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공항동으로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귤차 마셨던 찻잔을 씻으려고 물 속에 담갔다가 무심코 설겆이 물을 버리는데 5-6마리의 개미가 눈에 띄었다. 귤차 냄새를 맡고 찻잔에 들어 왔던 개미들이 나의 무신경으로 봉변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생명을 함부로 살육했던 과오를 뉘우치면서 개미를 관찰하게 되었다. 공항동 집에는 지난번에 살았던 집에서는 볼 수 없는 실개미(길이 2.5mm)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나는 사과하는 뜻에서 빈 찻잔에 귤차 찌꺼기를 담아서 개미들이 잘 다니는 길목에 놓아 두었더니 백마리도 더 되는 개미들이 몰려들곤 했다.
나는 개미가 보기 좋지 않지만 개미들이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개미를 사육할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나는 개미와 벌레들이 꾀지 않도록 귤차 찌꺼기를 치우고 집 안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청소를 했다. 그렇게 개미와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오래지 않아 개미와의 동거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10개월이 지난 어느날이었다. 나는 벌레가 살갗을 무는 촉감에 놀라 잠에서 깨었다. 과거에 이(몸에서 사는 벌레) 벼룩과 함께 살았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 때는 근지럽고 징그럽기는 했어도 벌레들이 살을 무는 일은 없었다.
나는 벌레를 찾으려고 옷을 벗고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다. 착각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그로부터 벌레 무는 현상이 계속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새끼 실개미가 나를 무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새끼 실개미는 눈에 잘 띄지도 않을 만큼 작았다.
나는 10개월 동안 동거동락했던 개미들이 왜 공격적으로 나오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먹이를 주는 일에 인색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고 귤차 찌꺼기를 놓아보기도 하고 냄새가 나게 마른 멸치를 놓아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모기와 파리는 모기장을 치면 되지만 실개미는 몸통이 모기장 그물보다 작을 뿐 아니라 요 밑으로도 자유자재로 다닐 수 있어서 실개미의 공격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사랑과 배려로 충만한 작은 하나님으로 살고 싶지만 실개미와의 동거는 견딜 수가 없었다.
약국에서 개미콘트롤이라는 개미약을 샀다. 개미콘트롤은 개미들이 싫어하는 냄새가 나기 때문에 5-6개월 부착하면 개미들이 집에서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개미콘트롤을 개미들이 잘 다니는 길목과 싱크대 밑이며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에 부착했다.
소용이 없었다. 개미콘트롤 가까이 개미들이 다니는 것이 목격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분사용 살충제를 사게 되었다. 살충제는 약 냄새가 지독하여 분사 후에는 2-3시간 집을 비워야 한다고 하니 그것은 실개미들을 전멸시키는 방법일 수밖에 없다.
내가 살충제를 사다 두기는 했지만 살충제를 분사하면서까지 실개미들을 멸종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들도 살아야 하는 나와 같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귀찮고 성가시는 일이 있더라도 부분 살육을 할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실개미들이 공격성을 포기하든가 아니면 견딜 수 없으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든가 양단간에 택일하는 방법을 찾으라는 것이 나의 전략이고 작전이었다.
나는 냄새가 나는 음식물 찌꺼기를 그릇에 담아 개미들이 다니는 길목에 놓아 두었다가 개미들이 몰려들면 물 속에 담가서 하수구에 버리는 방법으로 부분 살육을 시작했다. 나의 함정법이 잔인하기는 하지만 개미들의 생명 모체인 여왕개미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므로 여호와가 홍수로 인간의 씨를 말리려고 했던 것 보다는 훨씬 덜 잔인한 방법일 것이다.
여와개미에게 경고한다!
겨울이 시작된 것을 생각하여 해동이 되는 내년 3월 말까지 시간을 줄 것이니 여왕개미는 수하의 개미들이 나를 공격하지 않도록 명령을 내리든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든가 양단간에 택일하라!
나의 경고를 무시하면 나는 내년 4월에 살충제로 너희의 씨를 말리게 될 것인데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순전한 너희들의 책임이 될 것이다. 너희는 나의 경고를 알지 못했다고 핑계를 댈 수 없다. 너희들은 지진이 나고 화재가 발생할 것을 미리 알고 피할 줄 아는 영특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아마존 밀림에서 사는 개미는 2마리가 한 조가 되어 행동한다고 한다. 한 마리가 10미터 높이의 나무에 올라가 나뭇잎 밑둥을 입으로 쪼아 땅에 떨어뜨리면 낙하지점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른 한 마리는 떨어진 나뭇잎을 식량으로 쓰기 위해 입으로 물고 집으로 나른다는 것이다.
인간이 컴퓨터를 수 수백년 발전시켜도 인간은 63빌딩 옥상에서 떨어뜨린 A4 한 장의 낙하지점을 찾을 수 없는데도 너희는 수 만년 전부터 그런 일을 다반사로 행하면서 살아 왔으니 그런 예지력과 초능력 덩어리들의 너희가 씨를 말리려는 나의 생각과 전략을 알지 못하고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나는 잔인한 작은 하나님이 되고 싶지 않다. 여왕개미는 내가 너희와의 동거를 용인하고 허락한다는 것을 생각하여 현명하게 처신하기 바라겠다.
딸들이 사랑과 배려로 충만한 작은 하나님이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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