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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도보여행 7일차(9. 16) - 구례~곡성의 섬진강변을 걷다 -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9. 27. 08:41

 

9. 16(수) 아침 안개 후 화창한 날씨.

 

7시에 어제 그 온천식당에서 재첩국으로 아침을 먹었습니다. 제대로 된 재첩국 맛이 아니었죠. 구례에서도 중국산을 먹는걸까? 걸어서 버스터미널로 나가 구례구행 버스를 탔습니다. 불과 10분의 거리에 요금도 1,000원. 구례의 입구라는 이름을 가진 섬진강변의 이 작은 역은 마치 동화 속의 기차역처럼 예쁜 모습을 하고 아침 강안개 속에 조금은 생뚱맞게 서 있습니다.  이 역이 흔히 구례~곡성 간 섬진강 걷기의 기점으로 알려져 있죠.

 

우리는 다시 구례교를 건너서 강 건너편으로 넘어가 좌회전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강변을 따라 곧장 북상. 이 옛 길은 왕복 2차선의 어엿한 아스팔트 도로이나 차량 통행은 아주 한적합니다. 차들로 북적대는 건너편 17번 국도와는 완전 딴판입니다. 그나마도 곡성 방향으로 가는 차는 드문드문 있지만 우리가 걸어가는 차선으로 구례 쪽으로 오는 차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그 비밀은 나중에 섬진강 천문대까지 가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침 안개가 걷히면서 섬진강이 서서히 진면목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이후부터 걷는 길은 내내 강에 대한 경외의 마음, 강을 파괴하는 자들에 대한 원망의 마음으로 일관하면서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만큼 오른쪽의 지리산 자락을 배경으로 왼쪽에서 유유히 흘러내려오는 섬진강의 모습은 아름다웠고 위대했습니다. 달리 다른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제 문학적 소양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자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무락마을을 전후해서 길은 좌우로 감나무와 밤나무로 뒤덮혀 있습니다. 밤송이들은 한창 영글어서 이제 입을 쩍 벌리고 밤톨들을 세상에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홍시감들은 아직도 푸른 색을 간직한 채 몸피를 불려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것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할 정도였지요.

 

어느덧 우리는 섬진강 천문대까지 도착했습니다. 3시간을 걸어 3/5 가량을 온 셈이었습니다. 진행 방향으로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팻말이, 그 바로 다음에는 <곡성군 가달면>이라는 알림판이 서 있더군요. 그리고 바로 왼쪽으로 빨간 색의 선정적인 다리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두가교>. 여기 사람들은 구름다리라고 주장합니다마는 전통적인 구름다리와는 달리 폭만 2M 정도로 좁다 뿐이지 철구조물로 이루어진 아주 견고한 다리였습니다. 이런 다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흔들림도 전혀 없었죠. 

 

 

시간은 11시 30분밖에 안되었지만 더 가다가는 점심사먹을 곳이 없겠다 싶어 두가교 넘어의 유원지 분위기를 기웃거리게 되었습니다. 다리 건너에는 <가정역>이란 간판을 단 2층짜리 목조건물과 그 아래 허름한 <구름다리가든>이 유이하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가정역은 지금은 폐쇄된 채 레일바아크가 도착하는 관광지가 된 곳입니다).  우리는 그중 구름다리가든에서 비빔밥 하나와 콩국수 2개를 시켜 먹었습니다. 비빔밥 하나는 누가 먹냐구요? 비벼서 둘이 나누어 먹었죠. 하나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있었습니다. 콩국수는 녹차 국수에 곡성에서 재배한 우리콩으로 만든 것이었는데 별미였습니다. 누가 이 부근에 가거든 이 콩국수는 꼭 드셔보시길...

