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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은둔-세상에서 가장 먼 만행>조연현 지음/오래된미래·8800원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4. 14. 09:49
 

선사 33인 마음속 은둔처소로 떠나다

‘나’ 위해 밖으로만 내달리는 시대

세상 속 은둔해 ‘무아적 삶’ 실천한

그들의 흔적 찾아헤매 얻은 이야기

  

<은둔-세상에서 가장 먼 만행>

조연현 지음/오래된미래·8800원

 

 

“짚신을 다 삼고 마지막 신골을 망치로 칠 때였다. ‘탁!’ 그 순간 망치 소리에 억겁 동안 무쇠처럼 감싸던 껍질이 산산이 부서져버렸고, 온 세포까지 집중했던 의심뭉치의 밑창이 몰록 빠져버렸다. (…) 이제 보는 놈과 보이는 놈, 참선하는 놈과 찾아야 할 대상이 함께 사라졌으니 대자연이 천연 그대로일 뿐이었다.”


나뭇가지를 잡고 선 채로 열반에 들었다는 혜월 선사의 ‘은둔’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혜월 선사는 “세상의 소란을 탓하지 않고 이미 내 마음속에 있는 극락의 바다, 은둔의 처소에서 천국과 극락을 살았다." 그러기에 〈은둔※세상에서 가장 먼 만행〉이라는 책의 제목은 역설적이다. 책에서 소개한 ‘은둔의 선사’ 33인이 찾아간 은둔의 처소는 바로 자신의 마음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마음속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해 ‘세상에서 가장 먼 만행’이 된다. 모든 선승들의 스승이라는 달마조차 이 길에 오르기 위해 수마를 쫓으려 눈꺼풀을 싹둑 베어버렸다지 않는가.


지은이 조연현(〈한겨레〉 종교전문기자)씨는 “어떤 연애보다도 깊고 뜨거운 날들”을 보내며 이 선사들의 흔적을 찾아 헤맸다고 말한다. 깊은 산사의 암자와 선방과 토굴을 뒤지고, 스승의 이야기를 가슴속에만 간직하고 있는 수행자들의 마음이 열리기를 간절히 청했다고 한다. 그렇게 얻은 이야기 서른세 자락은 “아집에서 해탈하는 것이 불교라지만 불자는 ‘불교’에 갇히고, 선승은 ‘선’에 갇히는 게 다반사”라는 세간의 통념을 깨뜨린다.

 

혜월은 산비탈을 개간해 논을 만들어 절 대중을 먹여살렸기에 ‘개간 선사’로 불렸다. 그는 힘들게 일해 추수한 쌀가마를 도둑이 지게로 이고 가려 끙끙대면 뒤에서 지게를 살짝 밀어주며 “먹을 것 떨어지면 또 오게나” 손을 흔들었다. 호랑이도 떼 지어 절을 올렸다는 경허는 속세에 숨어들어 ‘박난주’라는 다른 이름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다 입적했다고 한다.


존경받는 선사였던 수월은 어떤 것을 들어도 잊지 않고, 손으로 만지기만 하면 병자를 낫게 하고, 잠을 자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도 한낱 나무꾼으로 머슴처럼 일했다. 절에 온 손님들의 발 감싸개를 벗겨 빨아 말리고, 밤새 짚신 서너 켤레를 삼아 손님 가는 길에 들려줬다.


그럼에도 세상은 이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지은이는 찻잔을 손에 든 채로 좌탈입망한 혜수에 대해 이렇게 쓴다. “방장이나 조실이었다면 달마나 육조 같은 조사들이나 하는 것으로 전해진 좌탈입망이 현실로 나타났다며 세상이 요란할 일이었지만, 떠돌이의 법구는 조용히 불태워져 산에 뿌려졌다. 탑도 세워주는 이 없었고, 상좌 하나 없으니 그를 기리는 제사도 없다.”


세상이 이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이들이 “‘승가’라는 안온한 울타리를 벗어던지고 세상 속에 은둔”했기 때문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어떻게 ‘세상 속의 은둔’이라는 말이 가능한 걸까. 깨달음을 가능케 한 ‘무아적 삶’의 가치가 예나 지금이나 세상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아 ‘은둔’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속 은둔의 성소에서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고행은 남김없이 이들 몫이었지만 이들은 아무런 대접도 바라지 않았다.


지은이는 “오직 내 몸뚱이와 내 감정과 내 소유만 중시하여 서로 갈등하는 세상에서, ‘나’의 부와 권력과 명예와 지식과 권위를 쟁취하려 밖으로 밖으로만 내달리는 시대에 이런 ‘무아’적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묻는다. 이런 물음 끝에 지은이가 찾아낸 ‘은둔의 선사’들이 활자를 통해 “생생히 살아나고 있으니 이들은 간 것인가, 온 것인가”, ‘은둔’한 것인가, ‘출세’한 것인가?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출처 : 본연의 행복나누기
글쓴이 : 본연 이해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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