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본서에는 저자의 이름이 직접 밝혀있지 않으나, 본문을 살펴보면 저자는 다음과 같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1. 팔레스타인에 거주한 유대 인이었다. 이것은 그가 유대 인의 절기(2:13; 6:4; 13:1)와 풍습에 익숙하다는 점, 그리고 그가 팔레스타인 지형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2. 팔레스타인에 거주한 유대인이었다. 그는 팔레스타인의 지형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었다. 3. 본서에 기록된 사건의 목격자였다. 그 자신이 목격자임을 스스로 증언하고 있으며(1:14; 19:35; 21:24), 발생시기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4. 열두 제자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에 참여했다는 사실(13:23-25)과 베드로의 친한 동료였었다는 사실
(1:35-42; 13:23, 24)이 이를 말해 준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보면, 본서의 저자는 사도 요한임이 드러난다. ■ 저작 연대와 장소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요한이 에베소에서 설교하고 저작활동을 했던 때부터 밧모섬으로 유배 당하기 이전인 A.D. 80-90년경에 에베소에서 본서가 기록된 것으로 보고 있다. ■ 저작 목적 요한은 20:30, 31에서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는 말로 본서의 저작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나아가 주석가들은 몇 가지 부수적인 저작 목적도 지적한다. 먼저 공관복음을 보충하기 위한 목적이다. 즉 예수님의 생애와 활동에 관한 외적인 사실을 취급한 복음서들이 이미 쓰여졌지만, 요한은 이것들보다 더 깊은 '영적인 복음'(이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가 한 말임)을 쓰려고 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케린투스의 오류를 논박하기 위한 목적을 들 수 있다. 케린투스는 사도 요한의 시대에 살았던 인물로서, 성령으로 인한 예수님의 초 자연적인 출생과 부활, 곧 신성을 부정하였다. 이런 까닭에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오, 완전한 신성을 입으셨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세례 요한에 관한 그릇된 견해를 바로잡기 위한 목적도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그의 존재 의미는 오직 예수님을 증거하는 데 있었음을 강조한다(참조 1:19-23, 25-27, 29, 36; 3:27-36). |
요한복음은 여러 면에서 공관복음과는 다르다. 그 중 중요한 몇 가지를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1) 장소와 시간을 들 수 있다. 예수님이 활동하신 장소에 대해 마지막 주간만 제외하고 공관 복음에서는 주로 갈릴리 사역을 다루고 있으나, 요한복음에서는 유대 지방에서의 사역이 강조되었다. 시간상으로도 공관복음은 한 번의 유월절만을 언급하여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이 1년인 것 같은 인상을 주는데 반해, 요한복음은 세 번(2:13; 6:4; 13:1) 내지 네 번(5:1) 언급하여 공생애 기간이 3년 이상이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2) 언어상의 용법을 들 수 있다. 공관복음에서 특징적인 표현 형식은 비유이며, 또한 여기에서 교훈적인 진술을 가미한 짧고 생생한 구절들과 쉽게 기억될 수 있는 간단한 사건들이 많이 나타난다. 반면에 요한복음에 기록되 예수님의 교훈은 긴 강론형식으로 되어있다. (3) 관점을 들 수 있다.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나라'에 중점을 두고 있느데 반해, 요한복음의 강론들은 대부분이 예수님 자신에 관한 것과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특별히 영생이라는 주제에 집중되고 있다. (4) 전체 구조를 들 수 있다. 공관 복음에 나타나는 예수님 교훈의 기본적인 구조는 '오는 세대'(the age to come)가 되면 현재의 역사가 종지부를 찍고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것이라는 시간적인 선적(線的)구조를 지니고 있다. 즉, 공관복음이 제시하는 세계와 역사의 구조는 이 세대와 오는 세대, 현재와 미래 사이의 종말론적인 이중 구조로 대치되어 있다. 즉 현재와 미래의 긴장 대신에 위와 아래, 하늘과 땅, 하나님의 영역과 세상의 영역 사이의 긴장이 존재하고 있다(참조. 요 8:23; 3:12-13, 31; 6:36, 62). |
요한복음은 매우 순수하고 간결한 헬라 어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신학적인 통찰력은 대단히 무게가 있고 심오하다. 본서는 영원한 아들, 곧 로고스(말씀)로서의 예수님을 주제로 삼고 있는데, 그 분은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세상이 창조될 때 하나님과 함께 일하셨다(1:3). 본서 전체에는 '나는 …이니라'는 말씀이 일곱 번 반복되어 나온다. 즉, ① 생명의 떡(6:35) ② 세상의 빛(8:12) ③ 양의 문(10:7) ④ 선한 목자(10:11) ⑤ 부활이요 생명(11:25) ⑥ 길이요 진리요 생명(14:6) ⑦ 참 포도나무(15:1) 등이다. 그런데 '나는 …이니라'는 말씀은 구약에서 매우 중요한 구절이다. 이 말은 불타는 가시 덤불 속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이 자신을 표현하는 형식으로서(참조. 출 3:14), 신성(神性)을 표현하는 말이다(참조. 창 17:1; 출 15:26; 35:3; 렘 3:12). 또한,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행하신 놀라운 기적들을 '표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유일한 복음서이다. 나아가 요한은 유일하게 보혜사, 곧 성령님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나눌 때, 예수님은 앞으로 오실 성령님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예수님은 성령님이 자신에 대해 증인이 될 것이지만, 성령님의 사역은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나서 시작될 것이라고 하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