 

다시 다리를 건너 가던 길을 재촉하는데 곡성 구간부터 아스팔트도로가 없어지고 처음에는 1km 가량의 낡은 자전거길이, 그 뒤에는 차 한 대 다닐 정도의 콘크리트 도로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비포장길이 나타나면서부터는 두 종류의 길이 엎치락 뒤치락 경합하면서 나타났습니다. 제 생각같아서는 적어도 곡성구간은 아예 콘크리트 포장을 벗겨버렸으면 어떨까 싶더군요. 차량통행도 거의 없는 길이거든요. 걷는 이들에게 편안하게 만들어진 섬진강변 흙길이 한 10km 된다면, 곡성의 이 길이 '전국에서 가장 걷기 좋은 길' top 10에 너끈히 들어갈텐데 말입니다. 군수 프로젝트라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곡성군수님이 부디 이 글을 읽기를 소망합니다.

 

도깨비상을 지나고 그늘이 적당히 드리운 소나무숲길을 지나면서 오늘 걸었던 전 구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진강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강은 적당히 S자 곡선을 그리며 흘렀고, 그 자취로 백사장이나 자갈밭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걷는 길에서는 소나무나 활엽수의 가지 사이로 강을 보는데 그 정경이 가히 환상적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걷는 도중 어디선가 들려온 기적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강건너편 철길에 증기기관차가 객차를 매달고 천천히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곡성 섬진강 기차마을에서 출발해 아까 우리가 점심먹었던 가정역까지 오는 레일 바이크 손님을 태우러 가는 기차였겠죠. 그 기적소리를 이 강변에서 듣는 순간, 저는 제 어린 시절에 대한 아련한 향수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이런 장면들 몇 컷 만으로도 다른 분들께 섬진강길 걷기를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습니다. 

 

 

 

 

 

원래는 곡성역까지 걸을 예정이었습니만 호곡마을을 지나면서는 더이상 걷는 게 별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미 이 구간 섬진강의 진수를 충분히 맛보았고, 오늘 걸을 거리를 충분히 걸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종착점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안내해주는 어떤 자료도, 이정표도 없어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다리를 건너 오곡면 소재지로 가서는 버스를 타고 곡성터미널로 가기로 작정했습니다. 몰랐는데 오곡면은 이곳 사람들에 의해 심청전의 무대로 주장되는 곳이군요. 오곡면 종합회관 앞 버스 정류장에서 시계를 보니 2시 30분. 오늘은 식사시간빼고도 꼬박 5시간 30분 이상을 걸었습니다. 거리로는 대략 22km 정도. 길떠나고 가장 많이 걸었네요.

  

 

  

버스를 타고 오면서 보니 곡성역까지는 2km 정도 더 걸어야 했더군요. 덕분에 오른쪽 발에 물집이 잡혀 오늘밤 대수술을 해야 하게 생겼습니다. ㅠㅠ. 곡성에서 광주로, 광주에서 고창으로 버스 갈아타기를 해서 저녁에 고창읍에 도착했습니다. 내일은 선운산을 걸을 계획입니다. 원래는 고인돌군과 질마재고개 등에서 시작할 생각이었지만 별 의미가 없겠다 싶네요. 오늘보다 훨씬 도로스러운 길을 걸을게 뻔하니까요. 일부는 작년에 자전거를 탔던 길이구요.

 

그래서 내일은 십수 년 전, 꼭 다시 와서 길게 걸어보겠다 약속했던 선운산을 대여섯시간 걸어볼 생각입니다. 내일 아시게 되겠지만 선운산은 등산하는 산이 아니라 그냥 즐기며 걷는 산입니다. 혹시 험한 구간이 있으면 피해갈 생각이구요. 동백꽃이 없으니 선운사에는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가겠습니다. 산꼭대기 가까이 있던 도솔암이던가, 하는 암자의 젊은 스님은 지금도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선기가 가득한 분이었으니 지금은 또 다른 어디서 큰 수행을, 혹은 좋은 도량을 일구고 계시겠지요. 다시 뵙고 싶은 분입니다..

 

출처 : 김영춘 BLOG
글쓴이 : 아차산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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