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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1강) 시편 20:1-9 우리의 자랑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5. 29. 05:57

 

 

 

 

 

 

 

 

(21강) 시편 20:1-9  우리의 자랑

 

 

은석교회 신윤식 목사

 

 

 

 

 

 

 

 

 

<본문>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으시기를 원하노라(셀라)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도모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너의 승리로 인하여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기를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바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 오른손에 구원하는 힘으로 그 거룩한 하늘에서 저에게 응락하시리로다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저희는 굽어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여호와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왕은 응락하소서 (시편 20:1-9)
 

 

 


<설교>


만약 남과 북이 전쟁을 하게 되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어떤 기도를 하겠습니까? 두말 할 것 없이 ‘대한민국을 도와주셔서 승리하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 승리를 기원하는 기도를 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대한민국이 승리할 수 있을까?’라는 염려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남과 북의 군사력을 계산해 보면서 과연 누가 이길 것인가?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승리를 기원하는 기도는 무엇입니까? 결국 행여 하나님이 도와줄지도 모른다는 요행을 바라는 마음일 수도 있고, 답답한 마음에 기도나 해보자는 식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믿고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군사력인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본문의 기도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은 전쟁을 나가는 왕을 위해 백성들이 승리를 기원하는 기도를 드리고(1-5절), 그 기도에 왕이 응답하는 내용(6-9절)으로 되어 있습니다. 백성들은 왕의 승리를 위해 기원하고 있지만, 그 기원은 단순히 하나님이 왕을 도와서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바란다는 막연한 기도가 아닌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지금 우리들의 기도와는 차원을 달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우리의 기도는 앞서 말한 대로 단지 막연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는 기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가 끝나면 또 다시 군사력을 계산하면서 눈에 보이는 군대와 무기를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왕을 위한 백성들의 기원은 우리들의 기도와는 맥락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1-3절을 보면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으시기를 원하노라(셀라)”고 기도하는데, 이 기도는 성소와 연관된 하나님의 언약을 의지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환난 날에 여호와가 왕에게 응답하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왕을 높이 드실 것이라는 것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의 기도인 것입니다. 인간의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은 이런 분이기 때문에 왕을 도울 것이고 왕을 높이실 것입니다라는 의미의 기도인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는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의 상식에 의한 대로 ‘하나님은 열심히 기도하면 응답하신다’는 것만 생각하면서 무작정 기도에 열심을 보이려고 할 뿐입니다. 응답을 받는 것에만 관심을 두면서 말입니다. 3절에서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으시기를 원하노라”고 말하는 것도, 왕의 제사와 제물을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을 바라보는 자의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백성의 기도에 대한 왕의 응답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바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 오른손에 구원하는 힘으로 그 거룩한 하늘에서 저에게 응락하시리로다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저희는 굽어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여호와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왕은 응락하소서”(6-9절)입니다.

 

 

 


왕은 응답하기를 여호와는 자기에게 속한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분임을 안다고 말합니다. 기름 부음은 ‘너는 내 것이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구별하여 택한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별하여 세운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키시고 도우시고 승리하게 하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왕이 믿고 신뢰하는 것은 하나님은 택하여 세운 자를 버리지 않고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전쟁에 나가는 왕으로부터 모든 근심을 사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택한 자를 오른 손의 구원의 힘으로 지키십니다. 그래서 왕은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병거와 말보다도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전쟁을 병거와 말로 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즉 군사력이 승리를 결정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과연 누구겠습니까?

 

 

 


사람의 연약함은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것에 더 신뢰가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말하다가도 세상이 보이면 세상이 더 큰 힘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 우리들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살기 보다는 항상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결과를 기대하면서 살아갑니다. 몸에 병이 들었으면 병든 상태에서도 예수님의 은혜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소원하는 것이 아니라 병이 낫게 되는 것에서 은혜를 맛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들이 본문의 기도와 너무 다르다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하나님이 내 편이 되셔서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달라는 기대감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기대감이 아니라 전쟁을 하기도 전에 이미 승리했다는 확신이 담겨 있습니다 군사력, 즉 병고와 말의 숫자를 보고 승리를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아는 것이 승리를 확신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지만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이 지켜온 힘의 논리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이 힘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믿고 전쟁을 나가도, 전쟁을 하기도 전에 승리를 확신하는 것은 세상이 볼 때 미련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나라가 이스라엘이었던 것입니다.

 

 

 


신자가 알아야 할 것은 세상에 진정한 힘은 없다는 것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 중에서 가장 강국이라고 하는 미국도 산불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을 보면서 세상의 힘을 다 모은다고 해도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바람조차도 이길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절감해야 합니다. 그만큼 무능하고 나약한 것이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그것을 깨닫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믿는 것은 항상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이고, 하나님께 구하는 것도 눈에 보이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한다고 해도 보이는 것이 주어짐으로써 힘을 갖게 되었을 때 그 기쁨에 대한 반응에 불과할 뿐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믿음이 아니었다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절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으로 기뻐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주시는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 때문에 기뻐하십니까? 무엇이 진정한 믿음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전쟁을 하기도 전에 승리를 확신하는 것은 ‘우리가 이렇게 정성을 다해서 기도했으니까 하나님이 응답하실 것입니다’라는 기대로 인한 확신이 아닙니다. 즉 내가 기도했으니까 하나님이 응답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왕이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바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 오른손에 구원하는 힘으로 그 거룩한 하늘에서 저에게 응락하시리로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 기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기에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실 것인가를 이미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부디 이 점을 깊이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운 하나님께 속한 자를 버리지 않으시고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어떤 조건과 형편과 환경에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구원은 포기되지 않고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속한 신자는 자기 구원을 두고 염려하거나 근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행함을 바라보게 됩니다. 구원의 여부를 자기 행함을 근거로 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열심히 교회 다니고 신앙생활 잘했으니 나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근거를 하나님께 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두는 불신앙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설사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 믿음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절대로 그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징계하시면서 까지 믿음으로 돌이키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이 열심이 죄인의 괴수일지라도 생명에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자랑할 것은 하나님의 이름 밖에 없습니다. 병거와 말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자비를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의 자랑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도를 보면 힘을 얻기 위한 기도 밖에 없습니다. 온통 자기 소원만을 가지고 하나님을 부릅니다. 이러한 것이 얼마나 허망한 기도인가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의로우신 피를 보시고 나를 용서하시고 깨끗케 하셨음을 믿고 감사하는 것이야 말로 참되고 진실된 기도인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즉 하나님의 모든 일은 우리에게 선으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만을 신뢰하면 됩니다. 이것이 승리의 삶입니다. 지금 나의 형편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이 곧 승리입니다.

 

 

 

 

 

 

출처 : 심플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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