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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도보여행 3일차(9. 12) - 안동 하회마을을 걷다 -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9. 27. 08:43

 

9. 12(토)  흐리다 비.

 

아침 8시에 길을 나서다. 풍산읍의 버스정류장에서 보니 <병산서원>가는 버스는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 고민 끝에 택시를 탄다. 만원에 가기로 했다. 잘된 교섭인지는 알 수가 없다. 기사는 한참 가다가 논 사이로 난 농로로 접어든다. 지름길이란다. 그 시멘트길이 넓어질 즈음, 갑자기 포장길이 끝난다. 흙길을 보는 순간 바로 떠오른 영감, “여기서부터 걸으면 되겠다.” 나는 직감이 떠오르면 곧장 행동하는 평소의 나쁜 습관대로 지체없이 차를 세운다. 얼떨결에 따라내리는 우리 형님, 불쌍하다. 하지만 후회는 없을 것이다. 내가 흙길을 실컷 걷게 해줄테니까.


그 길을 500m 가량 걷자 삼거리가 나온다. 택시기사가 알려준 대로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마침 오른쪽은 포장도로고 왼쪽은 비포장이다. 오케이, 완전 우리 개념이다. 조금 더 가니 [병산서원 3km]라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우리가 길은 제대로 찾아가고 있는거다. 다른 갈림이 없이 그대로 쭉 나아가니 병산서원이다. 우리같은 범인들에게는 이순신을 살려준 임진란 때의 영의정으로 유명한 서애 유성룡이 후진들을 양성한 서원이란다. 이윽고 서원에 도달한 우리, 정문-뒷문 다 잠긴 서원 앞에서 우왕좌왕했다. 아침 9시가 갓 넘었으니 직원 출근시간은 분명히 지났는데...물 한 병을 사며 <병산민속식당>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안동 사투리로 한 마디로 정리한다. “정~부 돈이 물러요”  

 

 

 

시 서원 앞으로 오니 9시 10분쯤 승용차 한 대가 서는데 잠바입은 품새가 관리직원같다. “아, 왜 이리 늦어요? 아까부터 기다렸는데.” 머쓱해하며 부랴부랴 서원으로 가서 문을 연다. 서원의 안과 밖에는 배롱나무가 바알간 꽃들을 가득 매달고 늘어서 잇다. 지금이 한창 꽃피는 철인가 보다. 서원은 앞에서부터 3계단으로 올라가며 건물들이 줄서 있는데 그 배열이 정연하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서원말고는 마을도 없고, 오직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그 건너편 깍아지른 절벽같은 산을 가득 매운 숲의 향연뿐이다. 여기서라면 오직 학문을 닦는 것밖에 다른 잡생각이 끼어들 겨를이 없을 것같다.


강을 따라 가면 하회마을에 이르는 길이 있을 것 같아 내쳐 걸었는데, 1km쯤 지나자 길이 희미해지고 갈대밭 사이로 모래길이 드문드문하다. 길을 잘 모르니 확신을 갖고 계속 갈 수가 없어 발길을 돌린다. 다시 서원에서부터 오던 길을 거슬러 하회마을을 찾아나섰다. 3km 지나서 아까 보았떤 아스팔트 도로를 만나고,또 그만큼을 더가니 하회마을 입구가 나타난다. 그 초입에 초가지붕, 기와지붕을 인 식당촌이 하도 커서 나는 거기가 하회마을인 줄 알았다. 정작 하회마을은 거기서도 1km 이상을 더 걸어야 했다.


나중에 총평하는 거지만 그 입구에서부터 마을까지 이르는 <하회마을 물돌이길>이라고 이름붙여진 오솔길이 그 마을의 최고 압권이었다. 마을은 안보이지만 숲 사이로 굽이진 낙동강과 드넓은 백사장이 언뜻언뜻 나타나는 풍경이 아쉽고도 장하였다. 오히려 마을 안의 대택들이나 초가 전통가옥들을 보는 심회는 그저 그랬다. 솔직히 말해서 다른 데서도 많이 보았던 정경을 모아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 정도의 감상이었다. 결국 나같은 보통 사람들에게 하회마을은, S자의 만곡을 그리는 낙동강이 만들어놓은 절경의 한 가운데 자리한 전통마을이라는 것이 가장 큰 소구점이다. 역사학자나 민속학자라면 또다른 소회를 가질 테지만 말이다.  


마침 점심 때가 되었는데 마을 안에서나 강 건너 쪽에는 요기할 데가 없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500원 내는 셔틀버스를 타고 나가 정류장 바로 앞의 식당에서 콩국수를 맛있게 먹었다. 다시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아까 설명했던 그 <물돌이길>을 다시 걸었다. 이번의 목적지는 마을 앞에서 나룻배를 타고 건너는 강 건너의 부용대. 강변의 천연기념물 솔숲인 <만송정> 그늘에서 쉬면서 건너간 나룻배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우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내쳐 계속 걸어갈 요량으로 왕복을 전제한 요금 2,000원을 다 줄 수 없다고, 뱃사공에게 반값 할인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는 느릿한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만 흔든다. 이런 사람하고는 교섭이 정말 힘들다. 뭔 말을 해야 따지고 깎지...12명이 탄 배는 노없이 장대로 바닥을 미는 방식으로 강을 건너갔다. 다른 데서는 참 보기 힘든 정경일 것이다.  

(저 맨 꼭대기가 '부용대'이다)

 

강건너 절벽 위 부용대에서 바라보는, 크게 휘돌아가는 낙동강에 둘러싸인 하회마을의 모습은 끝없이 평화로웠다. 하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도 마냥 평화롭지는 않으리라 싶었다. 다만 우리가 이 풍경에서 위안을 얻고 싶은 것이다. 결국 평화는, 기쁨은 우리 마음 안에 있다.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 평화를 찾아 다닌다. 찾아 다니면서도 드디어는 내 안에서 그것을 발견할 줄 알면서도...  


부용대에서 반대편으로 산을 내려갔다. 광덕교를 건너 풍천면 사무소 바로 앞에서 오늘의 걷기를 마치고 안동행 버스를 탔다. 오늘은 15km 정도를 걸었다. 안동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거의 여유없이 서대구행 버스로 갈아탔고, 서대구 터미널에서는 우여곡절 끝에 창녕행 버스에 올랐다. 지금 이 글을 올리는 장소는 창녕버스터미널 주변 의 숙소인 <창녕장> 인근 PC방이다. 내일은 우포늪 주변을 걸을 계획으로 이곳에 왔다..



출처 : 김영춘 BLOG
글쓴이 : 아차산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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