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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도보여행 8일차(9. 17) - 고창 선운산 등반 -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9. 27. 08:41

 

9. 17(목) 맑음.


아침에 알람시계를 3회 반복으로 해두었는데도 듣지 못하고 늦잠을 잤다. 덕분에 7시에 황태해장국집에서 만나기로 했던 김선배가 날 찾아 허겁지겁 모텔로 돌아오기도...왜 그다지 피곤했을까? 어제 걸었던 거리는 다른 산행 포함 코스에 비해 불과 5~6km 정도 더 길었던 평지였을 뿐인데 말이다. 산길은 산길대로 오르막길의 수고가 있으니 평탄한 지형을 걷는 것이 훨씬 쉽지 싶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물집이 생기고, 아침에 제 때 못일어날 정도로 어제 포장도로 걷기가 힘들고 체력 소모가 많았을까? 그렇게 추측은 되지만 실상은 잘 모르겠다.

 

오늘 컨셉은 높지도 않은 선운산의 산길을 그냥 걷는 거였다. 정상인 <낙조대>도 390m에 불과한 작은 산이다. 그런데 오판이었다. 산은 그저 산이 아니었다. 옛날 십수 년 전 내가 이 산을 걸었을 때는 <선운사>에서 <도솔암>까지의 짧은 거리를 그저 산책하듯 걸었던 것이고, 오늘 내가 그 환상에 취해 도전해본 도솔암 플러스 알파는 천양지차의 산이었다. 오늘 걷기 시작은 9시 30분. 예정은 5~6시간의 산길 걷기를 작정하고 도솔암을 지나 낙조대에서 국사봉 방향으로 산 능선을 탈 계획이었다. 그런데 도솔암까지 오르는 길은 여전히 완만하면서도 빛을 가득 머금은 숲길의 축복을 우리에게 선사해주었다. 오죽하면 동백꽃도 없는 계절에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하는 서정주시, 송창식의 노래를 읊조리며 올라갔겠는가?  

 


하지만 도솔암 이후는 참 힘든 코스였다. 그것은 국망봉, 낙조대, 국사봉 따위의 바위 봉우리를 오르는 땀의 수고 뿐만 아니라, 도솔암이 안겨다 준 충격까지 더해진 심신 양면의 곤란이었다. 도솔암은 그 옛날(사실 십몇 년 전이면 그리 오랜 과거도 아니다)의 모습이 아니었다. 지금 도솔암 찻집이라고 간판을 단 집이 아마도 과거 도솔암자리였을 것이고, 그 위에 자리한 지금 도솔암은 새로 터를 닦고 신축한 건물일 것이다. 옛날의 도솔암을 추억하며 찾아간 나로서는 그것 자체도 참으로 어리둥절하고 실망스러운 일인데, 그 새 도솔암 주변은 무슨 불사를 또 벌이는지 온통 장바닥 비슷한 분위기였다.

 

도솔암을 기준으로 기억하고 있는 낙조대 등산길도 그 때문에 잘못되어 <내원궁>까지 막다른 계단길을 100여개나 올라야 했다. 내원궁에서는 또 무슨 법회가 열리는지 염불소리가 건너편 낙조대까지 시끄럽게 따라왔다. 끝을 보고서야 잘못을 깨달은 내가 다시 내려와 제대로 된 등산길을 찾아 붙었지만 또다시 가파른 계단길! 나는 큰 어려움없이 다시 올랐지만 우리 김선배는 마냥 힘들어하는 눈치였다. 되게 미안했다. 과거 큰 심장수술을 한 전력이 있는지라 아무래도 숨이 차오르는 오르막길 등반은 무리가 있는 듯했다.


그래서 낙조대에서 국사봉 쪽으로 걷다가 능선길을 계속 타지 않고 <참당암>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을 택했다. 지도상으로 보면 그렇게 해서 다시 포갠바위-마이재 쪽으로 오르는 길이 훨씬 순탄해보였기 때문이다. 아까 초입에 들렀던 안내소에서도 비슷한 설명을 해 주었고...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등고선을 감안하지 않은 서툰 지도라는게 마냥 그림 차원에서 보여주는 얄팍한 눈속임은 사람을 얼반 죽여놓을 수도 있는 흉기였다. 12시 조금 넘어 우리는 참당암 부근에서 싸갖고간 김밥을 점심으로 먹어치우고 나서 완만한 경로를 보여주는 지도를 보면서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길을 나섰다. 그런데, 아이쿠... 산을 하나 완전히 새로 넘는 코스가 아닌가? 참당암에서 포갠바위까지 700m라는 표지판을 보고 나섰는데 오르막 산길을 오르며 그 놈의 700이 도무지 좁혀지지가 않는다. 덕분에 온 몸이 땀범벅이었다. 아마 오늘이 길 나선 후로 가장 땀을 많이 흘린 날이 아닐까? 하지만 그 땀은 봉우리에서 내려다보이는 절경만으로도 충분히 보상되고도 남았다.  

 

그렇게 해서 간신히 능선길에 올라서고 마이재까지 가서 하산을 시작했다. 이후의 하산길은 큰 어려움없이 순탄했다. 선운사 옆문을 거쳐 주차장 부근에 도착하니 오후 2시 30분이었다. 오늘은 이곳에서 내일의 걷기 코스인 변산반도까지 태워다 줄 귀인이 오기로 했다. 전주에 있는 내 친구이다. 숙소는 변산 격포항에 있는 대명콘도에 잡아 놓았다. 김선배의 지인이 예약해준 곳이다. 우리의 도보여행 중 가장 호사스러운 숙소에 자는 셈이다. 여장을 풀고 세탁을 끝내고, 그리고 오랜만에 공중목욕탕(여기서는 아쿠아월드의 한 부속시설)에서 온탕목욕까지 하고서는 격포항에 나갔다. 목욕탕에서 달아보니 8일 만에 체중이 1.5kg 빠졌다...


격포 해수욕장 바닷가의 <대전횟집>에서 해변 도로가에 테이블을 놓아줘서 우리는 조개구이와 전어구이로 이슬이를 마셨다. 정확하게는 여기 향토주를 찾아서 ‘화이트’(?). 거기 앉아서 서해바다의 노을을 전송했다. 오늘은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둘이서 각 1병 이상을 마셔 지금껏 알딸딸하다. 내일은 격포항에서 새만금까지 사단법인 <우리땅 걷기>와 부안군이 공동으로 만든 <변산마실길> 18km를 걸으려 한다. 원래 없던 스케줄이 끼어들었다. 이번 여행 중엔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코스는 처음 걷는다. 작년의 자전거 전국여행이 해안선 일주였던만큼 이번에는 가급적 내륙으로만 돌려고 했는데 오다보니 운명처럼 변산까지 오게 되었다. 작년에 새만금 부근에서 자전차가 고장나 부안읍으로 돌아갔다가 거기서 바로 고창으로 빠졌었는데 기어이 변산반도를 느린 걸음으로 순례하게 만드는 어떤 힘이 작용하는 듯하다. 내일 길에 대한 기대로 벌써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출처 : 김영춘 BLOG
글쓴이 : 아차산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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