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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도보여행 5일차(9. 14) - 지리산 둘레길 3구간(수철-동강)을 걷다.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9. 27. 08:42

9. 14(월) 흐리다 점점이 비.

 

오늘은 산청군 <수철리>에서부터 함양군 <동강리>에 이르는 지리산 둘레길 3구간을 거꾸로 걷기로 했다. 원래는 동강-수철 코스로 와야 더 좋다는 것인데, 우리의 전체 여정(旅程)상 어쩔 수가 없다. 어제 산청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파악하니 수철리로 가는 버스가 아침 7시 30분에 있다. 그 다음 버스는 8시 50분. 그래서 6시 40분에 모텔 인근 식당에서 콩나물해장국으로 이른 아침을 먹고 출발하였다. 수철리까지는 버스로 불과 10여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7시 42분에 걷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버스를 내린 수철리 마을회관 주위에서 행로를 찾지 못해 헤매다가 동네아주머니께 고동재를 물어 간신히 제 길을 찾아 나섰다. 처음 시작되는 길은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콘크리트 포장길. 제법 경사진 포장로를 따라 근 3km 정도를 올라가자 그제사 흙길이 나타났다. 이 길은 지금은 임도처럼 사용되지만 옛날에는 정식으로 사용하던 신작로였다고 한다. 하지만 둘레길은 <고동재>에서 이 옛길을 버리고 등산로를 취한다. 참나무 종류가 많이 들어선 그늘진 숲길을 따라 한참을 더 가니 <쌍재>이다. 시계를 보니 10시. 이곳이 해발 640m로 이 구간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수철리 기점으로 전체 구간 중 절반 조금 못미친 지점이지만 이제부터 동강리까지는 대체로 내리막길이라 걷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오늘따라 나는 오르막길을 오르면서도 걸음과 호흡이 가뿐한데 시차문제와 감기에 시달리고 있는 김선배가 힘들어하는 기색이다. 나보다 열댓 살이 많으니 힘들 법도 하지만, 컨디션만 좋다면 나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체력이 좋고 운동으로 단련된 분이다. 십수 년 전 미국에서 같이 등산을 다녀봐서 알기도 하고, 이번에도 첫날에는 나보다 더 잘 걸었었다. 오늘은 내가 앞서 걸을 때면 사진을 찍으면서 보폭을 맞췄다. 그래서 오늘 찍은 사진이 유달리 많다.

 

쌍재에서 다시 임도를 만났지만 조금 내려가자 둘레길은 또 임도를 버리고 좁은 돌계단길을 선택한다. 중간에 보니 원래 사유지라 출입이 안되던 곳을 둘레길 만든 분들이 주인 마음을 돌려놓아 길손들에게 허락된 길인 모양이다. 좌우지간 감사한 일이다. 덕분에 정취있는 계곡길을 따라 내려가서 <상사폭포>에 이르렀다. 폭포가 장대하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한 멋은 있다. 그 아래 바위 위에서 갖고 간 복숭아를 한 개씩 먹었다. 물이 많은 황도였는데, 내 생애 최고의 복숭아맛이었다.  

 (빛과 녹색과 붉은 색의 조화에 반해 서투른 카메라를 들이댔다)

 

산을 거의 내려오니 멀리 커다란 기와지붕과 하얀 탑이 보인다. 뭔가 했더니 둘레길 관련 자료에서 보았던 <산청-함양 양민학살사건> 추모공원이다. 내를 건너 4차선 도로로 올라서니 바로 그 공원 정문인 <회양문>이다. 묘지에까지 올라가지는 않고 추모비 아래에서 6.25전쟁의 광란에 희생된 고인들의 명복과 안식을 비는 기도를 드렸다. 입구에 있는 전시관에서 당시의 상황을 기술한 자료들을 보니 아무리 전쟁 중이었기로서니 인간이 어떻게 그토록 잔인해질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것도 자기나라 국민들한테 말이다. 정치적으로는 아주 보수적인 김선배도 나와 똑같은 심정을 말하였다. 우리 민족의 슬픈 현대사의 한 단면이다.

 

(이 위령탑의 뒷쪽이 묘지이다)

 

거기서부터 오늘의 종착지인 <동강마을>까지는 약 3km. 잘 포장된 아스팔트길을 따라 걷다가 강변을 따라가는 콘크리트 포장로로 좌회전했다. 그 길로 곧장 가니 동강마을이다. 산을 넘는 12km 거리의 한 구간을 끝냈다 싶었지만, 두사람 다 아직 미진하다. 시간도 아직 12시에 불과하다. 결국 점심식사를 하고 좀 더 걷기로 합의한다. 식사는 엄천교라는 다리를 건너 <동호마을>의 <지리산 양성식당>에서 백반으로 해결했다. 이 작은 마을에 식당이 있어서 다행이다.  

 

주인 아주머니는 원래 부산 보수동에 살았는데 15년 전, 병이 있는 남편의 요양차 그의 고향인 이곳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지금은 남편의 병도 웬만하다고 하니 다행한 일이다. 이곳은 인근 마을들을 포함해도 거의 유일한 식당이라 배고픈 나그네로서는 허기를 메울 수 있어 감사했다. 식당이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본 것은 거의 처음인 것같다. 작년의 자전거여행 때도 그런 생각을 안해봤는데 확실히 기동력의 차이가 선택권을 많이 좁히는 것은 자명하다.

 

식사 후 고민 끝에 금계 방향의 둘레길을 걷지 않고 함양 방면으로 가다가 지치면 버스를 타기로 한다. 그런데 아뿔싸, 곧 엄청나게 가파른 고개를 헉헉대며 올라가야 했다. 물론 내려가는 길에 맛본 다랭이논들의 예쁜 풍경과 벼가 익어가는 초가을의 논들이 발산하는 노랑, 초록의 향연을 즐기면서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을 뿐, 추호도 후회는 없었다. 하지만 거기서 힘을 많이 소진한 우리는 더 이상 걷기를 포기하고 <화암마을>에서 함양행 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래도 오늘은 산길을 포함해 총 17km 정도를 걸었으니 적게 걸은 것은 아니었다.  

 

화암마을에서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함양으로 갔다가 다시 남원행 버스로 갈아탔다. 이번에도 40분 정도의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다. 여러 번 갈아타면서 버스로 지방여행을 다니는 것은 결국 시간과의 싸움인 것같다. 느긋하게 그 기다림을 즐길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에 따라 즐거운 여행이 될 지, 괴로운 여행이 될 지가 결정될 것이다. 나는 주위를 구경하거나 책을 보거나 하면서, 낯선 곳에서의 그런 시간을 비교적 즐겁게 보내는 편이다.  

 

오늘의 숙소는 남원버스터미널 바로 맞은 편에 있는 <한일파크모텔>이다. 도로에서 안으로 들어가 있어 시끄럽지도 않고, 공중목욕탕이 함께 있어 지친 몸을 뜨거운 물에 푹 담글 수도 있는 곳이다. 오래되어 화장실 시설이 좀 부실하긴 해도 방은 깨끗한 편이다. 나는 인터넷에 여행일지 올리는 일 때문에 이 좋은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지만 다른 분들을 위해 소개하는 바이다.

출처 : 김영춘 BLOG
글쓴이 : 아차산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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