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막달라(Magdala)의 전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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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베리아에서 가버나움으로 가는 6.4㎞ 지점에 막달라가 있다. 그리고 갈릴리 바다 바로 맞은 편(지금의 골란고원)엔 거라사(Gerasa, 또는 가다라, Gadarenes)가 보인다. 지금은 한산한 어촌이지만 예수 당시는 중요한 도시였다고 한다. 히브리어로 성벽(城壁)이란 의미의 막달라는 갈릴리의 방백(지방장관)이며 유명한 역사학자였던 요세프스(Josephus, AD 37-100)의 기록에 의하면 한때 4만 여명의 주민과 230척의 배가 있었다고 한다. 이 도시는 AD 70년경 로마의 티도(Titus)에 의하여 함락되었을 때, 6000명의 유대인이 죽었으며 건강한 청년 6000명이 로마에 포로로 끌려가 고린도 운하공사에 동원되었고, 3만명은 노예로 경매되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막달라는 이때 완전히 파괴되고 고향 막달라에 살아 남은 주민은 거의 없었다는 슬픈 전설이 있는 땅이다. 그러나 그 막달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잃어버린 도시지만 성경 속에 기록된 막달라 마리아의 고향으로 길이 그 이름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신약성경 4복음서에 의하면 막달라 마리아는 여인 중 가장 예수님의 큰 사랑을 받은 사람이고 또 가장 주님을 사랑한 여인이다. 그녀는 주님의 은혜로 일곱 귀신과 병을 내쫓음 받았고(눅8:2), 주님을 섬기며 골고다의 십자가 곁과 무덤까지도 따라갔고(요19:25, 마27:55-56, 61, 막15:40, 47), 예수를 장사한 후 사흘째 되는 새벽에 무덤을 찾아가(마28:1, 막16:1, 9-11) 제일 먼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사람도 그 여인 이였다.(요20:1-18, 눅24:10)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예수의 남자 수제자가 베드로라면 여자 수제자는 막달라 마리아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어떤 이들은 이 막달라 마리아가 일곱 귀신과 병이 들었던 여자라는 이유로 누가복음 제7장 36-50절에 나오는 어떤 죄 많은 여인(창부)과 동일시하는 오해를 범하고 있기도 하다. 귀신 들린 것, 또는 병든 것과 부정절(不貞節)한 부도덕성과는 전혀 별개의 차원이다. 다만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강조하기 위하여 막달라 마리아를 귀신 들리고 병들고 죄도 많은 여인으로 동일시한 것 같다. 나는 오히려 막달라 마리아는 훌륭한 신앙 인격과 순결한 도덕성을 갖춘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이미지(Image)를 그리며 막달라를 지나갔다.
- 해설 : 거라사의 권능사건
막달라와 거라사는 갈릴리 바다를 약 11㎞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대안(對岸)의 땅이다. 이 거라사 땅에 귀신의 군단(Legion)에 사로 잡혀 돌로 제몸을 상하고 있던 사람을 예수께서 그 더러운 귀신들을 내쫓아 주셨다. 그 귀신들이 그 부근에 있던 2000마리나 되는 돼지 떼에 들어가매 이 돼지 떼들이 갈릴리 바다에 내리 달아 몰사했다. 이 사건의 소식은 온 데가볼리(지금의 시리아와 욜단지역)에 전파되어 그곳의 이방인들을 놀라게 했다.(막5:1-20, 마8:28-34) 오늘날도 온갖 물신(物神)과 하나님을 부인하는 가치관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이 거라사의 귀신 들린 사람의 모습과 같다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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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한 오늘의 막달라(Magdala)(1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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