리 뽑아라. 습관이 옳은지 판단할 수 있는 척도는 “나는 나의 습관을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할 수 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셋째,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으라. 하나님은 비도덕적인 것을 용납지 않으신다. 그것을 용납할 경우 그분의 영광이 손상되기 때문이다. ‘원상회복’ 때문에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원상회복’은 마음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을 벗겨주고 인간관계를 바로잡아준다. 죄를 사람들에게 고백하는 것이 아무 유익이 없다고 판단된다면, 그것을 그리스도의 보혈 속에 영원히 묻어두라. 하나님이 그곳에 묻으신 것을 다시 꺼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넷째, 사람들과 관계를 바로잡으라. 매스미디어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냉소적이고 무정한 성격이 됐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가서 그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는 부드러운 사람들이 되기 원하신다.

다섯째,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잡으라.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그 다음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이며, 마지막이 나 자신과의 관계이다.

◆ 세상과 구별된 참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라

죄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라.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소리만 하게 된다.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우리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우리는 존재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출 3:10-14) 하나님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근거요 원천이시다. 하나님은 무한하고 영원한 영이시다. 그분의 존재, 지혜, 권능, 거룩함, 공의, 선함,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이분이 바로 ‘스스로 계신 분’이시다. 하나님의 신비를 다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해 그분에 대해 표현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에게는 기원이 없다. 그분은 창조주로서 어떤 시작도 없으시다. 그러나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에게서 나왔으므로 그분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대적 존재들이다. 자존하시는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를 향하신다. 그의 마음은 자식을 품에 안고 싶은 갈망으로 가득하다.

영국의 위대한 시인 페이버(F.W. Faber, 1814-1863)는 “하나님은 자신에 대해 경탄하시고 자신을 사랑하시지만, 이것이 죄는 아니다.”라는 글귀를 남겼다. 모든 사랑은 그분에게서 흘러나와 다시 그분에게 돌아간다. 하나님의 자기 사랑은 천사들조차 흠모하는 ‘가장 거룩한 것’이다.

죄는 무엇인가? 피조물이 “내가 높아지겠다.”고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이다. ‘피조물이 ‘창조주’ 보다 높아지려는 것이다. 죄는 여러 가지 증상과 모양으로 마음의 죄, 의지의 죄, 감정의 죄, 육체의 죄 등 이 있지만, 이것들은 모두 ‘자아’에서 완고함, 이기심, 교만 등이 모두 ‘자아’에서 나온다. 본래 자아는 나쁘지 않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아를 주셨지만, 자아를 잘못 사용하여 그분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우리는 각기 제 길로 갔다.”(사53:6) 죄의 본질은 하나님의 뜻보다 나의 뜻을 앞세우는 것이다.
예수님을 구세주(救世主, Savior)로는 영접하지만 주(主, Lord)로는 영접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 분이시다. 그분은 그분이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을 구원하실 수는 없다. 그분을 주(主)로 영접치 않는다면, 그분을 구세주로도 영접할 수 없다.

주님이 나의 주인 일수 없다면, 나를 사망에서 건져내실 수 없다. 자아는 죄의 요체다. 모두 하나님을 거역했다. 자신에 대한 지배권을 계속 손에 움켜쥐고 있는 것이 문제다!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오직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라.”(눅9:23) 자기 부인은 고국을 떠나 선교사로 가거나 돈벌이 좋은 직업을 버리고 목회자가 되란 말이 아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직업을 버리고 전도하러 돌아다닌다.

더 깊은 차원에 ‘자아’가 죽지 않으면, 그것이 당신을 죽일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영 안에 도사리고 있는 반역자요,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는 고집쟁이요, 당신을 짓밟고 죽이려는 못된 존재다. 십자가만이 당신 속의 원수를 죽일 수 있다.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 편에 서라. 하나님께 장차 어떤 일을 하겠다고 말씀드림으로 하나님 편에 서야 한다.

첫째, 죄의 문제를 철저히 해결하라. 어린이든 어른이든 모두 죄인임을 깨닫고 자기에게 구원이 필요함을 알라. 죄의 문제를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둘째,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겠다고 서원하라.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를 위해 큰일을 행하시기 전에 반드시 세상의 것들에 대한 욕심을 버리게 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이 물질을 소유하는 것을 금하지 않지만, 물질이 당신을 소유하는 것을 금하신다.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칼로 죽여라. 그것과 함께 죽으면 하나님이 당신을 모두 다시 살리시고, 그것을 당신에게 돌려주실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당신 안에 있지 않고 당신 밖에 있을 것이다. 그것이 당신 안에 있을 때에는 당신의 마음을 짓누를 것이다. 과거에 당신은 그것 때문에 자신을 들여다보았겠지만 그것이 당신 밖에 있다면, 당신은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셋째, 험담을 하지 않겠다고 결단하라. 주님의 교회에서 험담은 아주 치명적일 수 있다. 당신은 때때로 어떤 사람에 대한 진실을 말해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말고 일반적인 경우, 남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를 전하지 말라.

넷째, 자신을 방어하지 않겠다고 서원하라. 산상수훈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교훈 중 하나가 ‘저항하지 말라’다. 당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소리가 들리는가? 당신이 그것을 해결하겠다고 동분서주하지 말라. “나는 억울하다. 공정하지 않다”라고 말하지 말라. 이 말은 사탄이 만들어낸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다섯째,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겠다고 서원하라.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결점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단 1퍼센트도 도둑질 하지 않을 정도로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 세상 기쁨을 버리고 영원한 영적 평안을 얻으라.

‘무엇이 될 뻔하다. 마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아그립바 왕은 바울의 복음전도에 깊은 감동을 느꼈다. 그뿐 아니라 바울을 둘러싸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움직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그립바는 “네가 나를 설득하여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뻔했다”(행26:28)라고 말했다. 그는 일생 최대의 비극적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이런 실수는 난파, 지진, 전염병 같은 재앙들에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저주스러운 것이다. 복음을 들었지만 거부하는 사람, ‘언젠가는 믿으리라’고 다짐하지만 돌아서서 지옥으로 가버리는 사람들, 이들의 궁극적인 선택은 복음의 거부이다.

가롯 유대도 인간이었다. 그가 한 인간으로서 모든 면에서 철두철미 악하고 저질이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결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만일 그가 평소에 악하고 저질적으로 행동했다면 주변 사람들은 그가 예수님을 팔 것이라고 금방 의심했을 것이다. 그가 극악무도한 죄를 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그것을 후회하며 가책을 느낄 정도로 심장이 살아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가 성 유다가 될 뻔했다.

좋은 옷 입고 고급 승용차를 몰지만 실상 죽은 사람들로서 걸어 다니는 시체라 할 수 있다. 누군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었다. 세월이 흘러 늙은 그들은 ‘살았으나 죽은’ 사람이 있다.

고독하더라도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라. 렘6:16절上 하나님의 사람 예레미야가 2,500년 전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16절 下반절 내용은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도다.” 이 부분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건강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닌 만나는 싫어하고 더 맛있고 짜릿한 것을 원하는 인간의 자연스런 본능이요, 죄악 된 본성이다. 선하고 좋은 것에 싫증을 내는 심리!

보수적 기독교인들은 신앙적 침체상태에 빠져 있다. 그 원인은 하나님께 싫증을 내기 때문이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성자들처럼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만족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별종, 극단주의자, 광신자 등으로 불린다. 그리스도인들 중에 이런 사람이 나타나면 흥을 깨는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하나님의 임재의 체험이 주는 즐거움은 온갖 문명의 이기와 문화적 산물이 주는 즐거움보다 더 크다. 세상의 즐거움에 탐닉하다 못해 그것에 싫증을 느끼는 세대는 이 깊은 진리를 알지 못한다.

출처 : 하나님의 기쁨
글쓴이 : 김장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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